서의호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

1인당 국민소득 10만불이라는 초부유국 UAE 아부다비에 회의 참석차 왔다.

회의 자체는 대학평가에 관한 회의이지만 초대된 많은 전문가들이 원전에 관한 전문가인 것들이 이채로웠다. 한국에서 초빙된 전문가도 원전 전문가였다. 그만큼 원전에 대한 이곳의 관심은 뜨겁다.

7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UAE에서 가장 면적이 크고 OPEC 석유생산의 10%, 세계 석유생산의 5%를 감당한다는 세계 초부유국 UAE의 아부다비는 고급 호텔 건물에서 잘 정돈된 거리까지 모두 풍부한 자금을 가진 아부다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1980년 수교하고, 그리고 10년 전 원전수주를 계기로 맺어진 한국과 UAE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보수정부 시절 바라카 원전 수주와 아크부대 파병 등으로 꽃이 피면서 중동에서 유일한 우리의 전략적 동반자 국가가 됐다. 교역량 150억달러, 중동에서 우리의 수출 1위국인 허브 국가이다.

UAE는 한국을 선택했다. 계약대로 4개의 원전이 모두 완성되면 UAE 발전량의 25%를 우리가 지은 원전이 담당하게 된다. 이런 사업을 원전 수출 경험이 전무했던 한국에 맡긴 것은 UAE로선 중대 결단이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원전은 안전하지도, 저렴하지도, 친환경적이지도 않다”며 원전폐기정책을 발표했다. UAE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 대통령은 UAE 방문중 “바라카 원전은 축복”이라고 달래긴 했지만 여전히 정부의 원전에 대한 국내 정책은 UAE 뿐만아니라 원전수출에 결정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포스텍, 카이스트, 서울대 등 전국 13개 대학의 원자력공학도가 모여 결성된 녹색원자력학생연대는 주말마다 전국 주요 KTX역에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서명운동을 받기도 했다. “10∼20년 후 원자력계를 이끌어갈 학생들이 떠나면 원전 기술도 후퇴할 수 밖에 없다”고 원자력 관련 교수들은 말한다.

한국이 UAE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을 보고 원자력공학도의 꿈을 키웠던 학생들은 이제 바뀐 상황에서 원자력공학의 꿈을 접고 있다. 교수들도 원자력계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 외에 공들여 쌓아올린 원전 생태계를 어떻게 가꾸어 갈지 고민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지난해 한국전력공사가 적자를 냈고 원전보다 비싼 LNG와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확대하면 전기요금의 계속적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와중에 기쁜 소식이 들린다. 우리나라가 개발한 차세대 원전인 APR1400이 8년여 만에 미국 원자력 규제 당국으로부터 안전성을 입증받아 설계인증서(DC)를 취득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원전 기술 종주국인 미국의 DC를 외국 기업이 단독으로 받는 건 사상 최초다. DC는 미국에서 APR1400을 짓고 운영할 수 있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 인증이어서 차세대 한국형 원전의 수출 가능성이 한층 커지게 됐다. 미국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25년 전 제출한 APR1400에 대해 더 이상 기술적 이슈가 없어 신속한 법제화 절차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한국의 원전 기술이다.

정부가 탈원전 정책이라는 대전제를 정해두기보다 원전, LNG, 석탄, 신재생에너지 등 각각의 에너지원별로 객관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각각의 에너지원은 장단점을 함께 가지고 있고 서로 보완적 성격을 가진다.

에너지정책은 경제성, 환경, 안전을 모두 감안해 정해야 하며 특정 에너지원에 일방적 단정을 하기 보다는 모든 에너지원에 대한 포트폴리오(자원배분) 정책을 세워야 한다.

현 시점에서 최선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이 함께 공유하는 포트폴리오 정책이 최선이라고 생각된다. 선거공약에 집착하기 보다는 진정 무엇이 국가경제발전에 도움이 되는가를 냉철하게 생각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