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서울취재본부장
김진호 서울취재본부장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해 촉발됐다는 정부지진조사연구단의 발표결과가 나오자 범시민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연구단을 향해 큰 절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취재를 하러 온 기자들과 결과 발표를 보러 온 300여 명의 포항지역민들을 향해서도 큰 절을 올렸다.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에 의해 촉발됐다는 지역주민들의 읍소와 하소연이 마침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지난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규모 5.4의 포항 지진은 전년 9월 경북 경주(규모 5.8)에 이어 한국 지진 중 두 번째로 강한 지진이었다. 135명의 인명피해가 났고, 공식 재산피해만 850억 원에 달했다. 이 지진으로 비틀려 부서진 필로티 건물 기둥과 통째로 기울어진 아파트를 보며 지역민들은 엄청난 지진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지진 발생후 9일이 지난 24일, 문재인 대통령은 ‘포항지진’피해 현장 점검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액상화 문제가 얼마나 위험성 있는 것인지 잘 살펴보고, 지열발전소가 지진에 미치는 영향도 중앙정부와 함께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도 지열발전소가 지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당시 대통령의 지진피해 현장 방문을 주선하고, 행정안전부 장관으로서 지진피해 수습과 예방대책에 열심이었던 김부겸 의원은 지열발전과 포항지진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데는 인색했다. 실제로 김 의원은 지난해 11월 2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포항의 지열발전소가 지진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상용화된 지열발전소가 아니다. 규모가 제법 큰 지진을 유발하기 위해서는 100만t 이상의 물을 쭉 주입해야 한다”면서 “그동안 3천t 정도 물을 주입했을 뿐이다. 이것이 과연 대한민국 전국에 진동이 전달될 만큼 그런 큰 지진을 유발했다고 보기엔 상식적이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대구 출신 국회의원이자 행정안전부장관인 김부겸 의원이 라디오에 출연해 ‘포항지열발전소가 지진과 관계 있다’는 학계의 주장을 부정한 것은, 정부의 무대책을 옹호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해 9월에는 ‘지열발전과 관련한 국가배상책임 가능성이 낮다’는 결론을 내린 정부 내부보고 문건이 자유한국당 김정재(포항 북구) 의원에 의해 공개돼 지역민들의 심기를 건드렸다. 김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포항 지열발전 관련 국가배상에 대한 법률자문 보고’라는 제목의 한 장짜리 산업부 내부보고 문건이었다. 이 문건에서는 △직무집행 △고의 또는 과실 △법령 위반 △인과관계 등 4가지 국가배상 요건에 대한 검토를 통해 “국가배상책임 요건 중 일부 요건의 불인정 가능성이 높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낮다”고 결론내리고 있었다. 정부조사단의 조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이런 내부문건이 나도는 데 대해 지역민들은 크게 분개했다. 정부가 조사단에 가이드라인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긴 사건이었다. 이런 우여곡절속에 정부지진조사연구단의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정부가 포항 지열발전소 사업을 영구 중단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원상 복구하기로 하는 등 발빠른 대응에 나선 것은 평가할만 하다. 다만 산업부 관계자는 포항지열발전이 정부기관에서 추진한 사업인 만큼 정부 배상책임을 묻는 질문에 “현재 국가를 피고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법원 판결에 따르겠다”고 밝혀 피해보상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포항지진의 발생과 피해수습, 원인조사 과정 등을 짚어보노라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목도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12월 당시 산업부에서 예산을 지원한 국가 연구개발(R&D)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포항지열발전소가 포항지진을 촉발했다니 말이다.

포항지역 출신 대통령이 ‘선물’로 안긴 지열발전소가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으로 돌아올 줄 누가 알았으랴. 사려깊지 못한 국가정책의 강행은 국가적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반면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