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열한동대 교수
장규열
한동대 교수

중국의 지도자들은 이념적으로는 공산사회주의 기본질서를 유지하면서 나라를 이끌고 일으켜 가는 정책의 방향은 글로벌 시장의 흐름과 시대적 지향성을 살펴가면서 운용해 오고 있다. 1968년에는 상업창부(商業創富)라 하여, 나라의 부를 전통적 상인 기질을 발휘하여 부강하게 할 것을 목표로 하였다. 19876년에는 과기창신(科技創新), 즉 과학과 기술의 힘으로 나라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기로 하였다. 그리고는, 2002년부터 문화창의(文化創意)라 외치면서 문화를 기반으로 나라의 뜻을 세우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임을 분명히 하였다. 즉, 21세기에는 문화가 주도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선포한 것이며, 실제로 다양한 방면에서 풍성한 문화정책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경제와 정치, 국방과 외교가 나라를 운용하는 수단이지만, 문화의 그루터기가 든든해야 새로운 시대를 자신있게 열어갈 것임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혼란의 해방 정국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은 이렇게 적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그는 그토록 어지러웠을 정치현실의 한 가운데에서 어떻게 문화를 떠올렸을까. 그리고 그것을 ‘힘’으로 표현하였을까. 김구 선생은 사람이 푯대로 삼아야 할 여러 지향점들 가운데 문화가 가장 높은 경지임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우리의 것이라 자랑할 만한 문화가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오늘 우리는 문화를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일에 얼마가 생각을 기울이는가. 정치와 경제로만 사람의 삶이 해결되지 않으며, 국방과 외교로 지켜내는 나라의 정체성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에게만 독특하고 분명한 문화적 색깔을 찾아야 하고 길러야 한다. 우리들 스스로 이를 살피고 발견하고 우리의 것으로 다듬어 가야한다. 중국이 문화창의를 외칠 즈음에 한국도 나름 문화를 주요 정책지표의 하나로 세웠었다. 하지만, 어느 틈에 문화는 정책의 중심에서 도외시된 듯하다. 조선의 세종과 정조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문화가 나라와 사회의 한가운데 기둥이 되어 튼실하게 버틸 공간을 제공하여 줄 때에 백성의 운명과 국운이 함께 펼쳐졌던 기억이 있다. 이제라도 한 때 되새겼던 ‘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워 문화로 강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 일에 나서야 한다.

지역은 어떠한가. 문화는 그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소중하여 빼놓을 수 없는 무엇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똑같을 것을 찾아볼 수 없을 때에 비로소 그 지역의 ‘힘있는 문화자산’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 이를 토대로 차별화도 가능하고 특성화도 시작될 것이다. 우리에게만 있어 ‘문화원형’이라 부를 만한 소재들을 발굴하여야 한다. 나라와 지역에 고유한 문화원형들을 앞으로 전개할 스토리텔링의 소재로 적극 활용할 때에 우리만의 문화의 힘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문화는 모두 옛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고루하다. 문화는 지극히 자연발생적이며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 가운데 언제든 자생적으로 피어나고 저절로 변화해 간다.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남들과 다른 문화자산을 찾아야 한다.

문화로 승부하고 상상력으로 승부하여야 한다. 이전과 다르고 남들과 다른 나라가 되고 지역이 되어, 문화가 힘이 되는 내일을 열어가야 한다. 어려울수록 문화를 떠올렸던 까닭을 다시 새겨보아야 한다. 문화가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