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어떠한 전문직 종사자들보다도 교사는 멀리 내다볼 수 있는 식견을 지니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육학의 거장 존 듀이는 ‘경험과 교육’에서 그리 말한다. 이 말을 한국의 대학사회에 적용해 보면 적잖이 공허하다. 많은 대학들이 재정 부담을 이유로 교수 집단을 세분화하여 단기 계약직 교수들을 양산해 왔다. 강의전담교수, 산학협력교수, 초빙교수, 겸임교수, 객원교수 등의 비정규직 교수들은 ‘교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긴 하나, 정년 전임들과 비교할 때 임용조건이 천양지차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학생들을 교육하기에 그들의 형편이 열악하다. 교원지위 안정화를 목적으로 하는 강사법 시행을 앞두고 대학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비정년 전임 교수들의 상황은 강사보다 낫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대학 비정규직 교수들 상황도 다르지 않다. ‘비정년 트랙 전임 교원’은 2000년대 초에 등장하였다. 교수정원을 늘려 보이되 구조조정이 용이한 경영의 효율성에 따라 교수와 강사 지위의 절묘한 조합이었다. 그야말로 비정년 전임교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특성이 어정쩡하게 혼합된 자리다. ‘비정년’이기에 고용 불안 문제는 강사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전임’이기에 일반 정년 교수들처럼 연구실도 제공되고 강의실 안팎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논문을 발표하며 교내외 일들에 참여하는 교육과 연구, 봉사의 의무를 지닌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비정년 전임교수의 경우 1~3년의 계약기간에 재임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오랫동안 근무했던 대학일지라도 곧바로 짐을 싸고 방을 빼야 하는 처지다.

비정년 전임 교수들의 현실은 대학 사회의 모순을 보여준다. 정년과 비정년으로 교수들을 구분하고 계층화하는 구조에서 대학의 지식노동이 동등하게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트랙이기에 임금과 승진에서의 차별만이 아니라 교수로서의 권리가 거의 없다. 수업시수가 많아 학생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 교육전담 교수라고 해도 학생들과 면담할 수 있는 독립적인 개인 공간을 배정받기 어렵다. 더구나 대부분 교육교수로 있기에, 재임용 과정에서 학생들의 강의평가 결과는 더욱 결정적인 변수가 되기도 한다.

강사와 교수의 경계에 서 있는 비정년 전임 교수들은 재계약 할 때마다 불안함과 허탈감이 증폭된다고 말한다. 계약 조건에 따라 반복적인 재임용 절차가 진행되고 있지만, 매년 교원들의 업적을 평가하는 다양한 활동의 내용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가 정년 보장을 약속하지 않았기에, 대학 상황이 바뀌거나 교육과정이 변경되는 경우 ‘유연하게’ 계약에 따라 고용 여부가 판단될 수 있다. 이처럼 대학이 전임교원 숫자를 교육부에 보고할 때는 전임 신분으로 해석되지만 학교 내부의 사정에 따라 수시로 요동치는 자리가 바로 비정년 전임 교수들의 실상인 것이다.

대학사회가 자본의 논리로 흔들리고 있다. 대학이 경영을 이유로 구조조정을 할 때 1순위는 가장 약한 고리인 비정규직 교강사들이다. 연구비를 줄이고 대규모 강좌를 늘리고 노동조건이 악화되어도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이들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된다. 대학교육의 공공성을 고려해 본다면, 비정년 교수들의 상황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볼 수만 없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중요한 이유가, 대학 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계약서 규정만 지켜 퇴출을 면하려는 보신주의를 가져온다. 정년 자리만 보전하는 전임교수도 있는 현실에서 비정년 트랙의 고착화는 위험하다. 교육과 연구에 헌신하고 학생들의 성장과 학교 발전에 기여하는 비정년 교수에게는 정년 트랙으로의 이동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 학문과 교육의 ‘공동체’인 대학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