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최동단 ‘포항 호미곶’에 가면 탄성이 절로~
한반도 최동단 ‘포항 호미곶’에 가면 탄성이 절로~
  • 김규동 기자
  • 등록일 2019.04.29 16:09
  • 게재일 2019.0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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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의 손·새천년 연 불씨·최대 가마솥 등 볼거리 ‘풍성’
국내 유일 등대박물관·국내 유일 수석박물관 등도 볼만
10만평의 유채꽃 만발… 해맞이광장서 보는 일출 ‘장관’
새천년기념관에서 바라본 호미곶 해맞이광장.
새천년기념관에서 바라본 호미곶 해맞이광장.

한반도 최동단 포항 호미곶은 국내 해맞이 최고 명소로 꼽힐 정도로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은 한민족 해맞이 축전 개최지로 유명하다. 2000년과 2001년 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국가지정 해맞이 축전이 개최됐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이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새해를 맞는다.
광장에는 상생의 손과 성화대, 불씨함, 새천년기념관, 연오랑세오녀상, 햇빛채화기, 해오름 무대, 전망대, 호랑이 형상의 한반도 지형도, 국내 최대 가마솥, 대형 문어 조형물, 거꾸로 가는 시계, 관광안내소, 주차장 관리소 등이 있다.

호미곶 주변에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불을 밝힌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 등대역사관, 유물관, 체험관, 테마공원, 야외전시장, 10만평의 유채꽃밭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호미곶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 호미곶은 16세기 조선 명종 때 풍수지리학자인 남사고가 ‘산수비경’에서 한반도는 백두산 호랑이가 앞발로 연해주를 할퀴는 형상으로 기술했다. 백두산은 호랑이코, 호미곶은 호랑이 꼬리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만들면서 국토 최동단을 측정하기 위해 영일만 호미곶을 일곱 번이나 답사 측정한 뒤 우리나라에서 가장 동쪽임을 확인하고 호랑이 꼬리 부분이라고 기록했다.

27일 오후 1시부터 호미곶 해맞이광장 일대를 둘러봤다.

해맞이광장 인근에 자리한 10만평의 유채꾳밭. 포항으로 우정여행 온 문경대학교 간호학과 3학년 학생들.
해맞이광장 인근에 자리한 10만평의 유채꾳밭. 포항으로 우정여행 온 문경대학교 간호학과 3학년 학생들.

▢ 관광객, 유채향기 만끽하며 기념촬영 분주

호미곶 해맞이광장 진입로에 들어서자 유채꽃 향기가 진동을 했다. 계단식 유채꽃밭은 10만평에 이르렀다. 바람결에 흔들이는 노란 물결이 장관이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유채꽃향기를 만끽하며 기념촬영에 분주했다.
유채꽃밭에서 기념촬영을 하던 30대 이지욱 씨(포항) 가족 3명은 “따스한 봄볕도 좋지만 유채꽃향기가 너무 좋다”고 행복해 했고, 포항으로 우정여행 온 황준혁 씨 등 문경대 간호과 3학년 5명은 “호미곶 해맞이광장을 찾았다가 주변 유채꽃밭의 규모와 진한 유채꽃 향기에 놀랐다”며 “많은 사람들에게 가득한 기쁨을 주는 유채꽃향기 같은 간호사, 서로에게 행복을 주는 유채꽃 같은 친구가 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유채꽃향기에 반해 작년에 이어 올해 또 왔다는 60대 부부는 “8월이 되면 유채꽃 대신 흐드러지게 핀 하얀 메밀꽃이 장관을 이룰 것”이라며 “메밀꽃이 피면 다시 호미곶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새천년기념관 1층 로비.
새천년기념관 1층 로비.

▢ “새천년기념관엔 포항의 어제·오늘·내일 한눈에”

발길을 돌려 해맞이광장에 들어섰다. 새천년기념관이 취재진을 반겨 맞았다.
새천년 국가 지정 일출 행사 개최를 기념하고 남북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2009년 12월 건립된 새천년기념관은 연면적 5천447㎡에 1층 전시실(빛의 도시 포항 속으로), 2층 포항바다화석박물관, 3층 한국수석포항박물관과 시청각실, R층 옥상전망대, 지하 1층 학예실과 수장고 등을 갖추고 있었다.
1층 로비에는 1920년대~1970년대의 포항모습을 담은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금은 복개된 ‘칠성천 하구 섶다리와 쪽배’, ‘새끼 꼬기’, ‘시청 앞 추계대청소’, ‘제2회 개항제 퍼레이드’, ‘1920년대의 대도동 일대 촌락’, ‘오거리 전경’, ‘소달구지’ 등이 정겹게 느껴졌다.

1층 전시실에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에서부터 지명 유래, 새마을발상지 역사, 철강도시 전환, 문화도시 인프라 구축, 포항의 사계절, 특산물, 일출, 주상절리, 포항의 과거와 현재 모습, 첨단과학 및 환동해 물류거점도시,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도시 포항의 모습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청주에서 일행 4명과 왔다는 김지창 씨는 “‘대나무 숲속의 부잣집 터’와 ‘효자동’ 등에 얽힌 전설을 읽다 웃기도 했고, 교훈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고, 김씨 일행 중 한 명은 “전시실을 나설 때 포항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됐고, 포항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 “지구 역사·생물 변화 볼 수 있어 유익”

2층 포항바다화석박물관(관장 강해중)에는 수만 년 전 지질시대 바다에 살았던 생물체의 화석 2천여 점이 전시돼 있었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표준화석을 볼 때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다양한 생물군의 출현과 그 변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어 한층 흥미로 왔다.
서글로리아 교사(여고)는 “지구의 역사와 생물의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고 바다화석박물관 관람 소감을 밝혔다.
이곳은 강해중 씨가 20년간 수집한 화석을 전시한 사립박물관이다.

▢ “물 뿌리니 폭포가 선명… 고가 수석 볼 땐 입이 벌어져”

3층 한국수석포항박물관에는 각양각색의 지구촌 곳곳의 수석 338점과 사진첩이 전시돼 있었다.
‘눈꽃’, ‘생명의 기원’, ‘궁궐’, 달을 닮은 ‘노월’, ‘백록담’, 백두산 천지를 닮은 ‘운유담’, ‘태고담’, 불이폭(폭포석) 등이 발길을 붙잡았다.
수석 아래 놓인 분무기로 불이폭에 물을 뿌리니 수석 가운데로 흐르는 두 줄기의 폭포가 선명한 모습을 드러내 입가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호영호 관리원(한국수석회원)은 “‘태고담’, ‘묵적도’, ‘적멸암’ 등의 수석 가격은 1~2천여만 원을 호가한다”며 “수석은 형(산수경석이 들어 있어야 함), 질(단단해야 함), 색(오석-검은색) 등 3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고 귀띔했다.

이 수석들은 (사)한국수석회 회원들이 뜻을 모아 포항시에 기증한 작품들이다. 수석박물관은 국내 이곳뿐이다.

▢ “여기가 한반도 최동단… 실제 확인 땐 가슴 벅차”

엘리베이터를 타고 R층 옥상에 오르니 탁 트인 동해바다와 해맞이광장, 상생의 손, 호미곶등대와 등대박물관 등 사방이 한눈에 들어왔다. 전방(동쪽)에는 해가 떠오르는 지평선과 손을 뻗으면 잡힐 것만 같은 울릉도 뱃길이, 후방(서쪽)에는 10만평의 유채꽃밭이 눈앞에 펼쳐졌다. 몸을 돌려 북쪽과 남쪽으로 바라 볼 땐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툭 튀어나온 이곳이 한반도 최동단임을 알 수 있어 가슴 벅찼다.

옥상에서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30대 부부에게 “광장에는 관광객들로 붐비는데 새천년기념관 안은 왜 한산하느냐”고 물어봤다.
이 부부는 “입장료가 없을 때는 새천년기념관이 관광객들로 북적였다”며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면 새천년기념관을 방문하는 전국 관광객들에게 포항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시설물 중 유일하게 이곳만 입장료를 받는다”며 “포항지역 어린이, 청소년, 군인, 6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무료로, 포항시민들에게는 1천원, 외지인들에게는 300~3천원을 받고 있다”며 “입장료를 받은 뒤부터 관람객들의 수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천년기념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고 덧붙였다.

호미곶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형상화한 해오름 무대. 무대에서 호미곶 앞바다를 바라보는 연인.
호미곶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형상화한 해오름 무대. 무대에서 호미곶 앞바다를 바라보는 연인.

▢ “고래 닮은 무대에 오르니 가슴이 뻥 뚫려”

새천년기념관을 나서자 초대형 돌문어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호미곶의 대표적인 특산물인 돌문어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주 색채를 이루는 파란색은 동해의 푸른바다를 상징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돌문어에 올라 미끄럼틀을 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돌문어에 올라가거나 돌문어의 발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야간에는 광섬유를 활용한 화려한 조명으로 관광객에게 포토 존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돌문어 조형물 앞에는 호미곶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형상화한 해오름 무대가 금방이라도 동해바다에 풍덩 뛰어들 듯한 기세를 하고 있었다.
야외무대인 해오름 무대에 올라 호미곶 해맞이광장과 동해바다를 조망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70대 어르신은 “어릴 적 호미곶 앞바다에서 헤엄치는 고래를 자주 보곤 했다”며 어린 시절을 추억했다.
30대 최윤식·김주희 부부는 “해풍을 맞으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니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이 기분이 좋다. 세 살배기 아이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충분히 둘러본 뒤 저녁을 먹고 귀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로 앞에는 국내 최대의 가마솥이 설치돼 있었다. 가마솥 아래 표지석에는 “이 가마솥은 2004년 1월 1일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이곳 호미곶에서 개최된 ‘한민족 축전’행사에 참여한 관광객들에게 새해 아침에 먹일 떡국을 끓이는 체험행사용으로 특수 제작된 솥”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름이 3.3m, 깊이가 1.3m, 둘레가 10.3m나 됐으며, 용량은 떡국 2만분(4t)이나 됐다.
인근에서 꼬치를 파는 60대 노점상은 “해마다 이 가마솥으로 떡국 6만분을 끓인다. 떡국을 끓이는 자원봉사자만 30여명이나 된다”며 “내년 1월 1일 해맞이 축제에 참여하면 떡국을 맛볼 수 있다”고 웃어 보였다.

호미곶광장 모습.
호미곶광장 모습.

▢ “TV로 보던 상생의 손보니 감개무량”

호미곶 앞바다에서 해풍이 불어왔다. 다소 차갑게 느껴졌지만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었다.
그 유명한 상생의 손이 눈에 확 들어왔다.
상생의 손은 광장에 높이 5.5m의 왼손과 바다에 높이 8.5m의 오른손이 세워져 있었다. 성화대의 화반은 해의 이미지를,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하고 있었다.
포항시 관계자는 “상생의 손은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통해 화해와 상생의 기념정신 즉, 온 국민이 하나 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왼손 앞에는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20세기 마지막 불씨와 독도해상과 호미곶에서 채화한 새천년 시작의 불씨, 날짜 변경선이 통과하는 남태평양 피지섬에서 채화한 지구의 불씨가 3곳의 불씨함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상생의 손은 관광객들에게 호미곶 해맞이광장 작품 중 가장 인기 있어 보였다.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기념촬영 하는 이들이 많았다.

울산에서 온 70대 단체관광객들이 “피지섬에서 가져온 불씨가 20년가량 타오르고 있다”며 신기해하기도 했고,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다.
언젠가 포항시 관계자가 포항시의회 간담회에서 “세차게 부는 호미곶의 바람으로 인해 20세기 마지막 불씨와 호미곶에서 채화한 불씨, 피지섬에서 갖고 온 불씨를 합화한 ‘영원의 불’이 자주 꺼져 그냥 다시 붙이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보고한 말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다.
‘어제의 햇빛이면 어떻고 오늘의 햇빛이면 어떤가, 관광객들이 그렇게 믿고 바라보며 즐거워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발걸음을 연오랑세오녀상으로 돌렸다.

▢ “연오랑과 세오녀 설화 읽는 재미도 쏠쏠”

높이 8m의 청동을 이용해 조각한 연오랑과 세오녀상은 두 사람이 정답게 마주 보고 있었다. 조각상 좌대는 두 사람을 일본에 싣고 간 바위를 암시하고 있었고, 바닥 조형물은 영일만과 동해의 물결(파도)을 상징하고 있었다.
원형의 둥근 조형물은 이 땅을 밝게 비추는 해와 달을 상징했고, 원형 조형물 중앙의 검은 부분은 일본에 전파한 선진문물인 비단을 의미했다.

동상 뒷면에는 연오랑세오녀의 설화가 기록돼 있었다.
기록을 보면 연오랑세오녀는 삼국유사에 수록된 설화로 단군신화가 한국문화의 뿌리를 형성했듯이 오랜 세월동안 포항문화의 큰 물줄기를 이뤄왔다.
연오랑세오녀 부부는 신라 초기 영일지역(1995년 1월 포항시와 영일군이 통합됨)의 소국 근기국의 인물로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에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라 길쌈과 제철기술 등 선진문화를 전파하고 그 곳의 왕과 왕비가 되었다고 한다.

불씨함에서 타오르는 불.
불씨함에서 타오르는 불.

▢ “호랑이는 꼬리 힘으로 질주… 이곳이 한반도 최고 명당”

호랑이 여러 마리가 떠받치는 호랑이형상의 한반도지도 조형물과 거꾸로 가는 시계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시계는 현재 시간에서 다음해 1월 1일 호미곶 일출까지 남아있는 시간을 초단위로 알려줘 ‘되돌아봄’과 ‘나아감’을 일깨우고 있었다.

어릴 적 생각이 날 때면 이곳을 찾는다는 70대(호미곶면)는 “호미곶은 한반도 지형의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한다. 호랑이는 꼬리의 힘으로 달리며 꼬리로 무리를 지휘한다”며 “이곳은 예로부터 국운상승과 국태민안의 상징으로 최고의 명당, 명승”이라고 했다.

마산 매서초등학교 39회 동기들이 호미곶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마산 매서초등학교 39회 동기들이 호미곶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해상 데크로드에도 관광객들로 ‘북적’

바다에 세워진 상생의 오른손 앞의 해변에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상생의 손과 푸르디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쉴 사이 없이 들려왔고, 파도에 실려 오는 바다내음은 코끝으로 전해져 왔다.

단체 기념촬영을 하던 김정옥 씨(마산 매서초등학교 39회 동기회장)는 “초등학교 동기 19명이 호미곶으로 여행왔다”며 “TV로만 보던 호미곶 상생의 손을 실제로 보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호미곶 광장 앞 해상에 설치된 폭 3m, 길이 75m의 데크로드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해상 데크로드 가운데 부분과 끝부분에는 지름 10~15m의 원형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휴가 나온 아들과 호미곶에 왔다는 60대 부부(대구)는 “한반도 최동단인 호미곶에 서니 역사의 현장에 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볼거리가 많아 유익한 시간이 됐다. 호미곶을 관광지로 잘 개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호미곶 광장 앞 해상에 설치된 폭 3m, 길이 75m의 데크로드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호미곶 광장 앞 해상에 설치된 폭 3m, 길이 75m의 데크로드에도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 “꿈이 현실로… 전·현직 시장 열정에 고개 절로 숙여져”

언젠가 정장식 포항시장(전 청와대 행정수석실 행정관)이 시장에 당선된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가 떠올랐다.
정 시장은 당시 포항북부시장에서 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지역발전과 관련 아이디어를 구했다. 그때 정 시장에게 이런 말을 들려줬다. “21세기에는 굴뚝 없는 관광산업이 각광을 받을 것이다. 포항 장기갑(현재 호미곶)은 한반도 최동단에 위치하고 있다. 호랑이 형상의 우리나라 지도의 꼬리부분에 해당된다.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어야 한다. 관광지로 개발한다면 국내외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내륙 사람들은 바다만 봐다 굉장히 좋아한다”고.

정 시장은 이후 이곳의 부지를 사들여 관광지 개발에 나섰다. 이곳은 박승호 시장과 이강덕 시장을 거치면서 오늘의 국내 최고 해맞이관광명소로 부상했다는 마음에 이분들의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진작가 이은영씨는 “호미곶은 울산 간절곶과 함께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지역으로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며 “육당이 백두산 천지, 변산 낙조 등과 함께 조선십경으로 꼽았을 정도로 호미곶 일출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 극찬했다.

국내에서 두 번재로 붉을 밝힌 포항 호미곶등대.
국내에서 두 번재로 붉을 밝힌 포항 호미곶등대.

▢ “등대박물관 관람하니 ‘등대 박사’된 기분”

다시 발길을 돌려 해맞이광장과 인접한 호미곶 등대와 국내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관장 김양규)을 찾았다. 호미곶 등대는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1908년 불을 밝혀 111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등대는 철근 구조가 아닌 벽돌로 세운 높이 26.4m의 등대로 등탑 내부 각 층(6층) 천정에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오얏꽃(자두꽃) 문양이 있는 등 건축적 가치가 뛰어나 경북도 지방문화재 제39호로 지정돼 있었다.

이 등대는 대한제국 융희 원년(1907년) 9월 9일 대보 앞바다에서 일본 동경수산강습소 실습선이던 ‘쾌응환호’가 암초로 침몰되면서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생겨났다고 한다.
국립등대박물관은 2만3천975㎡의 대지 위에 유물관, 역사관, 체험관 등을 갖추고 있었다. 등대와 관련해 8천982점(전시 416점, 수장 8천566점)의 자료 및 유물도 소장하고 있었다.

등대박물관은 1985년 2월 7일 개관, 다음해 4월 18일 박물관으로 지정됐으며, 2002년 4월 19일 확장 개관했다. 이어 2003년 3월 기획전시관과 2013년 8월 체험관을 건립했고, 2016년 7월 해양관(현 역사관) 및 수상전시장(현 분수정원)을 리모델링했다고 한다.

유물관을 관람하는 여행객들.
유물관을 관람하는 여행객들.

▢ “천문항해 체험하니 너무 재밌어요”

등대역사관은 고대부터 현재까지의 항로표지(등대) 기술의 변천 과정에 대한 설명과 패널 및 등대모형, 슬라이더 비전을 통해 시대별 등대 건축의 다양성과 구조적 특징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등대 건축 공간과 전망대로 구성돼 있었다.
수천 년을 이어온 빛의 발자취 세계 주요 등대와 국내 등대 모양이 인상적이었다.
유지민 어린이(울산 송정초 4년)는 “천문항해를 체험하니 실제 배를 타고 바다로, 우주로 항해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유물관은 세계 각국의 등대와 우리나라 등대 역사를 3D영상으로 알아볼 수 있었으며, 다양한 기능을 가진 항로표지시설 유물과 항로표지관리원의 생활상을 알아 볼 수 있었다.
한 학예보조사는 대구에서 온 단체관람객들을 대상으로 국내 등대의 특징과 항로표지역사, 각 등대 명패, 등대원의 하루 생활 등을 들려주고 관광객들의 질문에 성실히 답변해 주며 등대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40대 관광객(대구)은 “해설사로부터 등대와 관련 자세히 설명을 듣게 되니 등대 박사가 된 기분”이라며 “앞으로 등대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애증을 갖게 될 것 같다”고 만족해했다.

체험관은 등대 블록 쌓기와 등댓불 밝히기, 바다의 내비게이션 코너 등으로 구성된 아날로그 체험과 멀티터치 게임, 선박운항 시뮬레이션, 등대 여행 프토메일 보내기 등으로 구성된 디지털 체험공간으로 이뤄져 있었다.

테마공원은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 곳곳에 전국 각지의 아름다운 등대모형이 설치돼 있어 관람객들에게 자연의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었다.

야외전시장은 공기사이렌과 공기 압축기, 등부표, 부표, 장거리 무선항법 송신 장비, 무선표지안테나, FRP 등대 및 태양광발전장치 등의 항로표지시설들이 전시돼 있었다.

▢ “국내 유일 등대박물관 연간 관람객 90만명 넘어”

해양수산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항로표지기술협회 관계자는 “1903년 최초의 근대식 등대인 인천의 팔미도등대가 불을 밝힌 이후 우리나라 영토의 최동단 독도등대부터 최남단 마라도등대와 서해의 최북단 소청도등대까지, 지난 100여년간 등대는 안전한 바닷길을 인도하며 해상 교통을 책임지고 바다를 희망의 빛으로 채우며 저마다의 이야기를 간직해 왔다”며 “호미곶을 찾은 관광객들이 국립등대박물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확인한다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연간 관람객은 2015년 93만 명을 넘긴데 이어 지난해에는 95만2천명이 다녀갔다”며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고 매주 월요일과 추석 및 설날 당일은 휴관한다.”고 덧붙였다.

호미곶 일출.
호미곶 일출.

▢ “지난주부터 관광객들 다시 붐벼”

호미곶 해맞이광장 주변에는 10여개의 횟집이 밀집돼 있었다.

이들 횟집 주인들은 “2017년 11월 포항지진 여파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해 주방장까지 내보내야 했다”며 “유채꽃밭 개장과 돌문어축제가 열린 지난 주말과 휴일부터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가는 길

△버스

포항시내에서 200번 좌석버스를 이용해 구룡포 종점(환승센터)에 하차 한 뒤 호미곶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버스는 40분 간격으로 운영된다.

△승용차

포항시내에서 구룡포와 감포 방면으로 이동하다 구룡포 읍내로 진입하면 된다. 구룡포에서 호미곶까지는 20분 정도 소요된다.

/김규동기자 k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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