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장애
울분장애
  • 등록일 2019.02.20 20:09
  • 게재일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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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김규종
경북대 교수·노문학

세상 살면서 사통오달(四通五達) 인생을 향수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것은 세상살이가 녹록치 않아서, 나와 같지 않은 타자로 인해, 기획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서, 혹은 기대치 충족의 불가(不可)로 인해서 발생한다. 어떤 이들은 불의한 시공간과 부당한 억압으로 울분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가 열사나 위인으로 존숭하는 유관순이나 윤봉길, 김구 같은 분들이 그러하다. 공적인 영역의 거룩한 울분을 제외하면 우리는 일상의 영역에서 울분을 경험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울분(鬱憤)은 ‘답답하고 분함 내지 그런 마음’을 일컫는다. 한자말을 들여다보면 나무와 나무, 바위로 길이 막혀 답답한 형국과 분노로 인해 감정이 북받치는 상황임을 보게 된다. 명약관화한 길과 해결방도가 있음에도 에둘러야 하거나, 그럼에도 길이 속 시원하게 현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조바심과 갑갑증을 호소한다. 대개의 경우 울분은 내재적 원인이 아니라, 자아를 둘러싼 인간과 관계와 사건이 원인제공자로 등장한다.

얼마 전 한국인의 울분을 점수로 환산한 기사가 눈에 들었다. 한국인 성인남녀의 14.7%에 이르는 사람들이 중증(重症)의 울분을 겪으며 살고 있다는 얘기. 동시대 도이칠란트 성인들은 불과 2.5%만 그런 증상을 경험한다고 한다. 도이칠란트 국민의 6배 가까운 한국인이 중증의 울분상태에서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이토록 높은 비율의 울분을 강제하고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룩한 지구 유일국가 대한민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무슨 일이 발생하고 있는가?! 기사에 따르면,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정의 부재 및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무시하는 사회구조가 울분의 근간에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사회-경제적으로 하위계층에 속하는 사람은 중산층이나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보다 울분지수가 높았다. 예컨대 작년에 급격하게 오른 부동산 보도에 분노하고 절망한 사람들 대다수는 무주택자 하위계층이었다. 그들은, 당연한 얘기지만, 민주화된 한국사회에 반드시 존재해야 할 사회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음을 절감하는 계층이기도 하다. 직장을 구하는데 무진 애를 먹거나, 일터에서 온전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들도 극심한 울분장애를 경험한다고 한다.

기사를 읽다가 생각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시대 한국사회에 가장 결정적으로 결여된 미덕이 무엇인지 숙고한다. 그것은 평등과 공정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사회-경제-정치-문화적인 불평등과 그것이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불공정과 불의의 수인(囚人)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없는 부모와 국가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까닭에 ‘스카이캐슬’은 불가피하게 우리의 일생을 불평등과 불의로 낙인(烙印)하고 강제한다.

여기 더해 소수지만 뼛속 깊이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 모리배들의 끈질긴 행악질이 우리의 울분을 자아낸다. 1980년 5월의 광주민중항쟁을 여전히 폭도들과 북한군의 소행이라고 우겨대는 극우 악질분자들의 패악(悖惡)은 우리의 정서를 극도로 자극한다. 부패-무능-타락-패거리주의로 엮인 정파의 인간들이 아무 수치심 없이 외쳐대는 간첩과 폭도 운운은 범죄수준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그자들이 얻는 것은 국회의원의 한시적인 특권일 뿐.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분간하지 못하고 내갈기는 그자들의 언사는 토악질마저 불러일으킨다. 그자들이 유수한 대학과 육사 출신이라며 사람들을 호도(糊塗)하는 양상을 보노라면 을사오적(乙巳五賊)이 절로 떠오른다. 일신의 영달과 부귀를 위해 역사도 민중도 국가도 염두에 두지 않았던 희대의 도둑질 괴수집단. 장자는 도둑질에도 다섯 가지 도(道)가 있다고 일갈했다. 성(聖), 지(智), 용(勇), 의(義), 인(仁)이 그것이다.

국가와 역사와 민중을 도둑질하지 않는 품격과 자질을 갖춘 자들의 공간으로 국회가 거듭날 때 우리의 울분지수도 하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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