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해장국 천국’ 대한민국

안동 옥야식당의 선지해장국. 증앙신시장에 있다.
안동 옥야식당의 선지해장국. 중앙신시장에 있다.

해장, 해장국은 없었다.

술꾼들의 ‘뜨악’할 얼굴이 눈에 선하다. 무슨 소리? 어제도 과음을 했다. 이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지금도 속이 쓰리다. 점심에는 뭘 먹고 속을 풀까라고 벼르고 있다. 뭐? 해장, 해장국이 없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런 표정들이 눈에 선하다.

방송 ‘먹방’ 프로그램에서도 ‘해장국’은 단골 메뉴다. 비타민이 많고, 미네랄이 많다고 야단법석이다. 멀쩡한 한의사, 의사들까지 해장국 예찬에 한몫 거든다. 신문, 잡지, 개인의 블로그,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자신만의 비법이 있다. 대한민국은 ‘해장천국’이다.

 

울릉도의 오징어내장탕. 반드시 싱싱한 오징어를 사용한다.
울릉도의 오징어내장탕. 반드시 싱싱한 오징어를 사용한다.

◇ 대갱과 화갱

우선 검색부터 해보시길. ‘해장’이라는 한자 검색을 해보면 원하는 ‘解腸’은 나타나지 않는다. ‘解腸’ 즉, ‘속을 푼다’는 뜻의 한자어는 없다. ‘解’는 맺힌 것을 푼다는 뜻이다. ‘腸’은 말 그대로 장기, 창자를 뜻한다. 해장, 속을 푼다. 그럴 듯하지만 이런 단어는 없었다. ‘解腸’은 우리 시대가 만들어 사용하는 급조어다. 뜻도 불분명하고 억지 느낌이 든다.

‘해장(解腸)’의 역사는 100년도 되지 않았다. 조선시대 말기에도 없었다. 미디어마다 “예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해장을 했다”고 말한다. 엉터리다. ‘전통 해장국’은 코미디다. 조선시대 어떤 문헌에도 ‘해장(解腸)’은 없다. 드디어는 외국의 ‘해장음식’까지 등장한다. 우유 해장, 바나나 해장이다. 억지 코미디다. ‘해장’은 일제강점기 신문에 처음 나타난다.

술을 마시면 속이 쓰리다. 간이 미처 알코올을 해독하지 못해서다. 알코올 처리 용량을 넘어서니 장기가 아우성을 친다. 알코올 분해물질에도 독성이 있다. 속을 아프게 한다. 술을 마신다고 속이 꼬이지는 않는다. 장이 꼬여서 아픈 게 아니다. 진짜 장이 꼬이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런데 무엇을 푼다는 것인지?

‘해장’을 원한다면 ‘해장(解醬)’이 맞다. 속을 푸는 장국이다. 장국은 된장, 간장 등 ‘醬(장)’을 뜻한다. 제대로 만든 전통 된장, 간장 등은 속을 풀어준다. 소화효소도 풍부하다. 장기들이 원활하게 움직이게 한다. 장국의 힘이다.

우리 음식의 바탕은 국물이다. 국물은 ‘국[羹, 갱]’이다. 갱은 두 종류다. ‘대갱(大羹)’과 ‘화갱(和羹)’이다. 대갱과 화갱 모두 한자 검색을 하면 자동으로 단어가 나타난다. 원래부터 널리 사용했던 단어라는 뜻이다. 지금 우리가 모르고, 사용하지 않을 뿐이다.

대갱은 국물의 으뜸이다, 쇠고기는 귀했다. 쇠고기 수육을 만들면 국물이 나온다.

수육은 ‘숙육(熟肉)’이다. 삶은 것이다. 고기를 물로 삶으면 국물이 나온다. 서양음식은 고기 삶은 국물을 취하지 않는다. 일부 사용하지만 대부분 버린다. 우리처럼 돼지 뼈까지 고아서 국물로 취하지 않는다. 우리 조상들은 귀한 쇠고기 국물을 버렸을까? 버리지 않았다. 이 국물을 그대로 내면 바로 대갱이다.

소금이나 매실 양념도 하지 않은 것이다. 제사상에도 마찬가지. 밥과 국이 있고 탕(湯)이 있다. 어린 시절, 제사를 모실 때 국이 있는데 또 탕이 있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참 지나서야 알았다. 밥에는 국이 있어야 하고, 귀한 제사상에는 고기 국물인 탕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 탕은 귀한 고기를 곤 국물이었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귀하니 제사상에 올렸다. 예전에는 소금과 조미 매실이 최고의 기본양념이었다. 이마저도 넣지 않은 국물을 으뜸으로 쳤다. 바로 대갱이다. 국물의 으뜸이다. 오늘날 곰탕의 시작이다. 경북지방에서 ‘사골곰탕’이란 표현을 널리 쓰는 것은 이유가 있다.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쇠고기를 구해서 쓸 수는 없다. 뼈라도 넣고 귀한 ‘곰국’ ‘곰탕’을 만들어야 한다. 바로 사골이 들어간 곰국, 곰탕이다. 화갱은 소금, 매실 등을 넣고 양념한 것이다. 채소도 넣는다. 소금 대신 간장, 된장, 매실 대신에 각종 양념을 넣으면 화갱이다. 장이 들어가면 장국이다. ‘된장 푼 국물’이다. 여기에 시래기를 넣으면 시래기 국이고 간장과 무를 넣으면 무국이며, 선지를 넣으면 선지해장국이다. 칼칼한 고춧가루 넣으면 주당들이 좋아하는 수백 수천 가지의 해장국이 탄생한다.

 

경주 팔우정해장국의 묵해장국. 두절 콩나물과 메밀묵으로 끓인 특이한 해장국이다.
경주 팔우정해장국의 묵해장국. 두절 콩나물과 메밀묵으로 끓인 특이한 해장국이다.

◇ 해장(解腸)인가 해정(解<9172>)인가?

오늘날 우리가 먹는 해장국은 화갱이다. 양념, 채소 등이 들어간 장국이다. 시작은 역시 개장국[狗醬, 구장]이다. ‘된장 푼 물+개고기’다. ‘창자를 풀어주는 국물’이 아니라 ‘된장(간장) 푼 물’이 해장국의 기본이다.

‘해정’은 일찍부터 있었다. ‘노걸대(老乞大)’는 고려 말, 조선 초에 만든 통역사 교재다. 몽골어, 만주어, 중국어 교본이 있다. 여러 종류의 통역교재를 통틀어 ‘노걸대’라 부른다.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노걸대’에 ‘解<9172>(해정)’이 나타난다. 모 방송국에서 ‘해장’이 ‘해정’에서 시작된 것 아니냐고 해서 꼼꼼히 살펴본 적이 있다. ‘<9172>(정)’은 숙취다. 해정은 “숙취를 푼다”는 뜻이다. 해장과 음이 비슷하다. 해정에서 해장이 비롯되었다. 제법 그럴 듯하다.

조선 초기인 1478년(성종 9년) 문신 서거정 등이 엮은 ‘동문선’ 제3권에 여말선초의 유학자 목은 이색(1328~1396년)의 ‘설매헌부(雪梅軒賦)’가 있다. 여기에 ‘해정’이 나타난다.

“(전략) 대방을 열고 바람 난간에서 굽어보며/방석 깔고 가부좌하여/노아 차를 끓여 해정하면서/주시의 재도(載塗)를 읊고 (후략)”

‘해정’은 ‘정신을 맑게 하고’라는 뜻이다.

문을 열었다고 했다. 바람을 쏘인다는 뜻이다. 가부좌는 바른 자세다. 차를 마신다고 했다. 향기롭고 따뜻한 찻물로 몸을 적신다. 따뜻한 국물은 몸속 장기를 원활하게 돌게 한다. 재도(載塗)는 시경에 나오는 문구다. ‘우설재도(雨雪載塗)’는 ‘비와 눈이 와서 질척거리는 길’이다. 바른 자세로 앉아서 바람을 쏘이면서 차를 마시고, 시경을 읽는 것이 바로 해정이다. 술을 진탕 퍼마시고 다음날 해장국을 들이킨다는 뜻이 아니었다.

숙취를 푼답시고 뜨거운 사우나탕에 앉아 있거나 뜨거운 국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해정과 해장은 다르다. 여말선초부터 해정은 있었으나 해장은 없었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성주석(醒酒石)’이 자주 나타난다. ‘술 깨우는 돌’이다.

성주석의 시작은 당나라의 이덕유다. 그는 평천장이라는 대저택을 짓고 각종 나무, 꽃, 돌 등을 옮겨 두었다. 성주석은 이 정원에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하면 늘 이 돌에 앉아서 술을 깨우곤 했다고 전해진다. ‘성주(醒酒)’는 술을 깨운다는 뜻이다. 설마 돌이 해장을 시켰을 리는 없다. 바람이었다. 정원, 돌 주변의 바람이 술기운을 날렸으리라. 다산 정약용도 ‘바람’을 해장국 대용으로 썼다.

다산은 “찰랑찰랑 물결은 뱃전을 치고, 스치는 바람이 술을 깨운다”고 했다(다산시문선).

가벼운 과일로 술기운을 깨운 이들도 있었다.

조선 전기 문신 삼탄 이승소(1422~1484년)는 ‘삼탄집’에서 “포도의 효능은 여럿 있지만 술을 깨우는 공로가 가장 크다”고 했다. 고려 문신 이규보도 과일로 해장을 했다. “서왕모에게서 훔쳐온 복숭아로 입맛을 돌게 하거나 술을 깨게 한다”고 했다(동국이상국전집).

1499년 발간된 의서 ‘구급이해방’에는 술병[酒病] 치료법이 있다. 과음으로 구토, 손발 떨림, 정신 어지러움, 소변 불편이 나타나면 갈화해정탕을 권한다.

‘갈화(葛花)’는 칡꽃이다. 칡꽃, 인삼, 귤껍질 등 여러 약재를 넣고 달인 물을 먹으면 술병이 낫는다고 했다. 이 치료법의 끝부분은 술꾼들이 새길 만한 내용이다.

“갈화해정탕은 다 부득이해서 쓰는 것이지, 어찌 이것만을 믿고서 매일 술을 마실 수 있겠는가?”

우리 선조들은 해장국을 먹어야 할 정도의 음주는 ‘병’이라 여겼다. 병은 탕(약)으로 다스렸다.

 

우리가 먹는 해장국은 화갱이다. 양념, 고명, 고기, 채소 등을 모두 넣은 것이다.
우리가 먹는 해장국은 화갱이다. 양념, 고명, 고기, 채소 등을 모두 넣은 것이다.

◇ 술국이 해장국으로 바뀌다

경북 안동 중앙신시장에는 유명한 선지해장국 집이 있다. ‘옥야식당’. 메뉴는 딸랑 선지해장국 하나다. 전국적인 맛집이다. 대구는 육개장의 도시로 이름을 얻었다. 50년 이상 80년 된 식당도 있다. 경주 팔우정거리에는 해장국 골목이 있다. ‘팔우정해장국’에서 시작한 묵해장국은 메밀묵과 머리를 뗀 콩나물을 넣는다. 조미료 없이 모자반으로 시원한 맛을 낸다. 모두 전국적으로 이름을 얻었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 ‘이문설렁탕’은 종로 피맛골 뒷골목에서 시작했다. 나무꾼들이 이른 새벽 한양도성 부근 남양주 등에서 나무를 지고 온다. 지게를 내려놓은 다음, 한숨 돌리고 요기를 했다.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인 ‘천황식당’도 마찬가지다. 처음 가게 문을 열었을 때 이곳의 이름은 ‘나무전’이었다. 땔감을 내려놓고 팔던 곳이다. 식당의 주 고객은 나무꾼과 땔감을 사러온 성내 사람들, 시장 보러 온 이들이었다. 모두 시장 통이거나 도심의 번화가다. 해장국은 ‘술국’에서 시작되었다.

이른 새벽 장터에 땔감을 팔러 온 이들의 요기다.

간단한 국밥과 막걸리 한 사발 마실 술국이 필요하다. 술을 깨기 위한 것이 아니다. 술을 마실 때 더불어 마실 술국이다. ‘탁배기 한 잔’에 김치 한 쪼가리. 그리고 더불어 입을 헹굴 뜨듯한 술국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희석식 소주가 전국을 휩쓴다. 감미료, 조미료가 가득한 소주 아닌 소주. 조미료, 감미료가 과한 음식은 과식을 부른다. 조미료, 감미료 가득한 술은 과음이다. 과음에는 해장국이 필수다. 다산의 ‘바람’이나 복숭아, 포도, 성주석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술국이 그립다. 목젖이 꼴딱꼴딱 할 때, 술국 한 모금을 넘긴다. 불콰한 얼굴과 더불어 입술을 훔치던 거친 손매가 그립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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