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재주가 뛰어나 뭐든 뚝딱 만드는 소년이 있습니다. 4학년에는 가슴에 장인 공(工)자를 함석으로 오려 붙이고 다닙니다. “난 공학 박사가 될 거에요!” 핀잔을 주는 선생님들에게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스물이 되자 해방을 맞습니다. 의사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홀로 공부에 매진합니다. 물로 배를 채우며 경희대 한의학과를 졸업하지요.

52년의 세월이 흐릅니다. 소년은 82세의 노인이 되어 있습니다. 광화문의 주상복합 아파트 연구실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합니다. 야구 배트, 철판, 나무 판자 등 헤아릴 수 없는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발 디딜 틈 없이 가득합니다. 버려진 스키를 주워 손으로 뚝딱 조립해 만든 책꽂이를 비롯, 고철에 나무나 쇠 막대기를 덧대어 만든 책상에 남이 쓰다 버린 털조끼를 방석으로 만들어 앉습니다. 노인의 이름은 류근철(1926~2012) 대한민국 한의학 박사 1호입니다.

46세에 침술로 제왕절개 수술 마취에 성공해 세계적 명성을 얻습니다. 환자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지요. 큰 돈을 법니다. 병원 부지가 급등하는 바람에 재산이 크게 불어납니다. 이때 류 박사는 결심합니다. “아! 이 재산은 내 것이 아니구나.” 노력과 상관없이 재산이 불어나기 시작하자 더욱 검소하게 생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2008년 그는 평생을 모은 재산 578억원을 KAIST에 전액 기부합니다. 부인 명의의 아파트 1채만 남겨두고 골동품으로 가득한 광화문의 연구실을 포함, 자동차까지 모두를 쾌척하지요. 578억원 등기서류 전달식에서 류 박사는 눈시울을 붉힙니다. “셋째 딸은 아직도 셋방살이를 하고 있는데…” 전 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자 다섯 자녀들과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다는 사연도 있습니다.

세습 반대 교수모임이 지난 가을 발표한 격문(檄文) 제목이 떠오릅니다. “한국 교회를 위해 목 놓아 우노라!” 초대형 M교회에서 온갖 편법을 동원, 아들에게 위임목사 자리를 물려준 사건이 발단이 된 거지요. 간디는 일곱가지 악(惡)을 말합니다. 철학 없는 정치, 도덕 없는 경제, 노동 없는 부, 인격 없는 교육, 인간성 없는 과학, 윤리 없는 쾌락, 희생 없는 예배.

돈이나 명예, 권력의 획득 수단으로 고전이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이미 그 책은 문제집이나 학습지에 불과합니다. 삶 전체를 갈아 엎고 우리의 굳어진 얼어붙은 지성을 깨우는 도끼여야 고전이라 할 수 있지요. 세교모 격문을 보고 함께 우는 지도자들이 늘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조신영 인문학365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