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키케로의 책 ‘노년에 관하여’는 30대 젊은이 라일리우스와 스키피오가 80대 카토를 찾아와 노년의 삶에 대해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카토는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 없다면 모든 인생 시기가 부담스러운 법”이라며 노년이 되었다고 특별히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로마 최고 정치지도자였던 키케로는 카토를 통해 철학하는 삶에 기반한 노년의 행복을 말하였다. 그러나 한국에서 평균적인 노인들의 삶은 어떠한지, 과연 영예롭고 행복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우리 사회에 무엇을 시사하는가?

유엔이 발표한 ‘2019 세계행복 보고서’에 의하면 핀란드가 지난 해에 이어 1위를 차지하였다. 현재생활만족도를 비롯해 사회적 지원, 1인당 국민총생산, 기대수명, 자유, 관용, 부패 등을 더해 행복지수를 산출한 결과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159개국 중에서 54위였다. 1인당 GDP 27위, 기대수명 9위는 상위권이었으나, 사회적 지원 91위, 부패 100위, 자유 순위는 144위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기대수명과 사회적 지원 사이의 갭이다. 사회적 자본이 빈곤한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인 세대의 양극화가 심하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노년기에 더 결정적이다. 호텔 수준의 고급 실버타운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는 노인과 대조적으로 쪽방촌에서 홀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독거노인도 있다. 가난한 사람이 나이 드는 경우 불평등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OECD에서 발표한 ‘2019년 국가별 노인빈곤율 현황’에서 한국은 46.5%로 1위였다. 노인 두 명 중의 한 명이 경제적 궁핍감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저소득 계층 20% 중에서 가구주가 70세 이상인 가계 비중도 42%로 나타났다.

행복지수가 높은 유럽국가 노인들은 여유로운 삶을 산다. 그러나 우리는 노년의 삶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 모아놓은 재산이 없다면 기본적인 생활조차 쉽지 않다. 계층간, 지역간 차이가 있지만 공식적인 은퇴 이후 노인문제는 두드러진다. 현재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이 40만원이고 기초연금 최고액이 30만원이다. 노인복지를 위해 국가가 현금을 지급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대법원이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하여 노동 가동 연한을 만 65세로 판결한 것은 평균수명의 증가한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근로복지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경제적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노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다. 우리는 궁금한 게 있으면 이제 노인을 찾지 않는다. 노인의 경험과 지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인은 무능력하다. ‘어르신’이라고 부르지만 권위를 지닌 원로는 사라지고 있다. ‘6·25를 겪고 박정희가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없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은 거리로 나와 태극기를 흔든다.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며 경로석에 앉은 젊은이들을 나무라고, 젊은 세대들은 ‘꼰대’로 부르며 이들의 말을 무시한다.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실종되면서 노인혐오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노인들은 점점 더 설 자리가 없다.

한국사회에서 품위 있고 아름다운 노년은 가능한가? 노인의 삶의 질은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다. “주류 집단에 속한 젊은 사람들 모두가 언젠가 비주류 집단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는 ‘노인’이 유일하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지금 노년의 삶의 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사회와 국가가 노인문제를 두고 토론해야 한다. 노인들이 고립되고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젊은 세대와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다양한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키케로가 말한 것처럼, 노년은 “연극의 마지막 장”처럼 깊은 감동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노년의 문제는 특별한 사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노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