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철강생태계 재구축하자
④ 실태조사가 먼저다

포항시는 철강산업이 성장한계에 부딪히기 시작한 2000년대 이후부터 포항철강산업단지관리공단, 포항상공회의소 등 유관기관과 함께 철강생태계 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이들이 그동안 초점을 맞춰온 것은 철강산업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보다는 행정·재정적인 지원을 어떻게 더 많이 할 수 있는지 논의하는 정도였다.

이는 포항철강공단에 입주한 업체 대부분이 포스코, 현대제철 등 일부 대기업의 철강소재를 납품받아 반제품, 구조물 등을 생산하는 구조적 한계를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포스코에 따르면 지난 2017년 한 해 동안 포항제철소에서 약 1천440만t의 철강제품이 생산돼 이 중 30.9%인 약 445만t이 포항지역 업체로 공급됐다. 수출품을 제외하더라도 포항제철소에서 국내시장에 공급한 제품 중 포항에서 소비되는 비율은 절반(45%)도 채 되지 않는다.

포스코 등 철강소재 업체 특성상 고객사의 주문 여부에 따라 생산량이 높아지거나 줄어들 수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우수한 철강제품을 보다 많이 활용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산업생태계 구조에 과감한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수직계열화된 제조체계는 그대로 유지하되, 이와 별개로 선진국의 산업클러스터와 마찬가지로 혁신과 경쟁을 통해 스스로 성장·도태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생태계를 동시에 구축해야 한다.

특정업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고부가가치 제품을 만들어내려고 시도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공정을 처리할만한 인프라가 구축돼야 하는데 포항은 이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일본 자전거업체 시마노, 국내 손톱깎이업체 쓰리세븐(777)처럼 철강소재를 활용한 완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포항지역 산업구조에 대한 명확한 실태조사가 요구된다.

무엇을 갖추고 있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철저히 분석해야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방안도 마련할 수 있다.
 

위그선 등 고부가가치 최종재 생산기지가 포항에 온다면

위그선 등 고부가가치 최종재 생산기지가 포항에 온다면
국내 위그선 제조업체 아론비행선박산업㈜이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해 취항을 눈앞에 두고 있는 8인승 위그선. /아론비행선박산업 제공 

연내 포항∼울릉 정기 운행하는 위그선
선체 제조에 두께 6㎜ 이상 후판 활용
철강 소재 고부가가치 최종재로 손꼽혀
지역에 철강·조선사 공존체계 조성 필요
‘블루오션’ 상품 생산 중소업체 공략해야

물 위를 나는 배 ‘위그선’은 철강소재를 바탕으로 생산가능한 고부가가치 최종재 중 하나로 꼽힌다.

위그선은 일반 배와 같이 수면 위를 떠다닐 수도, 새처럼 물 위를 날아갈 수도 있다. 수면에 가까이 떠서 사이에 갇힌 공기를 이용해 양력(揚力)을 키우는 점에서 비행기와 차별화된다.

국내에서는 경남 사천에 소재한 중소업체인 아론비행선박산업(주)이 독자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고 시속 200㎞로 운항하며, 장애물을 만나면 수면 위 150m까지 상승하는 이 위그선은 연내에 포항∼울릉간 정기노선 운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여객선으로 3시간 20분 이상 걸리는 포항∼울릉 구간을 1시간 10분에 주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아론비행선박산업은 양산체제가 본격가동되면 연간 200척의 위그선을 생산하고 매출액이 1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위그선을 포함한 선박의 선체는 일반적으로 두께 6㎜ 이상인 고강도 선박용 후판을 활용해 만들어진다.

국내에서는 철강 빅3인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이 후판시장을 이끌고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 기준 후판 내수 출하량은 358.9만t으로 전년 동기대비 23.2%가 증가하며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조선업계가 지난 2015년 최악의 ‘수주 절벽’을 겪으며 후판을 공급하는 철강업계도 동시에 위기에 빠졌으나 지난해부터 점차 회복세로 접어들면서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코를 포함한 3사가 생산하는 후판은 대부분 포항이 아닌, 타지역(부산, 창원, 거제 등)에 자리잡은 대형 조선사로 보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조선산업이 불황을 겪으면 철강산업도 덩달아 불황을 겪고, 호황이 시작되면 덩달아 호황을 누리는 의존적인 산업구조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포항에 철강사와 조선사가 함께 자리를 잡고 철강사에서 생산한 후판을 조선사에서 활용해 선박을 만들어내는 생산체계를 갖춘다면 어떨까.

운송비를 대폭 절감하고 공급사와 고객사간 상호 협조를 통해 생산량 조절도 얼마든지 가능해져 강력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

현실적으로 대형조선사가 포항에 조선소 이전 및 신설을 시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위그선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블루오션’상품을 생산하는 중소업체를 공략할 필요가 있다.

모든 생산시설을 갖춘 기존업체를 포항으로 유치하거나, 기술개발 의지를 지닌 포항의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한계를 정확히 인식하면 극복할만한 방안을 찾는 것도 쉬워진다.
 

군수산업 등 해외시장 개척 가능한 산업과의 연계방안도 대안

통일 이전 전투기를 생산하는 군수업체에서 통일 이후 항공·우주에너지 분야 독일 최고의 연구센터로 거듭난 독일항공우주연구센터(DLR). 
/박동혁기자 

남북 평화무드로 군수산업 ‘레드오션’ 위기
시장 확장 전 중소 군수업체 역유치 서둘러
최고급 철강소재 다양한 무기개발 선도
통일 후 서독 군수업체 위기극복 사례 본보기
해외시장 개척·기술개발 통해 경쟁력 제고

포항지역 전체를 대상으로 산업구조 재편에 나서기 위해서는 각 기업별 전문분야, 생산품목, 주요공정, 시설 및 인프라 등을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위그선 업체를 유치할 것인지, 손톱깎이 업체를 유치할 것인지에 앞서 전공정(全工程)체제를 갖추기 위한 제반 조사부터 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포항시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야 한다.

현재 포항철강공단 내 업체에서 1차 철강소재를 생산해 중간재까지 이르는 가공과정을 마치면 대부분 제품이 포항 밖으로 보내진 후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수요산업에 의해 최종재로 완성돼 시장에 보내진다.

과거에는 운송비 절감 등을 이유로 완제품이 납품되는 주문처인 소비시장과의 접근성이 가장 중요한 입지조건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전 세계를 상대로 제품판매가 가능해진 오늘날, 시장 접근성은 공장 입지를 제한할 정도의 요소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

포항시와 철강업계는 지난해부터 남북관계가 평화무드로 변화하면서 자칫 ‘레드오션’이 될 위기에 처해있는 군수산업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국내 군수업체들은 지난해 4월 판문점에서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된 이후 통일국가 독일에 대한 연구에 돌입했다.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서독의 군수업체들이 군비축소 여파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서독 군수업체들은 판매시장을 해외로 돌렸고 기술개발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며 세계적인 군수업체들과 경쟁에 돌입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전 세계 방위산업 제품 수출액의 5.8%를 차지하며 세계 4위의 방산제품 수출국으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가 운용하는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유도미사일과 지상무기에 탑재된 엔진 및 파워팩이 독일에서 온 제품들이다.

독일 군수업체의 사례는 남북통일이 현실화될 경우 국내에 곧바로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내시장에만 의존하던 군수산업이 해외시장에서 성공을 거둔다면 우리나라는 무기를 구입하는 국가에서 판매하는 국가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다.

군수산업 팽창되기 전 포항에 중소 군수업체를 유치하거나 설립할 수만 있다면 기존 철강업체들이 공급하는 최고급 철강소재를 활용해 다양한 무기개발에 나설 수 있다.

이와 관련,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은 “포항지역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경영 다각화를 모색하고자 할 경우 철강소재를 활용해 새로운 제품생산이 가능하도록 포항시 등 유관기관이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 발전에 따라 국내에서 예전에는 널리 활용됐지만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제품 중 동남아·남미 등 해외에서는 여전히 널리 쓰이고 있는 철강제품이 있다면 이를 공략하는 것도 새로운 시장창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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