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재발견 소설가 김별아의 경주 월성을 걷는 시간
⑩ 월성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월성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동물뼈와 다양한 식물의 흔적. 월성에서 살던 신라시대 사람들의 음식재료를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이다. 누군가는 먹는 행위 자체가 삶의 목적이며 즐거움이라 하고, 다른 누군가는 삶의 최소 조건이자 구차한 일상이라 한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욕망이기에, ‘먹다’와 ‘살다’라는 단어가 엄연함에도 ‘먹고살다’라는 단어가 따로 존재한다. 생계를 유지하다, 즉 살림을 살아나갈 방도를 보존하고 지탱한다는 뜻인데, 그야말로 삶 자체다.

‘먹방’이 유행이 되다 못해 범람하는 세상이다. 고전적인 요리 프로를 비롯해 요리사들끼리의 경연, 맛집 탐방으로도 모자라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꾸역꾸역 먹어대는 인터넷 개인 방송까지 등장했다. 한국의 특이한 사회현상의 사례로 외신에 소개되기까지 한 ‘먹방’의 원인으로는 1인 가구의 증가, 외로움, 불황 등이 지목된다.

멍하니 ‘먹방’을 보노라면 마음이 편하다. 정치나 경제나 사회 뉴스를 볼 때와 같은 부담이 없다. 정보를 얻기 위해 보기보다는 ‘백색 소음’처럼 일상의 익숙한 배경이 된다. 먹는 일만큼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통용되는 소재가 흔할까? 동서고금의 경계도 없을 터이니, 문득 월성의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궁금해진다.

경주하면 ‘맛집이 없다’?
중앙시장의 소머리국밥·돼지국밥 골목
성동시장의 6천원 착한가격 한식뷔페 등
모량 칼국수·보문단지 육회·경주한우 등
우연히 들어간 식당이 진정한 ‘경주 맛집’
콩잎·재피잎·더덕·장아찌감 등
경상도 식문화 월성 먹거리 이어와

경주로 가기 전 정보를 찾다 보니 다른 지역에 비해 ‘맛집이 없다’는 평이 왕왕 눈에 띄었다. 여행의 즐거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식도락인데 맛집이 없으니 아쉽다는 것이다. 2014년에 홀로 훌쩍 여행을 떠나왔을 때는 맛집을 검색하거나 찾아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 시티투어버스에 실려 단체로 먹은 점심이 가격 대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기억은 있지만, 단체 관광객을 상대하는 식당에 큰 기대는 무리다. 두부나 한우는 식재료이지 요리가 아니다. 정말 없는 건지 알려지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경주 하면 떠오르는 ‘향토 음식’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평소에 맛집 탐방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마음먹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녔다. 내게 ‘먹일’ 의무가 있을뿐더러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는 아들아이가 동행한 덕택이기도 하다. 광고로 넘치는 인터넷 검색은 신중하게 가려 했고,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이나 택시기사 등 현지인의 추천을 구했으며, 가끔은 지나가다가 손님이 많거나 주차장이 꽉 차 있으면 불쑥 들어갔다. 유명한 가게나 지도를 찾아가며 어렵게 갔던 곳보다 불쑥 들어갔다 의외의 맛집을 발견한 경우가 더 많았으니, 우연은 참 즐거운 것이다. 관광이 아닌 여행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첫날부터 성공한 선택이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중앙시장(아랫시장)에서 소머리국밥과 돼지국밥 골목을 찾았다. 둘이 메뉴를 하나씩 시키고 지역 소주인 ‘참’을 반주로 곁들였다. 첫맛은 옅으나 뒷맛에서 예전의 ‘경월소주’ 같은 쇳기가 느껴진다. 일단 내 입맛에는 별로였는데 현지의 술꾼인 H기자에게 듣자니 먹을수록 참맛이 있다고 한다. 후식으로 떨이하는 떡볶이를 샀다. 떡볶이는 특이하게 무가 들어있어서 시원하고 맛있었다.

둘째 날엔 월성을 한 바퀴 돌고 성동시장(웃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경주의 시장들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구조인데, 중앙시장이 그렇듯 성동시장도 중심부쯤에 문을 막아 식당 공간을 만들었다. 성동시장의 식당은 아는 사람만 안다는 한식뷔페다. 말로 설명해서 그림이 그려질지 모르지만, 홀과 같은 공간으로 들어가면 여러 아주머니가 갖가지 반찬을 쌓아놓고 기다린다. 약간의 호객과 망설임 끝에 쭈뼛거리며 자리를 잡고 앉으면 아주머니가 마음껏 반찬을 골라 먹으라며 접시와 수저를 주고 밥과 국을 떠준다. 반찬 종류는 비슷비슷한데 서로 벤치마킹한 결과인 듯하다. 제철 나물과 옛날 소시지, 달걀말이와 시래기 국으로 한 끼를 든든하게 먹었다. 가격은 6천원, 요즘 흔치 않은 밥값이다. 혼밥이 어색하지 않도록 아주머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와 아들이 밥을 먹은 ‘숙이네’ 주인아주머니는 20년 동안 성동시장에서 한식뷔페를 하셨단다.

탄화미
탄화미

그밖에 경주에서 먹은 인상적인 끼니는 불국사역 앞의 돼지갈비와 국수와 김밥 정식, 법흥왕릉에 갔다가 모량에서 먹은 손칼국수와 콩국수,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의 추천을 받아 황성동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먹은 경주 한우, 그리고 성건동의 닭갈비 등이 있다. 문무대왕릉을 보고 감포항에서 먹은 유명 횟집의 물회는 큰 감명이 없었고, 보문단지의 육회는 너무 유명해서 폐점 시간이 되기도 전에 재료가 소진되는 바람에 문지방도 밟아보지 못했다. 관광지의 음식점이나 인터넷 블로그에서 소개한 맛집들보다는 현지인의 추천이나 차라리 우연히 찾은 식당이 나았다. 그럼에도 끼니때가 다가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열어 맛집을 검색하는 일을 반복했으니…. 그런데, 정말 우리가 경주에서 먹은 것이 월성의 사람들이 먹었던 것일까?

앞서 밝힌 대로 지금까지 월성 발굴조사를 통해 출토된 약 40만 점에 이르는 유물 중 가장 많은 것은 기와다. 월성 내부 같은 건물지에서는 건물 지붕에서 눈비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거나 장식적으로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기와가 주로 출토된다. 그중 C지구에서 출토된 기와에 새겨진 ‘전인(典人)’이라는 글자와 토기에 새겨진 ‘도부(嶋夫)’라는 글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것이라 주목받는다. 전인은 기와와 그릇을 담당하는 관청인 와기전에 소속된 담당자를 가리키고, 도부는 토기를 만든 사람으로 추정된다.

또 월성 해자에서는 정보 전달이나 글씨 연습 등의 목적으로 나무 조각에 글자를 쓰거나 새긴 목간(木簡)이 출토되었다. 특히 ‘병오년(丙午年)’이라고 적힌 목간이 7점 발굴되었는데, 법흥왕13년(526년)과 진평왕8년(586년)이 병오년이니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목간 중 최초로 정확한 연대가 확인된 것이다. 토기, 벼루, 어망추, 흙으로 만든 공과 가시연꽃, 복숭아, 자두 등 식물의 씨앗들, 그리고 소의 어깨뼈를 비롯해 개, 가슴, 곰을 비롯한 동물 뼈들도 나왔다. 그중에서도 곰은 신라 시대 유적에서 최초로 확인된 동물이니, 어떻게 서라벌까지 이동해 왔으며 곰의 뼈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가 수수께끼로 남았다.

복숭아 핵
복숭아 핵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지는 못해도 삶의 흔적은 타다 만 쌀과 콩으로나마 남았다. 먹고사는 발버둥은 그들과 우리가 다르지 않을지니 희로애락 또한 어금버금하지 않겠는가? 월성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바라보노라니 느꺼움과 허무함이 동시에 물밀어든다.

경주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를 운영하는 차은정 박사가 ‘서라벌 신문’에 기고했던 ‘신라음식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어 보기로 한다. 삼국시대 초기부터 안정적인 농경 생활을 했던 신라의 식문화는 조리 기구나 시설의 발달로 변화된 조리방법의 차이를 제외한다면 ‘밥상의 구성 면에서 현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는 의견에 근거해, 월성 사람들의 먹거리를 헤아려본다.

콩잎, 재피잎, 가죽나무잎, 더덕, 도라지, 전복, 개암, 무, 땡감 등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장아찌감으로 치는 경상도의 식문화는 월성의 입맛과 닿아 있을 것이다. 현대에 이르러 논란의 대상이 되었지만 선사시대부터 단백질 공급원이던 개고기도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대추는 가야의 황후인 허황옥의 결혼예물이었고, 경주 민요 ‘효행가’에 등장하는 잉어는 효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고급 보양제였을 것이다.

탄화콩
탄화콩

‘삼국유사’의 ‘진정사 효선쌍미’에서 진정의 어머니가 솥을 시주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바 무쇠 솥이 일반화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무쇠 솥으로 익히기 좋은 잡곡 가운데 팥은 불교 의식에 사용됨과 동시에 민간에서 액운을 막는 상징으로 쓰였을 것이다. 중국의 고의서 ‘남해약보’에는 “신라인이 다시마를 채취하여 중국에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다시마를 비롯한 해초 요리도 먹었을 것이다. 경주에서 ‘깨금’이라 불리는 개암열매는 미추왕과 문무왕, 신라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위패를 모신 숭혜전에서 진설되기도 한 식재료였다.

월성 사람들의 먹거리로 한정시키면 차은정 박사의 의견대로 약선(藥膳)요리를 떠올릴 수 있다. 약이 아니라 음식으로 병을 고치거나 예방하는 식치(食治)는 황제의 건강관리를 위해서 식의(食醫)제도를 도입했던 당나라 때부터 왕실 음식의 특징이 되었다. 음식만이 아니라 마시는 물, 그리고 소화와 배설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것이 식치일지니, 배가 고프지 않아도 꾸역꾸역 먹고 마시는 허기는 사뭇 현대적인 경망일지 모른다.

탄화밀
탄화밀

아랫시장(중앙시장)은 2일과 7일이 장날이랬다. 장 구경은 언제나 재미있고 괜스레 신난다. 날씨가 추워 평소보다 장꾼들이나 손님들이나 많지 않은 게 아쉽다. 그래도 여전히 벅적벅적한 시장 골목을 두리번거리며 휘돈다. 꽤 많은 동네의 꽤나 많은 장터를 돌아봤건만 날이 갈수록 지역적 특색이 사라지고 비슷한 풍경에 비슷한 먹거리뿐이다. 수입 농산물이 밥상을 점령하고 장터 대신 대형 마트를 찾는 발길이 늘어나니 아무래도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간식거리도 마찬가지다. 아들아이와 갓 구운 호떡을 하나씩 베어 물었지만 여느 호떡과 다를 바 없는 그냥 호떡이다. 황남빵, 찰보리빵 등 경주를 브랜드화한 간식거리들은 관광객들을 위한 상품일 뿐 ‘로컬 피플’의 입맛과는 별개인 듯하다.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이 했다는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 주면,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 주겠다”는 말은 이제 너무 유명한 잠언이 되었다. 음식은 우리의 피와 살을 만들고 에너지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의 개성과 존재 자체를 특징하는 매개임직하다. 개개인이 그러하거니와 지역이나 나라도 마찬가지다. 경주의 음식, 신라의 식문화, 월성만의 먹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가시연꽃 종자
가시연꽃 종자

기어이 매의 눈을 뜨고 다른 지역의 장터와 구분되는 특징을 찾아본다. 경주 장에서 눈에 띄는 지역 농산물은 상주 곶감, 예천 땅콩, 청송 사과 정도다. 채소류로는 시래기와 버섯이, 수산물로는 가자미와 도루묵 등의 반건조 어물이 유달리 많다.

“새댁! 이거 좀 사가시오!”

아직도 나를 새댁이라 불러주는 고마운 할머니가 벌여놓은 난전에는 철 이른 냉이가 소복하다. 숙소에서 끓이거나 무쳐 먹을 방도가 없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지만, 생각해보니 경주에서 먹은 음식에 고명으로 냉이가 오른 것이 꽤 많다. 봄이 오면 밥상도 더 푸릇하고 풍성해질 테다. 다가올 봄을 기다리며 군침을 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