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교가까지 바꾸는가
이제 교가까지 바꾸는가
  • 등록일 2019.03.21 19:23
  • 게재일 201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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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과
서의호
포스텍 명예교수·산업경영공학과

중고교 교가는 지금도 한가할 때는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른 곳을 다녔던 필자는 두 개의 교가를 모두 잘 외우고 있고 가끔 불러보기도 하고 흥얼거리기도 한다. 동창모임에 가면 끝날 때 어김없이 부르는게 교가이다. 그만큼 중고교 교가는 10대 성장기의 정서를 키워주고 자부심을 갖게 하는 노래요 노랫말이다.

지금 느닷없이 교육청이 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인물이 작사·작곡한 교가는 바꿔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지은 건물은 다 부숴야 한다는 논리와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 친일인명사전이란 것이 얼마나 정확한 것이고 기준의 객관성이 그리 투명한 것도 아니다. 평생 애국하다가 일본의 공갈협박으로 잠시 굴복한 것을 친일인사로 꼭 분류해야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난달부터 ‘친일 교가 청산’작업이 전국에 퍼지고 있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곳의 교육청이 직접 나서서 교가 작사·작곡자 이력을 전수 조사하거나 적극적으로 바꾸도록 권하고 있다고 한다. 대표적인 곳이 광주제일고다. 이 학교 교가를 지은 이흥렬(1909~1980)은 애창곡 동요 ‘섬집아기’와 애창 군가 ‘진짜사나이’를 남긴 대표적인 20세기 한국의 작곡가이다.

이흥렬 씨는 한국이 낳은 최고의 작곡가이고 많은 애창곡을 작곡했지만, 일제 말기 강요에 의해 군국 가요를 연주·반주·지휘했다는 이유로 좌파 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는 수난을 겪은 작곡가이다. 광주제일고는 조만간 동문·학생·학부모 등으로 교가 교체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리기로 하고,‘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동문에게 새 교가를 맡기는 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광주 시내 중·고교 13곳과 대학교 4곳이 현제명·김동진·김성태·이흥렬 등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작사가나 작곡가 4명이 지은 교가를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10곳 넘는 중·고교가 교가 교체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학교들은 입학식 때 교가를 부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좌파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4천389명 ‘친일인명사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광복 직후 반민특위가 가려낸 친일 인사보다 6배가 많은 숫자이다. 그리고 이 인명사전을 근거로 지금 이런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인명사전은 6·25전쟁 때 북의 침략에 맞서 싸운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은 오른 반면, 일부 친일 논란이 있는 좌파 인사는 빠진 경우가 있다. 그래서 발간 당시부터 ‘선정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문제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있느냐 없느냐 한 가지만으로 ‘이 사람은 친일, 저 사람은 반일’이라고 100년 전 역사를 간단히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삶의 한 단면만 보고 ‘친일’이라고 낙인찍기 힘든 이들이 더 많다. 을사늑약 때 ‘시일야방성대곡’ 사설을 쓴 위암 장지연도 이 사전에 따르면 친일 인사다.

광주제일고 동문들은 교가 교체에 반대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동문들은 “우리 동문 4만명은 이흥렬 선생이 지은 교가를 자긍심을 갖고 불러왔다”면서 “전교조와 일부 역사학자들이 작곡가들을 친일로 몰아 교가까지 없애자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과연 좌파성향 시민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오랫동안 불러온 교가를 하루 아침에 교체해야 하는지는 큰 의문이다.

필자가 부르는 중학교, 고교 교가에는 민족정서와 민족정기가 배어 있다. 그리고 어려웠던 시절 반드시 선진국가로 나아가고 통일을 이루겠다는 꿈이 서려 있다. 이념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교가를 근거가 확실치도 않은 친일인명사전을 근거로 교가를 바꾸겠다는 발상은 옳지 않다. 그 교가에 서려 있는 수만명 동문들의 추억과 회한을 한번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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