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칭다오에 왔으면 칭다오 맥주지요. 전대광이 박자를 맞추듯 말했다. 칭다오 맥주는 중국을 대표하는 10대 브랜드중의 하나였다. 술로, 그것도 중국 고유의 술 마오타이나 우량예가 아니라 서양의 술인 맥주로 서양에 수출해서 G2의 경제대국 중국을 대표하는 10대 브랜드에 들었다는 것은 좀 이상스런 일일 수도 있었다.” 조정래의 장편소설 ‘정글만리’에 나오는 청도에 대한 구절이 새삼 떠올랐던 것은, 지난 주 한국사고와표현학회 회원들과 다녀온 중국 청도 여정 때문이었다.

‘중국속 유럽’이라는 별칭처럼, 청도는 청나라 시기 독일의 조차지로 주황색 기와지붕 건물이 보존된 구도심과, 디자인 감각이 돋보이는 건축물이 들어서 깔끔하게 계획된 신도심이 대비가 되는 도시였다. 박지원이 청나라를 다녀와 쓴 ‘열하일기’처럼 세심하게 관찰하고 꼼꼼하게 기록한 글이면 좋으련만, ‘주마간산’ 인상기처럼 칭다오 맥주박물관, 해천만쇼, 산동대학에서 느꼈던 단상을 나눈다.

청도여행을 오면 제일 먼저 방문한다는 칭다오 맥주박물관! 박지원이 청나라 문물이 발달한 이유로 하찮은 ‘기왓조각’이나 ‘버려진 똥’도 활용하는 실용정신을 지적했던 것처럼, 2019년 중국은 1903년 독일이 만든 맥주공장 시설을 재활용하고 있었다. 10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박물관 공간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입힌 증강현실(AR)로 맥주의 제조공정을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또한 맥주를 유리컵에 담아서 시음해 보는 체험공간을 두어 자연스레 칭다오 맥주를 홍보하며 구매까지 유도하였다. 중국 사회주의경제가 독일 식민시기의 유산조차 보존하고 새롭게 재탄생시켜 관광자원화 한 현장이었다.

또한 중국 근현대 역사와 문화가 결합한 해천만쇼! 천창대극원에서 관람한 ‘몽귀금도’는 독일인 마술사와 중국인 여성 바이올린 연주자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었다. 사회 정치적 격동기에 굴절될 수밖에 없는 개인적 삶의 서사를 인문학적 감성과 상업적 마인드로 잘 결합하여 기대 이상의 볼거리를 제공하였다. 일제,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 등 역사적 소재를 가미한 러브 스토리에 춤과 음악, 마술, 드라마와 화려한 쇼를 융합한 공연예술의 극치를 선보였다. 중국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사랑과 이별, 재회라는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한 기획력과 첨단 영상을 활용한 세련된 무대 연출로, 사람들 발길을 이끈 이른바 ‘컬처노믹스’로 문화를 경제와 접목한 사례였다.

마지막으로 청도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받았던 산동대학교 도서관! 대학에서 글쓰기와 말하기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수들이 함께 떠난 터라 캠퍼스 투어는 더 특별하였다. 천하 인재를 위해 국가 부강을 위해 교육한다는 산동대학교 정문의 교석과 곧장 연결된 중심 위치에, ‘대학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는 도서관이 우뚝 서 있었다. 도서관 로비에서 친절하게 안내 서비스를 해 주던 두 대의 ‘로봇 도우미’는 중국이 한 발 앞서 대학의 미래를 선도하고 있는 상징처럼 읽혀졌다. 대학사회에도 이미 인공지능과 로봇기술이 결합한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음을 중국에서 알게 되었다.

“중국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중국에 대해서 안다고 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정글만리’는 ‘14억 인구에 14억 가지의 일이 일어나는 나라’이기에 중국의 변화 양상을 속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잠깐의 청도 일정에서도, 시진핑이 강조한 ‘중국몽(中國夢)’의 실체가 과거와 현재, 미래가 소통하는 가운데 경제발전과 교육성장으로 구현되는듯 했다. 일견 중국을 잘 아는 듯 말하지만 사실은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러나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제라도 정확히 알 필요가 있는 나라, 중국의 저력과 가능성을 목격했던 여정이었다. 중국을 공부하고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청도 워크숍이 내게 남긴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