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음(淸陰)과 지천(遲川)의 국가관
청음(淸陰)과 지천(遲川)의 국가관
  • 등록일 2019.03.18 19:40
  • 게재일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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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룡 서예가
강희룡
서예가

서인(西人)의 반정(反正)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는 반금친명(反金親明) 정책이 원인이 되어 국호를 청으로 고친 후금으로부터 침략당해 남한산성에서 항전하다 패해 군신의 의를 맺는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한다. 당시 청과의 전쟁과 화의를 주장하는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 중심에는 청음과 지천이 있었다. 청음 김상헌(1570∼1652)은 조선의 역사에서 주전론(主戰論)을 바탕으로 한 척화파의 절개와 지조의 한 상징이다. 그의 82년에 걸친 긴 생애동안 왜란과 호란을 모두 겪었던 조선의 가장 험난한 격동기를 통과했음을 알려준다. 지천 최명길(1586∼1647)은 당시 청과의 전쟁을 피하고 화의를 모색해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자 했던 주화론(主和論)의 대표학자로서 척화론 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강화론을 폈다.

시국에 대한 이 두 학자의 대립원인은 이들의 학문과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조선 전기의 주자학은 이기론(理氣論)의 이론전개에서 철학적 우주론보다는 윤리적인 심성론인 사단칠정에 더 중점을 두며 의리사상으로 발전시키는 또 하나의 성리학 특징을 이뤘는데, 이것이 17세기에 이르러 양란(兩亂)을 거치는 동안에 구체적으로 발현됐다. 도학정신을 바탕으로 의리정신의 위치를 확고히 한 조선중기 사림의 맥이 바로 청음의 의리정신이다. 이 의리의 실천은 소학(小學)을 근거하고 있으며 ‘대신(大臣)은 도로써 임금을 섬기고 불가하면 그만둔다.’라는 논리로, 의리를 목숨보다 더 중히 여기는 도학정신의 사생관(死生觀)과 사명의식을 보이고 있다. 청음의 사상은 병자호란을 통해 구체적으로 현실에서 구현된바, ‘대신은 의를 따르는 것이지 명령을 따르는 것이 아니니 사군자의 진퇴는 오직 의(義)일 따름이다.’라고 하여 그는 자신의 진퇴가 오직 의에 달려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는 정명사상(正名思想)이다. 이 이론은 공자가 당시 사회의 혼란스러움을 명(名)을 바로잡음으로써 구제하고자 주장했던 사상이다. 이 사상은 춘추(春秋)정신으로 이어지게 되며, 춘추란 군신간의 명분을 중시하며 의리를 숭상하고 보편화하며 인(仁) 사상에 근거한 것으로 대의명분에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줬던 것이다. 이후 송시열 등을 중심으로 민족과 국가의 주체성을 회복하고자 한 북벌사상의 근간이 된다. 조선 중기부터 주자학을 중심으로 한 사상적 흐름과는 달리 또 한 줄기의 사상이 나타나게 됐으니, 바로 실용주의 학문인 양명학(陽明學)이다. 명종시대에 들어온 양명학은 공맹사상을 그 시대의 현실에 맞게 재해석 적용한 사상으로 주자학을 비판하고 보완하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전래 당시부터 유학의 정통이 아니라고 배척당하여 줄곧 이단시되다가 17세기 초의 혼란한 상황을 해결하고 타개해야 하는 현실적 반성과 자각이 대두하자 양명학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며 실심(實心)과 실득(實得)을 강조하고 실용을 추구하면서 최명길이라는 학자의 현실의식으로 나타나게 된다. 당시 척화를 주장하던 주자학적 의리학파 사이에서 최명길이 본심에 바탕을 둔 양명학적 사고에 입각해 홀로 강화를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상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명길은 ‘비록 만고의 죄인이 될지라도 임금이 망할 줄을 알면서도 차마 그대로 둘 수는 없으니, 오늘날 화친은 부득이한 것이다.’라면서 척화파로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도 일신을 돌아보지 않고 화의를 주장했던 것이다.

지천이 지은 조선 측의 강화문서를 청음이 읽고 찢으며 통곡하니 지천은 이를 다시 주워 모으며 ‘조정에 이 문서를 찢어버리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또한 나 같은 자도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백발이 되도록 청나라 심양에서 함께 옥살이를 하는 동안 그들은 서로 방법이 달랐을 뿐, 나라 위한 마음은 같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화해를 했다. 두 선비의 국가관을 잘 나타내주는 역사적사건이다. 정치철학 없이 패거리지어 다투는 지금의 우리 정치판에 시사하는 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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