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이제 어리바리해서는 밥도 못 먹겠네….’ 얼마 전 집 근처 마트 식당가에서 주문 카운터가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 대신 무인기계가 놓여 있는 것을 보신 이모가 툭 한마디 하셨다. 공교롭게도 그 며칠 후 ‘무인계산대 시대, 무엇을 눌러야할지 몰라 쩔쩔매는 노인들’, ‘무인 주문·계산기 들여놓자 발길 끊은 60대 단골들’ 등의 기사들이 쏟아졌다.

액티브 시니어. 요즘 웬만한 60·70대 어른들은 ‘노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리지 않아 새로 쓰게 된 말이다. 은퇴 후에도 적극적인 소비와 취미, 여가 생활을 즐기며, 최신 상품들을 젊은이들보다 더 빨리 사서 써보는 ‘얼리어답터’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액티브 시니어를 신소비층으로 주목하며 시니어 특화 상품과 서비스를 앞다투어 개발해 시장에 내놓았다.

요즘 들어 어느 분야에서나 ‘사람 중심’이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어 반갑다. 그러나 정작 그 ‘사람 중심’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함께 얘기해 주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 함정이랄까. 사용자 중심의 제품과 서비스 디자인은 그 제품을 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찬찬히 살피고 그들의 필요를 공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마트에 식사하러 오는 대세 고객들은 누구인지,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등을 제대로 고민하다 보면 기계 앞에서 진땀을 빼게 하는 가짜 스마트가 아니라 만족스러워 다시 오고 싶게 하는 사람 중심의 진짜 스마트의 아이디어가 보상처럼 주어진다.

마트 식당가에서는 임시방편으로 무인 기계 옆에 주문을 도와 줄 사람을 보조로 세워뒀다. 하지만 애초에 사용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지 못해 잘못 만든 인터페이스가 문제였기 때문에 이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이 익숙해질 것이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한번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된 사용자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기왕 커다란 디스플레이가 있는데 그 앞에서 조그마한 스마트폰 화면처럼 한참을 뭔가 찾아다니며 몇 단계를 눌러 들어가야 주문할 수 있게 만든 것이 과연 정답이었을까? 차라리 사진앨범처럼 식당가의 모든 메뉴 사진을 한 화면에 쭉 나열해 두고 선택하게 했다면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쉽게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음식 견본 진열대 앞에 간단한 QR코드나 태그(Tag)를 붙여두고 카페 진동벨이나 스마트폰 스캔으로 바로 주문이 된다면 무인기계 앞에서 진땀 흘리며 메뉴를 고르느라 대기 줄이 길어지는 일은 없지 않을까?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는 단골손님은 굳이 무인기계 앞에 줄 서지 않고 자리에 편하게 앉아 ‘지난번과 같은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지금이라도 사용자의 생각을 제대로 읽어서 사용자 중심으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스마트의 중심이 사람에서 멀어지면 무인계산대처럼 소위 ‘솔루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람들이 제대로 쓰지도 못할 기기와 서비스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고찰없이 대충 만들어진 어설픈 ‘솔루션’들은 세상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악취를 뿜어내는 공해유발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어설픈 스마트의 사례들이 하나 둘 쓰레기처럼 쌓여 스마트 전체에 대한 불신과 외면을 부를 것이다.

스마트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실감할 수 있는,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진짜’ 스마트가 무엇일지를 고민하는 일이다. ‘나에게 세상을 구하기 위한 딱 1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데 55분의 시간을 쓰고, 해결책을 찾는 데 나머지 5분을 쓸 것이다’라고 한 아인슈타인 박사의 맞장구가 그래서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