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우리는 계급을 미리 정하고 조건반사적 습성을 훈련시킨다. 우리는 사회화된 아기를 내놓는다. 아기들은 책과 꽃에 대한 본능적 증오심을 가지고 성장할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가 쓴‘멋진 신세계’를 읽으며 주목한 구절이다. ‘문명사회’는 사람들을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구분한다. 아기 때부터 책과 자연을 본능적으로 싫어하도록 책과 꽃에 다가갈 때마다 요란한 소리와 전류쇼크를 준다. ‘하수구 청소부’로 배치되는 엡실론 계급은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존재로 양육된다.

이러한 문명사회의 “도서관에는 오직 참고서류밖에 없다.” 셰익스피어가 쓴 책은 ‘미개한 땅의 이야기’로 치부되어 읽지 않는다. 학생들은 기분 전환이 필요하면 ‘촉감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고 고통을 느낄 경우 ‘소마’를 먹고 행복해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를 모르는 세상, 쾌락적인 감각에만 의존하는 세계는 결코 행복한 사회가 아닐 것이다. 2019년 ‘책의 날’을 앞두고 문득 드는 생각, 우리는 어떤 사회로 나아가고 있는가?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독서 출판을 증진하고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1995년 유네스코가 제정하였다. 책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던 ‘세인트 조지’ 축일과 세계적인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가 사망한 날에 ‘책’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든 날이다. 에스파냐에서는 책과 장미의 축제가 펼쳐지고, 세계 곳곳에서 책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우리도 곳곳에서 책의 날을 기념하지만, 현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밀리고 있다. 한국인의 독서량은 OECD 회원국 가운데 꼴찌다. ‘책의 해’였던 작년만 보더라도, 일본의 평균 독서량이 40권이었던 것에 비해 우리는 8.3권을 읽었다. 1천만관객 영화가 나오고, 게임산업 매출이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출판계는 위기를 호소한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이 책과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고등학생 7명 중의 1명은 3년 동안 단 한권의 책도 읽지 않았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학생들도 대부분 생기부에 독서활동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입시모드로 전환된 사회에서 학생들의 하루는 영어와 수학학원 공부만으로도 빡빡하다. 학업이 우선인 환경에서 독서는 뒷전이다. 책을 읽을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어 독서를 포기하는 ‘독포자’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대학생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매일 토익 책을 펼치고 인적성검사 기출문제를 푼다. 입시부담은 취업부담으로 이어져 독서는 나중 일이다. 이런 점에서 동원육영재단이 독서를 통한 인성교육을 강조하며, 대학생들이 폭넓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의 의미가 크다. 멘토 교수로서 참여하고 있는 ‘숙명라이프 아카데미’의 경우 올해 ‘동료수업’을 마련하였다. 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발표와 독서토론을 하며 수업을 이끌어가도록 하였다.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함께 책을 읽으며 서로 질문하고 소통한다. 혼자서 읽는 독서에서 사회적 독서로 의미를 확장하는 것이다.

최근 부산시청 로비에 ‘꿈+도서관’이 마련된다는 소식이 더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과 자연스레 만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이 늘어나야 하고,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시민이 행복한 책읽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부산시가 시민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로비 공간을 도서관으로 탈바꿈하겠다고 한 것은 큰 변화의 시작이다. 행정업무만 보고 총총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1층 로비에 위치한 도서관을 잠시 둘러보다가, 누군가는 책 장을 펼쳐보기도 하고 책을 읽는 기적같은 효과를 낳을 것이다. 진정으로 ‘멋진’ 신세계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책의 날’에 만방에 외친다. 자유롭게 책을 읽고 떠들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그런 시간과 공간을 제공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