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시민운동 뿌리 ‘YMCA’… “44년 지역 사랑 이야기”
포항 시민운동 뿌리 ‘YMCA’… “44년 지역 사랑 이야기”
  • 김규동 기자
  • 등록일 2019.04.26 15:50
  • 게재일 2019.0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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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시민·사회·문화단체 탐방(3)
오는 7월 ‘창립 44주년’
크고 작은 현안 해결 앞장

포항YMCA 법인본부 실무자들(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이상열 총장, 양경미 팀장, 김성모 간사.)
포항YMCA 법인본부 실무자들(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이상열 총장, 양경미 팀장, 김성모 간사.)

포항YMCA가 올해로 창립 44년 주년을 맞았다.
1975년 7월 포항제일교회에서 182명의 회원이 참석, 사랑과 봉사정신으로 복지사회를 실현하는데 앞장설 것을 다짐하며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그간 44년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시민사회 운동체로서 지역 사회에 미친 업적과 영향력은 지대했다.
오염된 지역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경보존실천 시민운동을 전개했고, 건전한 청소년들을 육성하기 위해 청소년 문화 사업을 펴 왔다.

지구의 날을 맞아 환경사진전을 겸한 청소년 거리음악제, 길거리 농구대회, 청소년 어울마당 개최에 이어 청소년 상담실 운영 등을 통해 청소년 선도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아기스포츠단과 시민놀이마당, 어린이Y활동,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강습회, 여성 생명학교 강좌 등의 사회교육 및 문화사업과 시민 체력증진을 위한 시민 스포츠 교실, 소년 축구단 등의 사회 체육활동도 전개했다.

소비자 고발 등 시민중계실 운영을 통해서는 사회권익 보호 운동을 벌였고, 지방화 시대에 따른 올바른 선거풍토조성과 공명선거 계몽, 감시를 위한 공명선거 실천 시민운동협의회를 설치해 시민계도에도 앞장서 왔다.
사회복지관 위탁 운영을 통해서는 소년소녀가장 등 아동, 청소년 및 장애인, 어르신들을 위한 사회복지사업을 활발히 펴 왔다.

포항청소년성문화센터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왼쪽에서부터 윤영은, 김주희, 정태영 센터장, 하은희 팀장, 정경애 팀원)
포항청소년성문화센터 직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왼쪽에서부터 윤영은, 김주희, 정태영 센터장, 하은희 팀장, 정경애 팀원)

▢ “90년 전에 ‘포항YMCA 씨앗’ 심어”

포항YMCA가 설립 44주년을 맞았다고 하지만 이미 90여 년 전 포항YMCA라는 씨앗을 심고 자라게 했던 이들이 있다. 그 어렵던 시절에도 그렇게 고귀한 일을 이뤘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포항YMCA의 영광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포항YMCA가 태동의 몸짓을 보이기 시작한 최초의 시기는 1920년대 중반 한국YMCA가 전국적으로 대규모의 농촌운동을 개시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YMCA는 전국 각지에 경제운동, 교육사업, 체육사업, 복음운동 등을 일으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주력하던 때였다.

1925년 10월 24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경북 포항 기독청년회가 지난 18일 하오 4시 청년회 예배당에서 임시총회를 개최했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포항지역 3.1운동사를 기록한 포항시사(267 페이지)를 보면 1919년 3․1운동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중심이 되어 포항기독청년회를 이끌어 갔고, 야학을 통한 인재양성에 힘썼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1925년에 펴낸 한국YMCA연맹사의 10개 시(市) 청년회 중 포항 청년회는 볼 수 없다. 그러나 YMCA가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야학을 통한 민중계몽과 농촌교육사업을 진행했다는 점을 미뤄, ‘포항기독청년회’는 당시 이상재 선생이나 윤치호 선생과 같은 YMCA를 이끌어 갔던 민족지도자들이 뜻을 이어가려는 애국적인 기독인들이 주축이 되어 포항지역에서 활동을 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형산강 전투로 치열했던 포항에서 “‘YMCA’ 완장을 차고 미군들과 함께 피난민을 수송하며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시민들의 증언도 있다.

한국전쟁 뒤 지역 기독 청년들은 대한YMCA의 권유로 1959년 9월 포항제이교회에서 초대이사장에 한영빈 장로(이후 포항세명기독병원 설립이사장), 총무에 최우근 목사를 선출하고 포항YMCA 설립에 들어간데 이어 1963년 9월 같은 교회에서 정식 포항YMCA 창립총회를 열고 출범했다.
포항YMCA는 대한YMCA 권유로 탄생했으나 의욕만 있었지 제대로 활동을 하지 못하다 창립된 지 5년 만에 자연 해체됐다.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한영빈 전 이사장이 훗날 “연맹에서 이끌어 주는 사람도 없고 똑똑한 간사도 없으니 의욕만 있었지 제대로 활동하지 못한 때였다”고 회고했다고 한다.

▢ 1975년 포항YMCA 돛 올려

그러던 중 1968년 3월 와이즈멘 포항클럽과 1974년 10월 사마리안클럽이 창립했다. 이들 클럽은 1974년 12월 포항YMCA 재창립을 결의했다.
이어 1975년 7월 전체 회원 302명 중 182명이 참석한 가운데 포항제일교회에서 창립총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포항YMCA가 탄생했으며, 초대이사장에 김경섭, 임시총무에 최우근이 맡았다.
이후 자격 있는 간사에 최휴일과 활동력이 강한 최인규를 간사로 임명했다. 사무실은 포항제이교회로 사용했다.
사무실은 제이교회→대한도시바 3층(여천동)→구 농협(덕산동)→구 선린병원 2층(동빈동)→포항 프린트 2층(덕산동)→포항극장 앞 3층(대흥동)→해도 1동(사옥 마련)→ 동빈동에 이어 2007년 5월 11억 원 가량을 들여 육거리 5층 건물을 매입, 사옥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육거리 5층 사옥은 1층 임대, 2층 포항YMCA 법인사무실, 3층 성문화센터 사무실, 영어학원 임대, 4층 성문화센터 체험관, 5층 와이즈멘 사무실로 꾸며져 있다.

포항YMCA가 가장 먼저 한 사업은 흥해를 중심으로 하는 영포Y신협(초대 이사장 조현섭)과 양곡조합 설립이었다.
이듬해인 1976년 4월 회원모집을 통해 865명의 회원을 모집, 그해 5월 2차 총회 때에는 1차 총회 302명 보다 610명 늘어난 912명이 됐다.

2018년 청소년 해양캠프.
2018년 청소년 해양캠프.

▢ 평생회원 강신우·황대봉 등 34명 가입

평생회원은 강신우, 강영진, 고영관, 김경섭, 김두수, 김석이, 김성배, 김성찬, 김응교, 김익규, 김종원, 박경호, 손종택, 양용주, 오호용, 이동식, 이병호, 이상길, 이세구, 이종학, 이종환, 이태홍, 임인재, 임일승, 임종빈, 조진목, 최승해, 최우근, 최익천, 최인규, 최재원, 하태환, 한영빈, 황대봉 등 34명이다.

회관도 여천동의 대한도시바 3층 80평을 마련, 창립 1년 만에 임시사무실 신세를 벗어났다.

그해 6~7월 포항공고 ‘벧엘클럽’ 창립을 시작으로 포항고, 포항여고, 동지여상, 동지고, 수산고, 간호고 등 지역 7개 고교YMCA클럽이 만들어졌다.
뒤이어 청년YMCA ‘구유모임(회장 남기원)’이 결성됐고, 음악클럽(회장 박철수), 문학클럽(회장 박홍곤), 산악클럽(회장 정병택)이 탄생했다.
산악클럽은 포항 송라 내연산 계곡 등 전국의 유명산을 매주 등반하며 ‘나무 사랑하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 고교Y․청년Y․성인Y 잇따라 출범

이상점 전 총무는 “고교Y와 청년Y, 성인Y가 대대적으로 조직 될 수 있었던 것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속에서 젊음을 발산할 마땅한 기회와 장소가 거의 없던 당시 청년들에게 YMCA가 거의 유일한 마당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1975년 10월 창단된 포항YMCA 합창단과 음악클럽은 시내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매주 금요 음악감상회를 열었고, 기계면 오덕동에서 여름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다음해 7월에는 포항YMCA 회보도 발간해 YMCA를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회보의 제호는 ‘포항YMCA뉴스’에서 출발해 ‘포항YMCA’, ‘포항YMCA소식’, ‘포항YMCA뉴스’, ‘영일만소식’으로 변경돼 왔다.

반면에 초기 포항YMCA는 실무진의 잦은 교체와 공백, 회관 이전 등으로 인해 정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교교Y와 취미클럽들이 자율성을 주장하며 자기 몫을 찾아 각각 활동하다 해산되는 등 제대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총무를 역임했던 최인규 씨(영창피아노 대표)는 “YMCA의 필요성은 충분히 느꼈지만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전문 유자격 간사가 없어 YMCA의 정신과 이념을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 보이지 못했다. 그러나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뭉쳐 YMCA를 일궈내기 위한 꿈틀거림이 있었다. 이로 인해 도약단계의 포항YMCA로 진입할 수 있었다”고 개괄적인 평가를 했다.
최씨는 “YMCA 글씨 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뛰고 힘이 솟아났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상점 전 총무도 “메마른 땅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이름도 빛도 없이 헌신 봉사했던 선배일꾼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수확을 거둘 수 있게 됐다”고 했다.

2019년 포항YMCA 제44차 정기총회에 참석한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년 포항YMCA 제44차 정기총회에 참석한 이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모심기·자연보호 캠페인 ‘활발’

1979년 4월 늘푸름회(회장 이종한)가 창립돼 청년클럽의 맥을 이을 수 있었다. 늘푸름회의 창립은 그해 초 교회지도자 레크리에이션 강습회가 계기가 됐다.
늘푸름회는 매주 목요일 모임을 가졌다. 5명의 회원에서 20명으로 늘어났다.
농촌지역 모심기 돕기와 자연보호 캠페인 등을 전개했으며, 경로체육대회도 주관했다.

제1회 경로체육대회에는 시내 12개 경로당과 구룡포까지 900여명의 어르신들이 참가했다. 과자 따먹기와 목마타기 등 다양한 종목의 경기가 진행됐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 대회를 기약하며 귀가했다.

▢ 경로체육대회 2천여명 참석 ‘대성황’

제2회 대회에는 16개 경로당의 1천여 명의 어르신이 참가했다. 제4회 대회 때부터는 청년클럽 시연맹(늘푸름회, 한우물회, 아람회)이 인수해 대회를 개최했다. 참가인원은 영일군 경로분회까지 동참해 2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 대회는 제5회 대회에 참가한 어르신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뒤 수습과정에서 원만하지 못한 이유로 이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초대 늘푸름회장을 역임한 이종한 씨(현 기쁨의교회 장로)는 “봉사활동으로 젊음을 불태울 방법을 생각하다가 경로체육대회를 생각해 냈다. 당시 유행하던 일일찻집을 하고, 회원들이 만든 카드를 판매해 대회비용을 마련했다. 외부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않았다. 자체 힘으로 대회를 치렀다.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자신감을 갖고 의욕적으로 YMCA 일을 바라보게 된 것이 소득이라 할 수 있었다.”고 당시 대회를 떠올렸다.

▢ 가면무도회, 전국 첫 시도 ‘큰 인기’

한우물회(회장 박광수)는 늘푸름회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분리되어 만든 클럽이었다. 80년 2월 창립되었는데, 특별히 ‘가면무도의 밤’이라는 행사를 마련해 젊은이들에게 여가를 위한 건전한 오락을 매개로 YMCA를 소개하고 모임을 형성했다.
가면무도회는 포항에서 처음 시도, 청년들에게 많은 흥미를 불러 일으켰으며 84년까지 매회 100여명 이상 참가했다.

포항실업전문대학 2부 학생들로 조직된 아람회(회장 이귀종)는 80년 6월 출범했다. 일일찻집을 통해 얻은 수입으로 영일군 기계면 성계 1동 4H클럽 회원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농촌의 청소년들을 위한 활동을 펴오고 있다.

청년Y클럽의 왕성한 활동 속 연극 및 음악활동을 통한 다양한 문화 활동도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포항교육청의 후원에 힘입어 ‘YMCA소녀소년합창단’이 탄생했다. 각 학교 담당 교사로부터 추천 받은 60명 중 40명을 선발했다. 지휘는 대구 MBCTV 어린이 음악 심사위원인 나경관 씨가 맡았다.
1979년 9월에는 ‘YMCA고전기타합주단’(지휘 구동회)이 창단됐으며, 매년 정기발표회를 개최해 왔다. 제25차 YMCA 전국대회에서 찬조출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일은 극단 ‘은하(대표 김삼일)’의 포항YMCA 성인클럽 등록이다. 극단 ‘은하’는 1980년 10월 등록 이래 매주 토요일마다 상설공연을 이어갔다. 지역 공연문화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첫 공연 작품은 ‘결혼신청’이었다. YMCA 김성민 이사가 연출을 맡았다. 이런 인연으로 극단 대표 김삼일 씨가 한때 YMCA 이사를 역임했다.

선린대학교 포항YMCA 동아리 창립식.
선린대학교 포항YMCA 동아리 창립식.

▢ “창립 5년 만에 연맹 가입”

창립 5년 만에 연맹에 가입했다.
이때부터 성인 대상의 사회교육 프로그램을 집중 개발했다. 전국적으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키며 유행하고 있던 에어로빅 체조 강습회에는 120여명이 참여하는 성황을 이뤘다. 강습회를 끝낸 회원들을 위해 매주 3회씩 Y여성체능교실을 따로 운영할 정도였다. 이때 갈고 닦은 실력으로 영남지역 Y회원대회에서 에어로빅 댄싱팀이 금상을 수상했다.

꽃꽂이교실, 동양매듭교실, 기타교실 등의 취미교실과 양초공예강습, 레크리에이션강습, 수영강습 등도 좋은 반응을 얻어 YMCA의 이미지를 강하게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Y유아교실에 이어 아기스포츠단도 개원했다. 유아교육 및 사회교육 활동이 활발히 진행된 1982년에는 1천명 회원 모집 목표에 1천422명을 모집했다. 전국에서도 상위에 차지할 정도로 성공했다.

선린대학교 포항YMCA 동아리 창립식.
선린대학교 포항YMCA 동아리 창립식.

▢ “80년대 민주화 열망 외면 안 해”

80년대 후반은 6․10민중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 및 학생, 시민들로부터 제기된 통일운동의 확산 등으로 민주화의 열망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뜨겁게 불타오르던 시기였다. 
포항YMCA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외면할 수 없었다. 86년도 사업계획에 시민중계실의 신설을 제기했다. 그해 5~6월께 설립위원회를 구성키로 했으나 제정적인 압박감을 고려, 결실을 보지 못하다 94년 7월 정식 개소했다.
88년 7월에는 YMCA 강당에서 양담배 불매운동 시민결의대회를 개최한 뒤 고속버스터미널~오거리~우체국 앞까지 가두 캠페인을 전개하며 시민동참을 호소했다.
그해 2월에는 포항YMCA 소년축구단을 창단, 일본 소년축구단과 매년 친선경기를 통해 국제적인 유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90년대 본격 시민사회로 진입

80년대의 온갖 정치, 사회적 혼란을 딛고 90년대에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하는 본격적인 시민사회로의 진입을 했다.
90년 1월 제10대 이상점 총무가 부임했다. 이 총무는 ‘YMCA가 지역사회에 평화를 건설하고, 청소년에게 밝은 미래를 확장하는 일에 공헌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려는 YMCA의 설립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총무로서의 직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하는 취임선서를 했다. 제10대 이사장에는 김영문 약사(현 선린대학교 총장)가 취임했다.

회원확장운동(위원장 박노정)을 벌였다. 결과 회원 1천명 목표와 회비 1천500만원 목표를 초과달성(회원 1천96명, 회비 2천339만원)했다.
이러한 성공은 위원장 및 회원사업위원회와 실무자를 중심으로 10여 차례의 조직적 준비와 와이즈멘 4개 클럽의 적극적인 참여 및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90년 벽두부터 UR(우루과이라운도)협상이 태풍의 눈으로 등장하면서 농민과 농촌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시민운동이 전개됐다.
그해 6월 ‘환경오염의 극복과 바람직한 먹거리운동’을 주제로 시민공개 강좌를 개최한데 이어 9월부터 ‘농민은 소비자의 생명을, 소비자는 농민의 생활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우리농산물 먹기 회원 결의대회’를 가졌다. 2부에서는 가두캠페인을 전개하며 시민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 30년 만의 부활된 지방선거 감시단 역할 ‘톡톡’

91년은 30년 만에 부활하는 지방자치제 선거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주민자치의 욕구가 강하게 분출하던 때였다. 과도기적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안정된 기반을 마련한 포항YMCA가 시민주권을 회복하고 진정한 의미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일에 주동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해 2월 ‘깨끗한 선거를 위한 포항지역 민주시민 단체협의회’(약칭 포민협) 결성대회가 YMCA강당에서 열렸다. 참여단체는 포항YMCA, 포항YWCA, 포항지역발전연구소, 영포불교청년연합회였다.
포민협은 공정선거 감시단을 발족하고 지자체 시민의식 설문조사, 민주화 실현을 위한 시민토론마당, 지자제 선거 참여를 위한 가두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참여와 자치를 위한 시민연대회의’ 전국협의회 등 전국적 연대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포민협은 깨끗한 선거문화의 정착을 위한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고, 이후 1992년 14대 총선과 대통령선거에 있어서 공명선거실천 시민운동 포항시협의회(약칭 포항 공선협)로 발전, 더욱 강력한 시민역량을 과시했다.

14대 총선 당시 공선협 활동에 참가한 단체는 YMCA, 지역발전연구소, 청년회의소, 향토청년회, 포항향지회, 한국노총 포항지부 등 6개 단체였다.
14대 대통령선거 때는 포항시기독교교회연합회와 포항경실련, 금속노련 포항본부가 가세했다. 공선협 활동은 바람직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고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 유도해 진정한 지역자치, 주민자치를 일구어 가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후 공선협은 다음 자치단체장 선거 시기까지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지역의 현안문제 즉 환경문제, 청소년문제, 도로 교통문제, 각종 집단민원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기 위한 상설적 시민운동협의체(가칭 시민연대회의)로 발전시키기로 결의했다.

YMCA 위상을 높여왔던 10대 김영문 이사장에 이어 제11대 박노정 이사장이 취임했다.
박 이사장은 2천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환경운동과 내일의 지도자인 청소년 육성에 방점을 찍고 청소년 상담실 개설과 지회운영 계획 등을 발표했다.

▢ 청소년 상담실·시민중계실 문 열어

1992년 7월부터 94년 7월까지 간헐적으로 운영돼 오던 청소년 상담실과 시민중계실이 개소했다.
청소년 상담실은 ‘내일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 고민에 동참함으로써 청소년 문제를 해결하며, 청소년 스스로가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으로 성장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청소년 상담실의 이름은 ‘천사의 소리’였다. 진학문제, 교우관계, 이성문제, 성문제, 신상문제, 가정문제 등에 관해 상담했다. 상담봉사자는 11명이 위촉됐다.
개설된 첫해 상담실적은 전화상담 71건, 면접상담 5건으로 총 76건이었고, 내용별로 보면 성문제가 20건, 이성교제 17건, 정신건강 14건 등이었다.

시민중계실은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를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자문을 구하고 자원상담원 교육을 실시했다.
상담접수 현황을 보면 90년 92건, 91년 166건, 92년 214건, 93년 240건으로 급증했다.

▢ 서병철 간사 영입… 지역 시민운동 불 뿜어

1993년 3월 부산경실련 창립 책임간사와 서울 경실련 조직국 간사를 지낸 서병철 씨가 포항YMCA 시민사업부 간사를 맡았다.
서 씨의 포항YMCA 간사 영입은 포항YMCA 활동에 큰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듬해인 1994년부터 시민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됐다.
서 간사는 이상점 총무(총장)와 이배진 이사장을 도와 시민정책연구소를 개소했다. 초대소장에는 백성기 포스텍 교수가 맡았다.
시내버스 개혁운동도 추진됐다. 지역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시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시의회의 역할도 컸다.

1993년 용흥동 삼성아파트 건립과 관련해서도 포항시 도시행정에 경종을 울렸다.
이 아파트 문제가 시민중계실에 접수되자 주민들과 함께 진상규명을 위한 현장방문을 했다. 시의회 방청에 이어 도시계획국장 및 시의회 의장과 직접 면담을 가졌다. 건축허가 과정상의 하자에 대한 자료조사 활동 등을 전개했다. 결국 삼성건설 측과 주민간의 조정합의를 이끌어 냈다. 5개 층을 나췄고, 주민들을 위해 복지관을 지어주기로 했다.
포항시로부터는 건축허가 때 환경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어 지속가능한 도시건설을 위한 환경사회운동의 발판을 구축했다.

공선협 활동에 이어 중앙상가 차 없는 거리 조성 및 중앙상가 살리기 캠페인, 송도백사장 유실문제 대응, 청소년 폭력 없는 사회 만들기, 바다쓰레기 모니터링 등도 시민들로부터 관심을 이끌어냈다.

청소년 상담실과 시민중계실이 정착해감으로써 지역사회가 안고 있는 제반의 모순이 하나하나 해결돼 갔다.

▢ 창포종합사회복지관 위탁 운영

1994년 6월 한국 최대의 산업폐기물(일반폐기물과 특수폐기물 혼합) 처리업체인 (주)유봉산업의 산업폐기물 매립장 붕괴사고가 터졌다.
포항YMCA, 포항경실련, 포항지역사회연구소, 향토청년회, 향지회, 금속노련, 노총 등 11개 단체가 범시민대책위를 구성하고 환경운동연합과 공동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그 후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 유봉산업 관계자가 간담회를 갖고 복구 후 조업가동을 하지 전에 민간 사회단체들의 안전도 검사를 받고 가동하기로 합의했다. 매립장 붕괴에 따른 지역 환경 실태조사를 시민단체가 책임을 지고 추진할 수 있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그해 11월에는 포항시로부터 창포동에 소재한 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운영 했다.
창포종합사회복지관은 YMCA가 지역 시민생활 향상과 복지증진에 더욱 밀착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복지관이 위치한 곳은 영세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단지였다. 사회복지사업을 통해 저소득층의 자립 능력을 배양해 중산층에 이르도록 유도하고, 저소득층이 갖고 있는 정체성으로 인해 생기기 쉬운 각종 사회문제를 예방 치료하도록 했다.
또 각종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주민의 연대감을 조성, 새로운 기풍을 정착시켜 나갔다. 이렇게 과도기를 딛고 발전기에 접어든 포항YMCA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주역으로서 건강한 민주시민을 양성하고, 사회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 농어촌 공부방·녹색장난감 가게 개소

2004년에는 방과 후 농어촌 공부방사업을 진행했고, 2009년에는 재단법인 포항기독교청년회유지재단을 설립했다. 또 구도심 활성화를 위한 녹색장난감 가게를 열어 시민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장난감을 제공했다.
탈북민들을 위한 통일부 동부하나센터와 포항청소년성문화센터도 위탁운영을 했으며, 공교육 활성화를 위한 트러스트 스쿨운동도 진행했다.
포항 의정평가단 활동을 통해서는 베스트 시의원을 선정해 격려했고, 러블리카페 ‘공정무역커피점’도 운영하고 청소년문화공간도 개소했다.
지난해에는 포항시자원봉사센터를 위탁운영 했다.

이순자 포항YMCA 이사장이 2016년 8월 포항시청에서 열린 포항 장외경륜장 설치반대 기자회견에서 반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순자 포항YMCA 이사장이 2016년 8월 포항시청에서 열린 포항 장외경륜장 설치반대 기자회견에서 반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 장외경륜장 포항유치 막아 ‘환호’

2016년 6월 포항성시화운동본부(대표본부장 김원주)와 포항시기독교교회연합회(회장 김대원), 포항기독교기관협의회, 포항경실련 등과 포항장외경륜장 유치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이들 단체는 “경제적 이유만으로 청소년이 많이 다니는 중앙상가에 사실상 도박장인 경륜장이 들어서면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는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 중앙상가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강력 반발했다.

이순자 포항YMCA 이사장이 2016년 8월 29일 낮 12시 포항 시내 한 음식점에서 문화부·종교부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륜장 포항유치에 대한 반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이순자 포항YMCA 이사장이 2016년 8월 29일 낮 12시 포항 시내 한 음식점에서 문화부·종교부 기자간담회를 갖고 경륜장 포항유치에 대한 반대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포항YMCA(이사장 이순자)와 포항경실련(공동대표 혜광·권영준)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포항경실련은 장외경륜장 유치에 따른 지역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분석한 결과, 지역의 경기 활성화에 대한 창원경륜공단과 유치위원회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창원경륜공단 측은 700억 원의 매출로 포항시에 17억900만원의 세수를 더해 줄 것이라고 밝혔지만 포항시의 자체 조사결과 3억6천500만원의 재정수익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창원경륜공단은 98억 원을, 창원시가 49억 원, 경북도가 45억3천500만 원을 가져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창원경륜공단과 창원시가 포항시민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147억 원의 수익을 가져가겠다는 것으로 지역경제를 침탈하는 것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포항시와 시의회는 그해 9월 세수수입이 3억6천500만원이라는 분석과 창원경륜공단의 경제 활성화 제안이 허구하는 결론을 도출하고 장외경륜장 유치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로써 장외경륜장 포항유치는 무산됐다.

도박장으로 불린 장외경륜장 포항유치가 불발이후 경륜장 포항유치반대에 나셨던 포항YMCA 권오성 사무총장이 3개월 뒤 그해 12월 자리에서 물러났고, 역시 경륜장 포항유치 반대에 적극성을 띠었던 포항경실련이 그해 10월 해체수순에 들어가 결국 해체됐다.

▢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 본격화

2019년 4월 현재 포항YMCA에는 조원호 이사장과 이상열 사무총장(목사), 양경미 팀장, 김성모 간사가 법인본부 실무를 보고 있다. 또 부속기관인 청소년문화센터는 정태영 센터장, 하은희 팀장, 김주희 씨, 윤영은 씨, 권화영 씨 등 5명이 근무 중이다.
법인본부는 농․어촌지역 사랑의 공부방,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 포항시장배 청소년 길거리 농구대회, 청소년 참정권 운동, 청소년 해양캠프 “O Captain, 나의 선장님”, 포항 시장배 청소년 풋살대회, 청소년 밴드페스티벌를 이어가고 있다.

2004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방과후 농․어촌공부방사업은 흥해지역에서 15~20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시행해 오다 2013년 후반기부터 연일 한우리침례교회에서 진행하고 있다. 자기주도학습, 동화구연, 음악교실, 영어교실 등을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 유해환경감시단사업은 청소년 유해환경 감시단 교육과 청소년 유해환경 근절 캠페인․서명운동 실시, 청소년 유해환경 모니터링 실시 등이다.

지난해에는 청소년 출입업소 등 87회 1천44건을 모니터링 했으며, 이중 42건을 포항시 등에 통보해 시정권고를 했다. 19세 청소년 감시단원의 주류․담배 판매금지 스티커 부착 등의 청소년 유해환경에 대한 계도활동은 업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다.

올해로 20년이 된 포항시장배 길거리 농구대회는 5월 포항 영일대 해수욕장 광장에서 열린다. 중등부 12개 팀과 고등부 22개 팀이 참가, 실력을 겨룬다.

이 사업은 청소년들에게 건전한 스포츠 활동을 통해 지․덕․체의 균형 있는 성장을 도모하고 협동심과 희생정신, 승부욕, 성취감 등을 바탕으로 단체스포츠 활동의 이점을 살려 일탈적이고 이기적인 문화풍토에 대응하는 바람직한 여가문화의 모범을 제시해 주고 있다.

제20회 포항시장배 청소년 풋살대회.
제20회 포항시장배 청소년 풋살대회.

▢ 청소년 해양캠프, 협동심·리더십 길러줘

20여 년째 이어지고 있는 청소년 해양캠프 “O Captain, 나의 선장님”은 매년 8월 1박2일 포항YMCA 청소년문화공간 및 영일대 해수욕장 일대에서 포항지역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캠프기간 동안 단체 활동을 통해 협동심과 배려심, 리더십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으며,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이뤄진 지역사회 환경을 몸소 느끼며, 지역에 대한 애향심을 기르고 있다.

청소년 거리 버스킹과 목공예 스킴보드 만들기, 캠프파이어 등의 활동을 통해서는 입시위주의 공부에서 벗어나 문화적 감수성을 향상시키고 있다. 외국인 스태프와 대화를 통해서는 원만한 대인관계활동 및 국제적 감각을 경험하기도 한다.

21회를 맞은 포항 시장배 청소년 풋살대회는 11월 포스코 협동 스포츠랜드에서 포항지역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진행 하고 있다. 중등부 14개 팀과 고등부 18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청소년들은 대회를 통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능력을 견인하고 있다.

2017년 시작한 청소년 밴드페스티벌은 12월 포항 중앙아트홀에서 포항지역 청소년 3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청소년 밴드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청소년밴드 10개 팀이 참가, 꿈과 끼와 열정을 키웠다.

▢문화학교·실버서포터즈 운영… “방문판매 예방 도움”

문화학교, 실버서포터즈, 포항YMCA 러블리카페 등도 운영하고 있다.
20여 년간 이어 온 문화학교는 해마다 3월부터 12월까지 포항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바리스타과정을 통해 에스프레소 및 핸드드립커피에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하고, 플로리스트과정을 통해서는 생화 구매에 대한 가격부담을 가볍게해 꽃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티스트 4회(32명), 바리스타 20회(200명), 플로리스트 12회(96명)를 진행했다.

실버서포터즈는 소비와 피싱, 스미싱 예방교육이다. 해마다 3월부터 12월까지 포항지역 경로당을 돌며 어르신들에게 소비경제 교육을 통해 방문판매, 금융사기, 피싱, 스미싱 등에 관한 예방교육을 실시, 피해를 입지 않도록 돕고 있다.

포항YMCA 러블리카페는 포항롯데백화점 별관 문화센터 7층에서 운영하고 있다. 판매수익금은 포항지역사회와 동티모르에 환원하고 있으며,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포항YMCA 사옥 4층에 마련된 청소년성문화센터 체험관. 윤영은 교사가 성문화체험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포항YMCA 사옥 4층에 마련된 청소년성문화센터 체험관. 윤영은 교사가 성문화체험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 청소년성문화센터 개소… 성문화체험관 ‘북적’

포항청소년성문화센터는 여성가족부로부터 위탁받아 2010년 9월 개소했다.
성이라는 테마를 통해 청소년에게 스스로 자기 주도적․실천적 체험학습을 제공함으로써 올바른 성지식 습득을 돕고 있다.

성문화체험관을 통해서는 성을 오감으로 체험해 건강한 성인식을 높이고, 성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은폐적인 성에 대한 콘텐츠를 건전한 정보로 재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성범죄로부터 아동․청소년들 보호하고 성폭력 예방과 근절을 위해 관련기관과 함께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1년간 유아․아동․청소년․성인 등 5천263명에게 포항YMCA 사옥 4층에 만든 성문화센터 체험관 방문을 통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역시 1년간 포항지역 학교 및 기관을 대상으로 2만1천152명에게 ‘찾아가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4~10월은 유치원․어린이집 종사자 및 청소년 관련시설 종사자 559명을 대상으로 7회 성범죄 신고의무 및 취업제한 맞춤형 홍보교육을 실시했고, 7월과 11월에는 포항중앙상가 실개천에서 시험을 마친 지역사회 청소년 1천644명(2회)을 대상으로 성범죄예방 인식개선 캠페인을 전개했다.

11월에는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지역사회 청소년들의 축제 현장을 찾아 404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올바른 성인식 캠페인을 실시했고, 2~12월에는 포항 남․북부경찰서, 포항시청소년재단 등에서 지원체계 구축 및 청소년들의 성문화 실태 파악을 하기도 했다.

5월과 7월에는 포항시 다문화가족․건강가정지원센터․포항시 Wee센터․한국방송통신대학 청소년교육과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교육영역 확대와 업무효율성을 높이기로 했다.

포항청소년성문화센터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포항청소년성문화센터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정태영 센터장은 “인터넷 가입이 늘어나면서 성에 대한 아이들의 사고는 열려있는 반면 어른들의 사고는 닫혀있어 초기 성교육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지속적이고 올바른 성교육을 통해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고 자연스럽게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서병철 전 사무총장은 “지난 20년간 때로는 부딪치며, 때론 협력하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고자 열정을 쏟아 왔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이 더불어 사는 사회, 민주적이고 주민자치적인 사회, 한층 살기 좋은 포항, 더 행복한 포항 건설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고민을 하는 등 자기희생이 있어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교인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한 뒤 “그간 YMCA 활동이 개인적으로 보람 있었고, 인격적으로 성숙해 질 수 있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서병철 씨는 1993년 3월~1996년 12월까지 간사로, 2000년 1월부터 2015년 4월까지 간사와 사무총장(대표간사)으로 19년 여간 포항YMCA에서 활동을 했다. 이후 2015년 9월부터 한동대학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상열 사무총장(목사)은 “포항지역 각 고등학교에 고교 기독학생회인 청소년YMCA를 만들어 왕따와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등 학원복음화의 꿈을 이루겠다”고 말했다.
또 “지역 사회적으로는 ‘감사미인(감사·사랑·미소·인사)운동’을 전개하며 사랑과 정이 넘치는 도시 만들기에 힘을 보태겠다”며 “이를 위해 30~40명의 기도모임이 구성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다.

▢ 2019년 포항YMCA 이사

3년조 : 김민규, 이수자, 이순자, 이재덕, 조근식, 조원호, 황동욱, 이한웅
2년조 : 강희성, 고창대, 김병우, 김진동, 이동섭, 김경민, 임성호, 정정미
1년조 : 권영철, 김경범, 서광원, 장병섭, 조종복, 한동선, 문도인, 조기현, 김진곤
추천이사 : 정진욱, 박봉조, 백경희, 박용규, 장혜경, 신해숙
직무이사 : 이상열
감사 : 윤용기(1년조), 박경희(2년조)

▢ 포항YMCA 역대 이사장과 역대 총무(당시 직함)

△역대 이사장
초대, 3대 김경섭(동인병원장), 2대 김두수(대흥의원장), 4대 한영빈(기독병원장), 5대 김성배(김이비인후과의원장), 6대 김현호(대동고등학교장), 7대 최인규(삼익피아노 대표), 8대 이종학(선린전문대학장), 9대 이동대(중앙건설 대표), 10대 김영문(천우당 약국 대표), 11대 박노정(청십자약품 대표), 12대 이배진(이배진 치과원장), 13대 박기찬(세무사), 14대 허호용(사진관 대표), 15대 공원식(포항시의원), 16대 백성기(가속기연구소장), 17대 황동욱(사진관 대표), 18대 박화종(에스페로내과원장), 19대 강희성(동해기전 대표), 20대 이순자(흥해경희요양병원장), 21대 장규열(한동대 교수), 22대 조원호(기아자동차 형산대리점 대표).

△역대 총무
초대 최우근, 2대 최인규, 3대 김병곤, 4대 장만호, 5대 도상기, 6대 김용호, 7대 김영민, 8대 최용준, 9대 황용원, 10대 이상점, 11대 서병철, 12대 권오성, 13대 이상렬 목사.
 

▢ “YMCA운동은 기독교사회운동”

YMCA는 이 땅에 구미 선진문물이 유입되는 과정에서 개화바람을 타고 민족의 자주 독립을 지향하는 가운데 생겨났다.
한국YMCA운동은 한국사회가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지향하며 전통을 거듭하던 시기에 개화의 구국의 깃발을 높이 들고 태동한 기독교 사회운동이었다.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의 선각적 지사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되고 나서 독립협회를 잃은 개화청년들이 이를 대신하는 일종의 개화 민족운동단체로서 새로 조직한 것이 1903년 YMCA의 발족이었다.

1903년 10월 최초의 시청년회로 황성기독교청년회가 창립되면서 역사의 표면에 그 모습을 드러낸 YMCA는 이상재, 홍재기, 김정식, 이원긍, 유성준, 안국선, 이승만, 윤치호, 김규식 등이 대거 가입함으로써 지난날의 독립협회운동을 그대로 계승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3·1운동과 교육사업, 농촌사업, 외교적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갔다.
일제말기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서울YMCA)가 일본인 주도의 경성YMCA 종로지회로 격화되고 모든 청년회가 강제 폐쇄되는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대구, 광주 등 주요 도시에서 YMCA 재건작업이 활발히 진행됐다. 그러던 중 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기도 했다.

YMCA는 이후에도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며 수많은 탄압과 속박을 받으며 위축되기도 했으나 성숙된 협력의지를 바탕으로 열린 시민사회의 파수꾼으로서 민주시민운동을 전개, 한국사회의 도도한 물줄기를 형성해 왔다.

YMCA(기독교청년회)는 젊은이들이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함께 배우고 훈련하며, 역사적 책임의식을 개발하고, 사랑과 정의의 실현을 위해 일하며, 민중의 복지향상과 새문화 창조에 이바지함으로써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조원호 포항YMCA 이사장은 “YMCA운동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청년·청소년운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청년·청소년이 행복해 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일과 국제와이즈멘(경북동지방)과 함께 동행하며, 포항YMCA 변화를 통해 성장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동기자 kd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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