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서 최초 결성 무장 독립운동단체 ‘대한광복단’ 뜨거운 의기 기리다
영주서 최초 결성 무장 독립운동단체 ‘대한광복단’ 뜨거운 의기 기리다
  • 김세동기자
  • 등록일 2019.03.05 19:38
  • 게재일 2019.0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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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호 한신장학재단 이사장이 헌납해 건립된 광복탑.

1910년 경술국치 후 국권 침탈과 민족성 말살, 인권 유린, 민족의 정통성과 문화 말살 등 일제 강점기 기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제국주의적 오만함과 악독함,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암흑의 시대였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국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독립된 국가로서의 위치를 찾고자 피로써 항일 투쟁을 이어나갔다. 이런 항일 투쟁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불꽃처럼 번져나갔고, 현재의 대한민국과 우리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근본이 됐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 최초로 현 영주시 풍기읍에서 결성된 무장독립단체인 대한광복단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1913년 경북 풍기서 채기중 중심 8개 지역 10여명 단원 조직
1916년 김좌진 등 전국 애국투사 합류, 거국적 독립운동단체 활동
영주시,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조성 ‘독립운동 진원지’ 자리매김

□ 대한광복단의 결성

대한광복단은 1913년 경상북도 풍기(현 영주시 풍기읍) 서부 한림촌의 채기중을 중심으로 유림, 의병, 대종교 출신, 애국 청년 등 8개 지역 10여 명의 단원들이 조직한 비밀결사대로 전국 규모의 최초 무장 항일투쟁 조직이다.

1915년 대구의 박상진을 중심으로 한 조선국권회복단과 통합하면서 대한광복회로 개칭되고, 1916년 노백린, 김좌진 등 애국투사들이 합류하고 1917년 기호, 호남, 관동, 관서지방의 애국지사들이 모여 거국적인 독립운동단체로 자리매김했다.

대한광복단은 국내에서는 대구, 광주, 예산, 인천, 해주, 옹천, 충북 등지에서 주로 군자금 조달과 친일파 암살 활동을 하고, 1920년대에는 만주 지역까지 지역망을 갖추고 3.1만세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1910년 대한제국을 강제병탄한 일제는 헌병, 경찰을 이용한 야만적인 무단통치체계를 한반도 전역에 구축했다.

대한광복단은 국내 항일운동에 대한 일제의 감시와 노출의 위험을 피하기 위한 비밀결사 형태로 추진되고, 이러한 비밀결사 중 무장투쟁의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한 선구적인 단체였다. 대한광복단의 결성은 환경·지리적 여건과 깊은 관련이 있다.

풍기는 한말 팔도 이주민의 출입이 잦아 국권회복에 뜻을 둔 애국지사들이 활동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결성을 주도한 채기중은 경북 함창(상주) 출신으로 을사조약을 당하자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하기 위해 1906년 풍기로 이주했다.

채기중은 풍기에 정착한 후 외지에서 유입된 인사들을 규합해 1913년 대한광복단을 조직했다.

대한광복단 최초 구성원들은 참전 사실이 확인되는 의병 출신과 독립운동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던 지사 집단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현지에서 생업에 종사하며 비밀숙의나 화합을 통해 투쟁계획을 수립했다.

대한광복단은 국권상실 이후 국내에서 결성된 최초의 무장독립운동단체며 이후 여러 계층의 애국지사들을 흡수하고,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항일단체로 성장해 1910년대 국내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다.

 

권기호 한신장학재단이사장이 헌납해 건립된 광복탑.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전경.

당시 대한광복단의 정신은 비밀, 폭동, 암살, 명령의 4대 행동 강령과 △부호의 의연 및 일본인이 불법징수하는 세금을 압수하여 이로써 무장을 준비한다 △남북만주에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독립전사를 양성한다 △종래의 의병과 해산군인과 만주 이주민을 소집하여 훈련한다 △중아제국(중국·러시아)에 의뢰하여 무기를 구입한다 △본회의 군사행동·집회·왕래 등 일체 연락기관의 본부를 상덕태상회에 두고 한만요지와 북경·상해 등에 여관 또는 광무소를 두어 연락기관으로 한다 △일인 고관 및 한인반역자를 수시 수처에서 처단하는 행형부를 둔다 △무력이 완비 되는대로 일본인 섬멸전을 단행해 최후의 목적을 단행한다는 7대 투쟁 방향을 정했다.

대한광복단이 외치는 바는 광복이다. 하늘과 사람이 도리에 일치된다. 너의 큰 죄를 꾸짖고 우리 동포에게 경고를 주노라. 꾸짖고 경고하는자, 광복회(曰維光復, 天人是符, 聲此大罪, 戒我同胞, 聲戒人, 光復會)란 격고문과 ‘우리는 대한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죽음으로써 원수 일본을 완전히 몰아 내기로 천지 신명에게 맹세한다’는 내용의 광복단 선언문을 내놓았다.

1913년에 결성된 대한광복단은 비밀결사 조직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위상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고 독립투쟁사 연구에도 부족한 점이 있다.

채기중과 함께 대한광복단을 설립한 ‘광복단 약사’의 저자 한훈(1889~1950)은 계축년(1913)에 소몽 채기중 선생을 중심으로 유창순, 유장열, 한훈, 강병수, 김병연, 정만교, 김상오, 정운기, 정진화 등과의 협의로 경북 풍기에서 대한광복단을 조직하였는데 참여했으며, 1913년 풍기에서 결성된 비밀결사 단체의 이름은 대한광복단이라 밝히고 있다.

‘광복단 약사’의 저자 한훈은 채기중과 함께 광복단을 설립하고 형 한태석과 대한광복단에서 활동했으며,적에게는 호랑이 같고 동지들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사람, 누구보다도 담대하게 독립운동에 매진한 사람이었다. 또 해방 후까지 살아남아 대한광복단의 역사를 증언해준 인물이다.

 

채기중 선생, 한 훈 선생, 김좌진 장군, 박상진 선생, 김한종 선생
채기중 선생, 한 훈 선생, 김좌진 장군, 박상진 선생, 김한종 선생

□ 대한광복단 기념공원 조성

국내 최초·최대의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광복단은 광복의 초석을 이룬 영원한 역사의 빛이요, 고장의 크나큰 자랑이다.

그럼에도 광복을 맞은지 반세기에 이르도록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광복단의 고향이자 독립운동의 진원지인 영주 풍기에 그들의 숭고한 자취를 기릴만한 표지조차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죄스러움이자 부끄러움이다. 이에 지역민의 열망으로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의 조성이 시작됐다.

1985년 지역 인사였던 김계하 씨는 기념비를 사비로 마련하는 등 일을 진행했지만 어려움이 뒤따라 사업을 미뤄 오다가 1993년 뜻있는 인사들이 모여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95년 1월 광복공원 부지매입을 시작으로 같은 해 5월 한신장학재단 권기호 이사장이 상징탑 건립비 1억원을 헌납하고, 안동대 송기석 교수에게 상징탑 제작을 의뢰해 11월 이의근 도지사를 비롯한 독립유공자, 유공자 가족 등 1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막식을 가졌다.

권기호 이사장은 당시 풍기우체국 2층에 있던 한여울회관에 들렸다 벽에 걸린 채기중 씨 등 무장독립군 결성 기록물을 보고 감명을 받아 고 송지향 선생과 협의해 상징탑 건립비를 헌납하게 됐다. 또 광복공원 조성 명예회장직을 수락해 전 김진영 시장, 김형국 씨 등 동문들과 지역민들의 도움을 받아 오늘날 광복공원의 기초가 되는데 힘을 보탰다. 대한광복단기념공원은 항일독립전선에 나섰던 선조들의 거룩한 위훈을 기리며 아프고 어두웠던 그날의 역사를 되새겨 우리 삶을 가다듬게 하는 경각의 표상이다. 기념공원은 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역사에 빛날 자랑스런 고장 풍기의 역사와 나라 사랑의 상징적인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김세동기자 kimsdyj@kbmaeil.com


□ 대한광복단 주요 활동사

▷ 1913년 풍기에서 대한광복단 최초 조직 결성
▷ 1914년 충남 직산 금광 잠입 군자금 모집
▷ 충북 근북면 사무소 습격
▷ 1915년 대구에서 대한광복회로 조직확대
▷ 영주 대동상점 개설
▷ 경주 광명리에서 일제 세금수송마차 습격
▷ 1916년 만주사령관에 이석대(본명 진룡) 임명, 김좌진,노백린 합류
▷ 보성 벌교의 친일파 양재학, 서도현 처단
▷ 오성헌병대 습격 무기 탈취
▷ 조선총독 데라우치 암살기도
▷ 대구 부호 서우순으로부터 군자금 수합
▷ 평북 영변에서 동양금광회사 소속 현금마차 습격
▷ 강원도 영월 중석광산 잠입 군자금 모집
▷ 우수리스크 니콜리스크에 기지건설 추진
▷ 1917년 만주 사령관 이석대의 후임으로 김좌진 임명
▷ 장춘에 독립운동 연락기지 상원양행 설립
▷ 길림에 조선독립기관본부 설치 추진
▷ 군자금 모집을 위해 전국의 부호들에게 통고문 발송
▷ 경북 칠곡의 친일지주 장승원 처단
▷ 충남 아산의 친일 면장 박용하 처단
▷ 1918년 일제에 의해 조직 발각, 지도부와 단원들 연이어 검거
▷ 1919년 경성고법 박상진, 채기중, 김한종, 임세규, 유창순에게 사형 선고
▷ 1920년 생존단원들 서울에서 광복단결사대 암살단 조직
▷ 광복단결사대 군산, 김제, 광주에서 군자금 모집
▷ 광복단결사대 미국의원단의 방한에 맞춰 총독 및 고관 암살계획 실패
▷ 1945년 대한광복단 재건
▷ 서울 연지동에 본부 설치, 재건 선언문, 강령, 단규, 단칙 발표
▷ 광복의숙 설립 추진
▷ 1950년 한훈 6.25전쟁 중 논산에서 인민군에 의해 학살, 재건 대한광복단 해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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