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고등학교 역할이 뭔데, 대학가는 거 아냐?” 그렇게들 말한다. 대학입시만을 바라보고 정신없이 달려온 고3교육이 수능이 끝나자 블랙홀에 빠졌다. 체험학습으로 떠났던 고3 수험생들의 강릉펜션 참사 사고 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수능 이후 한 달 간 마땅한 교육프로그램 없이 학생들이 방치되고 있지 않은지 전수 점검하겠다”고 공표하였다. 허술한 고3 수험생 관리가 사고를 불러왔다고 본 것이다. 수능 이후 교육이 공백 상태라는 점은 현장시찰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교사들은 “수능과 기말고사가 끝나면 사실상 더 가르칠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가르칠 것이 없겠는가? 과연 학생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입시감옥에서 풀려난 고3 학생들을 위한 학교교육이 없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생들을 붙잡고 있었던 교육이 멈췄다. 학교는 단축수업을 하고 학생들에게 하루 종일 자습하라고 하거나 수업마다 영화만 줄곧 틀어준다. 고3학생들은 출석일수를 채우기 위해 학교에 나오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이 시간만 때우다 간다. 수능 이전에는 빼앗겼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도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무단결석을 하거나 조퇴를 하기도 한다. 이 시기 많은 고3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신청한다. 교실 교육이 사실상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이라 학교도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권장한다. 현장체험학습은 학교장의 허가를 받아 학생들이 교외에서 체험한 다양한 활동을 출석으로 인정해 주는 제도다. 이번 참사의 본질은 현장체험학습에 있지 않다. 근본적인 문제는 입시일정과 맞물린 고등학교 교육의 한계다. 고3 교사들은 행정업무와 진로지도로 수능 이후의 교육에 사실상 신경쓸 여력이 없다. 수시와 정시가 혼재한 시기에, 대학마다 너무도 다른 입시전형을 챙기는 것만으로도 교사들의 부담은 과중하다. 더구나 평생교육 시대에 교육은 학생 스스로 배움의 주제를 갖고 자유롭게 탐구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이어야 되기에 체험학습이 위축되어서는 안된다. 배움은 교과서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교실 교육만으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육부는 차제에 “수능 후 고3 학사관리 내실화 방안도 마련해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 말이 공허하게 사라지지 않으려면 교육 현장에 구체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지원이 따라야 한다. 일회성 행사나 전시용 교육이 아니라 대학이나 사회에 나가기 전에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시험공부식 교육에서 도외시 될 수밖에 없었던 교육의 정상화가 도모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인성·창의·예체능 교육을 통해 그동안의 치열한 입시전쟁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이 되도록 커리큘럼이 마련되어야 한다. 머리만 쓰던 교육에서 학생들이 온몸을 사용하고 감성과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말로만 강조되고 뒷전으로 밀려났던 교육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인프라를 구축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 읽고 토론하고 생각하는 공부를 강조하는 미국 세인트존스 대학에 유학한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의 저자 조한별은 책에서 “수업(授業)도 아니고 수업(受業)도 아닌 수업(修業)이 되는”, 이른 바 자신과 세상을 연결시키는 교육을 강조한다. 고3학생들을 방치했던 수능 이후 고등학교 교육이 그처럼 되어야 한다. 자신의 삶의 비전을 찾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공동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생기부에 한 줄 기록하기 위해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경험해보고, 독서기록장에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진짜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며, 남에게 보여주기식이 아니라 자신의 성장과 성숙한 삶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제까지와는 달리 수능 이후 진짜 교육이 이뤄지는 시간이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