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광해의 경북의 멋과 맛을 찾아서
① 연재를 시작하며

안동 경당종택의 사랑채.
안동 경당종택의 사랑채.

물어보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영남의 음식을 주제로, 특히 경북 지역 음식과 문화에 대해 연재를 할까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답 없이 씩 웃는다. 한참동안 가타부타 말이 없다. 더러 어처구니없다는 듯 쳐다본다. 재차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그제야 마지못해 한마디 던진다.

“영남에 음식이랄 게 있나요? 특히 경상북도에.” 경북의 음식과 그에 얽힌 문화에 관해 글을 이어가겠다니 마주 앉은 대화 상대는 입을 벌린다.

 

경북은 ‘법도대로 만든 음식’을 낳았다. 500년 전 탁청정 김유가 ‘수운잡방’을 쓴 이유다. ‘맛없는 음식’을 내놓는 경상좌도에서 음식조리서가 집중적으로 나온 이유다. 경상좌도의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바로 이것이 ‘경북의 음식과 문화’에 관해 쓰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 관혼상제를 겪는다. 음식은 ‘봉제사접빈객’의 주요 도구다. 제사상 차림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상차림이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 관혼상제를 겪는다. 음식은 ‘봉제사접빈객’의 주요 도구다. 제사상 차림은 그중에서도 최고의 상차림이다.

◇ ‘남자, 유학자’가 음식조리서를?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책으로 엮을만한 분량의 글을 경북의 음식에 관해 쓴다는 것이. 우리나라 전역도 아니고 경북에 한정해서라니 더욱 그랬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견해를 만났으니 낯간지러운 고백을 한다.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음, 이거 재미있는 일이겠군”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지인 중 누구도 가능하다고 믿지 않는 작업에 도전해보는 건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는 영남 음식, 경북 음식에 관해 잘 모른다. 영남, 특히 경북은 음식의 볼모지라고 여긴다. 아래는 몇 해 전 ‘경북매일’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광산김씨 탁청정공파 종택’ 중요민속문화재 지정-

도지정 문화재였던 안동 탁청정 종택이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안동 광산김씨 탁청정공파 종택(安東 光山金氏 濯淸亭公派 宗宅·사진)’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제272호로 지정했다고 밝혔다.(중략) 또 탁청정(濯淸亭) 김유(金綏·1481~1552)가 쓴 조선 전기 전통 음식의 조리·가공법이 기록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요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을 비롯해 종가의 고문서 등 다양한 민속자료가 보존과 당시의 생활상, 사회·경제사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와 의미가 크다...(후략)

 

경당종택의 경당 불천위 제사상. 문중 제사는 귀하고 그중 불천위제사는 가장 귀하다.
경당종택의 경당 불천위 제사상. 문중 제사는 귀하고 그중 불천위제사는 가장 귀하다.

‘수운잡방’은 1540년 무렵 쓴 책이다. 필자는 경북 예안 지방(안동 와룡면)의 선비 김유. 500년 전이다. 음식 맛없기로 소문난 경북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이 나왔다? 필자는 남자다?

탁청정 김유의 ‘수운잡방’은 개인적으로, 음식 공부의 계기가 되었던 기록물이다.

이숙인 연구교수(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는 ‘수운잡방’에 대해서 글을 썼다. 제목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요리책, ‘수운잡방’이다. 최고(最古)의 요리책이라고 했다. 내용도 상당히 풍부하다. 장, 술, 식초 담그는 법부터 국물 끓이는 레시피까지 상세하다.

수운(需雲)의 ‘수(需)’는 주역의 다섯 번째 괘인 ‘수괘(需卦)’에서 따온 말이다. ‘음식의 도’를 이른다. 수운(需雲)은 ‘잔치, 연회 등 행사를 준비하는 음식’ 혹은 ‘앞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음식’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수운잡방’은 잔치, 연회 음식을 만드는 여러 가지 방법이다. 당시 탁청정이 접했던 음식, 의미가 있는 음식들의 레시피를 상세히 기록했다.

음식을 공부하는 이들이 자주 보는 자료는 ‘목은집’ ‘향약집성방’ ‘산가요록’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다산시문선’ ‘규합총서’ ‘오주연문장전산고’ ‘서경잡절’ ‘동국세시기’ ‘시의전서’ 등이다. 여기에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의 역사서를 더한다.

‘수운잡방’은 각별하다. ‘목은집’ ‘다산시문선’ ‘서경잡절’ 등은 개인의 문집이다. 시, 편지 등에 간간히 음식이 등장한다. ‘향약집성방’은 의약서적이다. 산가는 산촌, 한적한 시골을 뜻한다. ‘산가요록’은 시골에서 사는 법, 즉 농서(農書)다. ‘규합총서’ ‘오주연문장전산고’는 백과사전 격이다.

음식과 더불어 의식주 전반에 관한 내용과 시대상 등을 기록했다. ‘동국세시기’는 제목 그대로 우리나라의 각 절기의 풍습, 풍속을 기록한 것이다. 모두 음식전문서적, 음식조리서는 아니다.

‘수운잡방(안동)’ ‘음식디미방(영양)’ ‘시의전서(상주에서 발견)’ 등은 음식조리서다. 모두 경북이다. 내놓을 음식도, 맛있는 음식도 없는 경북에서 왜 음식 조리서가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

의문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였다. 음식을 공부하기 시작한 지점이었다. ‘수운잡방’의 필자는 유학자, 남자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거나 음식 타박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던 경북에서 남자가 음식조리서를 만들었다니! 그것도 된장, 간장 등 장(醬)과 각종 김치류, 식초, 술 등을 빚는 세세한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책이라니.

 

경당종택의 아침 밥상.경당은 학봉 김성일을 통해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경당종택은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친정이다.
경당종택의 아침 밥상.경당은 학봉 김성일을 통해 퇴계의 학통을 이어받았다. 경당종택은 ‘음식디미방’의 저자 장계향의 친정이다.

◇ 음식은 ‘봉제사접빈객’의 도구

음식은 유교, 유학이 추구하는 세상을 유지하는 주요한 도구였다.

경주 법주의 ‘법(法)’은 법도다. 법도대로 만든 술이 법주다. 기준이자 표준이다. 원칙대로, 제대로 만든 술이라야 제사상, 손님상에 올릴 수 있었다. 사람은 유학을 배워야 사람 노릇을 하고, 음식은 법도대로 만들어야 제사상, 손님상에 내놓을 수 있었다.

탁청정 김유는 유학자다. 선비다. ‘사대부(士大夫)’는 선비, 공경대부를 널리 이르는 표현이다. 벼슬을 하던, 하지 않던 모두 유학의 세례를 받은 유학자들이다. 탁청정도 마찬가지였다. 평생 선비로 살았다.

봉제사접빈객(奉祭祀接賓客). 유학적 세계관으로 볼 때 위로는 궁중으로부터 아래로는 사대부까지, 유학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긴 것은 제사 모시고, 손님 접대하는 것이었다.

궁중 제사는 종묘 제사가 대표적이고, 민간은 조상 제사다. 국가 손님은 중국 대륙과 남방의 왜, 유구 열도 등의 사신단이었다. 민간의 손님은 집안 대소사에 모이는 손님들이다.

 

서울 성북구 봉화묵집의 건진국시. 경북 봉화 출신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이는 유교적 가치관이다.
서울 성북구 봉화묵집의 건진국시. 경북 봉화 출신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이는 유교적 가치관이다.

지금도 “언제 결혼하느냐?”는 말 대신에 “언제 국수 먹여줄래?”라고 묻는다. 흔히 “장수를 기원하기 위하여 국수를 마련한다”고 말한다. 틀렸다. 장수를 기원하려면 환갑날에 국수를 내놓아야 한다. 왜 하필이면 결혼식인가? “국수로 장수를 기원한다”면 안동의 국수 제사는 설명할 길이 없다.

돌아가신 분에게 장수 기원? 터무니없다. 경북 지역의 일상적이고 뿌리 깊은 국수 문화를 설명할 방법도 없다. 음식 맛없기로 유명한 경북 안동의 ‘안동국시’가 수십 년간 서울에서 성업 중인 이유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4가지 주요한 ‘행사’를 겪는다. 관혼상제(冠婚喪祭)다. 어른이 되고, 혼례를 올린다. 죽으면 초상을 치르고 제사를 모신다. 주요한 행사니 ‘손님들’이 모인다. 봉제사접빈객이다. 당사자를 위한 상도 차리지만 손님맞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음식은 제사 모시고, 손님을 맞는 주요 도구다. 제대로 차려야 한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은 수치다. “며느리 잘 못 들여 장맛이 무너졌다”는 말도 수치다.

국수는 소중한 음식이었다. 밀은 귀했다. 메밀로 국수를 만든다. 품도 많이 들고 준비기간도 길다. 몇 달 전부터 국수 준비를 한다.

성인이 되는 관례(冠禮)는 대부분 사라졌다. 상투가 사라지니 관례도 없어졌다. 어른이 되면 머리에 관을 쓴다. 예전에는 이날에도 손님들을 위하여 국수 등 잔치 음식을 내놓았다.

초상은 언제 닥칠는지 모른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조상을 위하여 미리 ‘초상 용 국수’를 마련할 수는 없다. 불효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돌아가시게 할 수 없다”고 힘을 짜내서 잘 모셔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불효자가 된다. 거친 옷을 입고 거친 밥을 먹는다. 죄인의 심정으로 묘를 지킨다. 하물며 아파서 누워계신 어른을 위하여 미리 국수를 준비할까? 개장국, 육개장으로 손님을 모신다.

남는 것은 혼례와 제례다. 결혼식과 제사상에는 반드시 국수가 등장한다. 주인공을 위한 상에도 등장하지만 손님맞이 상에도 국수가 오른다.

안동의 ‘건진국시’는 대표적인 ‘행사용 음식’이다. 수십 년 전까지도 안동의 혼례, 문중 제례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당연히 국수를 준비한다. 문제는 준비하는 시간이다. 마치 식당의 피크타임 같다. 순식간에 수백 명이 모인다.

 

경당종택의 고춧가루 식혜.
경당종택의 고춧가루 식혜.

웬만큼 솥을 많이 준비해도 늘 시간에 쫓긴다. 국수 삶는데 10분씩 걸리기도 한다. 국수는 조금만 두면 붓는다. 건진국시는 미리 삶아서 냉수 처리한 다음 준비해둔 국수다. 손님이 오시면 육수를 붓고 고명을 얹어서 내면 된다. 간단하고 빠르다.

‘제물국시’는 건진국시의 대척점에 있다. 건져내서 냉수 처리하는 건진국시와는 달리 물에 국수를 넣고 삶은 후, 국수 삶은 물과 삶은 국수를 같은 그릇에 담아낸다. ‘여름엔 건진국시, 겨울엔 제물국시’는 우리 시대의 풍습일 뿐이다. 행사 때는 건진국시, 일상에서는 제물국시다.

경당종택의 경당 불천위 제사상. 문중 제사는 귀하고 그중 불천위제사는 가장 귀하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는 ‘고려삼은(高麗三隱)’이다. 모두 경북과 연관이 있다. 목은은 외가가 영덕이다. 문하생인 포은은 포항, 영천, 길재는 현재의 구미(선산군)가 고향이다. 도은 이숭인은 성주, 조선을 건국한 삼봉 정도전은 영주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고려시대 말에 태어났으나 유학자들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조선 중기, 안동에서 퇴계 이황이 태어났다. 한반도 유교 성리학의 시작이자 끝이었다.

경북은 100년 전 경상좌도(慶尙左道)다. 유학의 나라다. 유학자, 사대부의 나라다. 음식은 유교적 세계를 구축하는 ‘봉제사접빈객’의 주요도구다.

경북은 ‘법도대로 만든 음식’을 낳았다. 500년 전 탁청정 김유가 ‘수운잡방’을 쓴 이유다. ‘맛없는 음식’을 내놓는 경상좌도에서 음식조리서가 집중적으로 나온 이유다. 경상좌도의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법도에 맞는 음식이다. 바로 이것이 ‘경북의 음식과 문화’에 관해 쓰고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재를 통해 경북의 음식, 음식 문화, 법도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보는 식당의 음식 등을 살펴볼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을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황광해는 1957년 경상북도 구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서울문화사 등에서 편집장을 지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식과 문화에 관한 글을 꾸준히 써왔다. ‘한국 맛집 579’ ‘줄서는 맛집’ ‘오래된 맛집’ ‘고전에서 길어 올린 한식 이야기 식사’ 등의 책을 펴낸 음식평론가로 잘 알려져 있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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