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 8일 큰장 입구 강씨의 소금집 달구지 위에서 처음 일어났습니다. 독립운동의 물결이 경북지역으로 확산되는데 불을 댕겼지요"

계명대 의대 마취통증의학과 전재규(68) 명예교수는 20권의 관련 의서를 저술하는 등 평생을 의학에 전념해오다 수년 전부터 대구3.1독립운동 연구에 푹 빠져 있다.

그가 대구의 독립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99년 계명대 동산병원 개원 100주년 편집위원을 맡으면서 병원 인근 계성고를 비롯한 학교들과 제일교회, 서문교회 등이 3.1운동의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나서부터.

그는 2002년 동산의료원 내 선교사 사택으로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중인 건물에 대구3.1독립운동 역사관을 개관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고 이어 5월에는 '동산병원과 대구 3.1독립운동의 정체성'을 출간했다.

이듬해에는 대구 3.1독립운동 당일 시위학생들이 집결했던 동산의 솔밭길을 대구시에 건의해 '대구3.1운동길'로 지정받았으며 그해 대구3.1독립운동을 도심에서 재연하는 행사를 처음 벌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 교수는 대구경북 기독교역사연구회 이재원 회장의 고증을 뒷받침으로 자신의 저서 '동산병원과...'에서 대구3.1독립운동의 발상을 처음 밝히고 그 역사를 집대성한 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

전 교수는 "대구의 3.1운동의 발상지가 각종 자료에서 '큰장'이라고 표기돼 지금의 서문시장쯤으로 여기거나 아예 모르는 사람도 많다"며 "큰장은 서문시장에서 달성공원까지 이르는데 당시 생존자의 증언과 판결문 등 사료들을 종합하면 대구 독립운동은 지금의 섬유회관 앞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19년 3월 8일 남산교회 김태련 조사가 큰장 입구 강씨의 소금집(송월타월 자리) 달구지 위에서 품 속의 독립 선언문을 꺼내다 순사에게 빼앗기고 이어 의거의 총책임자인 남성정교회(현 대구제일교회) 이만집 목사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했다고 설명했다.

전 교수는 "대구의 만세운동은 일제에 의해 즉각 저지됐지만 이후 경북지역으로 확산되는 데 시초 역할을 했다"며 "시민들이 대구가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지라는 사실을 인식해 자긍심을 갖고 역사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대구 3.1독립운동 재연 추진위원회의 위원장이기도 한 전 교수는 오는 28일에도 3.1로를 따라 군중들이 행진하고 도심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대구3.1운동을 재연하는 한편 이만집 목사 기념사업회와 함께 대구 3.1운동의 발상지를 표시하는 표지석 설치도 계획하고 있다.

    최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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