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출신 작가 손춘익
포항출신 작가 손춘익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08.04.24 16:17
  • 게재일 2008.0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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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의 큰별' 평생 어린 영혼들을 사랑하다

우리나라 아동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포항출신 작가 손춘익. 그가 작고한 지 벌써 8년이 되었다.

기자가 손춘익 선생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 2000년 3월 ‘땅에 그리는 무지개’ 출간 때 인 것 같다. 만나자 마자 이별이라더니 그는 그해 5월 제10회 방정환 아동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해준 뒤 9월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짧은 만남으로 인해 서로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곁에는 늘 친구와 선·후배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술과 사람들을 좋아했고 부지런하고 사람 만나고 사귀는 데 탁월한 친화력을 발휘했으며 무엇보다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포항 뚝심’이었다. 포항에 문학의 뿌리를 내리고 공들여 가꾸었던 열정은 오늘날 수많은 후배문인을 배출하였고, 다소 고집스럽던 그의 성품까지도 그들에겐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지난 2005년엔 동화작가 김일광과 소설가 이대환 등이 중심이 돼 손춘익 문학비 건립위원회를 결성하여 그가 사랑한 포항바다가 훤히 보이는 환호해맞이 공원에 비문과 함께 문학비를 세웠다.

이는 문학을 하는 후배들에게 올곧은 이정표가 될 뿐아니라 시민들에게도 삶과 문학혼을 전하는 표석이 되고있다.

“…어린 시절 나는 너무나 고달프고 외로웠습니다. 혼자서 쓸쓸히 산과 들을 헤맨 적이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때로는 산마루에 올라가 하염없이 먼 동해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만일 그 무렵 내 책장에 동화책이 꽂혀 있었더라면 어린 나는 그렇게 외톨로 떠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따금 새벽녘에 나는 문득 잠에서 깨어나곤 합니다. 그러면 몹시 가난했던 어린 날을 떠올리며 동화를 씁니다. 이제야, 비록 외롭고 슬픈 나날이었으나, 마음 속에는 늘 착하고 아름다운 꿈을 잃지 않았던 내 어린 영혼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는 것입니다.…”



작가 손춘익(1940∼2000)은 포항출신으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그는 경상북도 경주시 도지동에서 출생했다. 어릴적 포항으로 이사 와 포항초등학교부터 동지중, 동지상고, 포항수산대를 졸업하고 1965년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초등교에서 근무하다 1966년 조선일보와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가 당선돼 등단한 이후 평생 고향땅을 지키면서 ‘천사와 꼽추’, ‘이상한 손님들’, ‘어린 떠돌이’ 등 많은 동화집과 소년소설을 발표해 중견의 지위를 굳혔다. 1974년 단편 ‘죽음의 길’발표를 계기로 활동영역을 소설에까지 확장해 ‘작은 톱니바퀴의 연가’, ‘이런 세상’, ‘추억 가까이’ 등 주목받는 단편집과 장편소설을 간행했다.

‘포항문학’ 창간 편집인, 포항간호전문대 강사,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 및 아동문학분과 위원장을 지냈고, 평생 지역 문학 발전과 동화 창작에 힘썼다.

손춘익은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많은 시련을 겪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역경을 극복하고 이처럼 문학에 일가를 이루었다. 마치 부지런한 농부가 삽자루를 들고 논밭으로 나가듯 그는 매일 새벽 원고지 앞에 앉아 어린이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이야기를 짓고 불의와 부정을 비판하는 소설을 썼다.

그러나 선비정신과 민중의식이 팽팽히 교차하는 그의 문학세계는 그가 창간을 주도한 지역문예지 ‘포항문학’과 더불어 영원히 향기로울 것이다.

손춘익은 동해안의 작은 어촌이었던 포항이 포항제철의 건립으로 인해 급작스럽게 공업으로 전환했고 그 와중에서 격변을 겪는 지역에 밀착해 지역민들의 삶을 소설로 옮겨 냈다. 그는 일찍이 동화로 등단한 동화작가 였지만 1974년 현대문학에 ‘죽음의 길’을 발표한 이래 꾸준히 소설창작에 매진해 한 권의 유고집을 포함한 세 권의 창작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펴냈다.

손춘익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작품들은 영세어민들의 삶을 대상으로 한 것들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가난하며 매일 거친 바다에서 하루치의 일상을 걸어올리는 자들이다. 작품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대로 “생고기 배나 따묵는”사람들의 애환과 고통이 그의 작품세계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임은 분명한 것 같다. 바다는 곧 그들의 일용할 양식이고 삶의 터전이지만 그 바다를 근거로 살아가는 일은 그리 만만치 않다. 새벽같이 어장에 나가 물때를 보고 진종일 고기들의 뒤치다꺼리에 시달리며, 또는 수십미터의 수심을 견디며 해산물들을 걷어 올리는 그들의 삶은 늘 고단하고 팍팍하다.

노동자 농민들의 삶에 대한 핍진하고도 깊이있는 형상화가 민족문학의 중요한 자산이 되어온 우리 문학사를 생각해 볼 때 어민들의 삶에 대한 탐구는 생각보다 빈약하며, 그런 의미에서도 손춘익의 작품이 지니는 의미는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단지 어민들의 삶에 대한 성실하고도 생생한 재현 때문만은 아니다. 가진 것 없고 믿을 데 없는 이들의 가난하고도 고단한 살림살이를 그대로 문학화해 놓은 것만으로도 그의 작품은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손춘익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의 삶을 만들어 놓은 현실의 구조를 깊이있게 탐색한다. 손춘익 문학의 진면목은 바로 영세어민들의 삶을 형성한 현실의 구조를 종으로 횡으로 탐구, 형상화한데 있다 할 것이다.

특히 손춘익의 소설에서 시종일관 유지되는 비관의식은 현실에 대한 분노와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의 역설적 표현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대한 본질론적인 비관론에서 기인한 것 같다는 인상이 짙다. 자본의 유혹과 회유에 의해, 자신의 안위가 위협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진자들의 편에 서는 인물들의 면면은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손춘익은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에 잠긴 지역사회의 여러 삶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다루었다. ‘송포리 근황’이나 ‘이런 세상’이 성장일변도의 산업화가 만들어낸 부정적 변화를 짚어낸다면, ‘담’이나 ‘지붕’은 지역 주민들의 살림살이는 아랑곳하지 않는 어울뿐인 근대화의 허구성을 고발한다.

손춘익은 산업화 이전 영세어민들의 삶에 깊이 천착해 우리 문학사에서 흔하지 않은 어촌주민들들의 생활사들, 그들의 삶을 이루는 구조를 풍부하게 형상화 했다. 우리 문학사에서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영세어민들을 대상으로 한 문학은 특수성을 지니지만, 그것은 또한 우리 역사가 구축해 왔던 민중수난사의 한 부분을 이룬다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민이나 농민이나 행정기관의 감시와 거대 자본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이 살고 노동하는 곳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현실은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문학이 지역의 구체성을 가장 적확하고도 핍진하게 그려냄으로써 한국사회의 보편성을 이루는 다양한 세목들을 풍부하게 확충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때, 손춘익의 문학은 이러한 지역문학의 가치와 의의를 충분히 실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동화 역시 한국 아동문학사에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어촌소년의 꿈과 희망을 그린 장편동화 ‘푸른바다 저 멀리’, 성장동화 ‘땅에 그리는 무지개’를 비롯해 동화집 ‘이상한 손님들’, ‘산비둘기네 둥지’, ‘새를 날려보낸 아저씨’ ‘바위앞에선 사람들’ 등 그의 동화들은 동해안의 아름다운 풍경과 바다 이야기를 곁들여 가난하지만 희망을 안고 세상살이에 눈떠가는 소년들의 씩씩하고 힘찬 생활을 잔잔하게 담아냈다.

날이 갈수록 삶의 모든 기반과 혜택이 중앙으로 집중되고 있는 시대, 지역에서도 당연히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속에서 사람의 관계와 생업의 엄중함이 살아 숨쉬고 있지만 그 나날의 구체성들이 화려한 중앙집권의 물결에 밀려 소외되고 있는 지금, 지역에서 지역의 건강한 문화를 일구면서 자신의 문학세계를 지켜간 손춘익의 문학세계는 새삼 다시 조명될 가치가 있음에 분명하다.〈끝〉



작가 손춘익 연보

▲1940년 경북 경주시 도지동 932번지 출생

▲1952년 포항국민학교 졸업

▲1955년 동지중학교 졸업

▲1960년 포항동지상업고등학교 졸업

▲1962년 포항수산대학 졸업

▲1965년 7월 영덕군 축산면 축산항초등학교 발령

▲196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 ‘선생님을 찾아온 아이들’ 당선,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선생님을 기다리는 아이들’ 입선, 동지상업고등학교 교사(1966∼1987년)

▲1970년 두번째 동화집 ‘천사와 꼽추’발간

▲1971년 세번째 동화집 ‘동전 한 닢’ 발간

▲1972년 ‘이상한 아이들’로 한국일보사 제정 제5회 세종아동문학상 수상

▲1973년 네번째 동화집 ‘이상한 손님들’, 다섯번째 동화집 ‘아름다운 꿈길’ 발간

▲1974년 현대문학지에 단편소설 ‘죽음의 길’발표

▲1977년 창작과비평지에 단편소설 ‘방영감의 죄’발표

▲1979년 여섯번째 동화집 ‘산비둘기네 둥지’발간

▲1980년 삼국유사를 소재로 한 전래동화집 ‘이야기의 샘’발간

▲1981년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장편소년소설 ‘작은 어릿광대의 꿈’, 장편소년소설 ‘비탈을 구르는 작은 돌’발간

▲1982년 경북문화상 수상

▲1984년 유년동화집 ‘까치와 야옹이’‘멍멍아 멍멍아’발간, 금성출판사 소년소녀 한국문학전집으로 ‘꽃피는 얼굴’‘섬으로 간 아이들’발간

▲1985년 단편동화집 ‘담쟁이가 뻗어가는 쪽’ 장편동화집 ‘마루밑의 센둥이’전래동화집 ‘소금장수와 형제 도깨비’ ‘연오랑과 세오녀’‘자라가 준 구슬’발간

▲1986년 전래동화집 ‘심술장이 할멈과 세 아들’ ‘궁초댕기의 노래’및 창작동화집 ‘외나무 다리’발간

▲1990년 산문집 ‘꽁보리밥과 찬 우물물’발간. ‘아름다운 꿈길’을 개작한 ‘어린 떠돌이’발간

▲1993년 두번째 단편집 ‘이런 세상’, 동화선집 ‘달과 꼽추’발간

▲1994년 두번째 산문집 ‘코끼리의 코’, 전래동화 ‘꿀떡해버린 꿀떡’, ‘호랑이도 살고 빚쟁이도 살고’, 단편동화집 ‘도도새와 카바리아 나무’발간

▲1995년 단편 동화집 ‘둥지에서 냇물로’ 발간, 소년지에 장편 동화 ‘해맞이 마을의 기쁜날’ 연재

▲1998년 소년지 연재했던 ‘해맞이 마을의 기쁜날’을 ‘푸른 바다 저 멀리’란 제목으로 발간

▲2000년 3월 ‘땅에 그리는 무지개’(창작과비평사) 발간, 5월 제10회 방정환 아동문학상 받음

▲2000년 9월4일 운명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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