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군주 정조의 국가 경영과 고뇌의 삶
개혁군주 정조의 국가 경영과 고뇌의 삶
  • 윤희정기자
  • 등록일 2018.12.13 20:30
  • 게재일 2018.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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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평전’
박현모 지음·민음사 펴냄
역사·2만3천원

“정조 시대는 변화와 희망이 꿈틀대던 때였다. 서울 등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주변 지역에 채소, 과일 등 상업적 농업이 발달했고, 금난전권의 혁파로 신흥 상업 세력이 부상했다. 서얼과 아전 등은 신분적 제약을 타파하기 위해 통청 운동을 전개했으며, 15만여 명이 과거를 보겠다고 하루 동안 도성 안을 가득 메우던 ‘과거 열풍’의 시대였다. 그런가 하면 과거 시험과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전문 분야에 몰두하는 마니아 그룹이 등장했고, 소설을 목판으로 찍어 돌려야 할 만큼 출판문화가 번성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문예 부흥의 배경에는 국왕 정조의 개혁 정책이 있었다. 정조는 즉위 초에 “나라의 근본은 민생에 달려 있고, 먹을 것이 풍족해야 교육의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며 국정의 첫 번째 목표를 경제 개혁으로 정했다. …. 정조는 또한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라 온 신민(臣民)이 “다 같은 동포”이자 “한집안 식구”처럼 서로 화합하고 오복(五福)을 더불어 누리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정약용과 박제가 그리고 김홍도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가 당파와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하고, 규장각을 활성화해서 국가 경영에 필요한 지식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것은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조 평전’ 부분



세종과 정조, 정도전과 최명길 등 조선조 왕과 재상의 리더십을 연

구하는 박현모 여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가 정조의 리더십과 탕평정치의 본질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본 저서 ‘정조 평전’(민음사)을 펴냈다. 1999년 ‘정조의 정치사상’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 교수는 ‘정치가 정조’, ‘정조 사후 63년’ 등 정조 관련서와 논문을 다수 발간·발표했다.

‘말안장 위의 군주’라는 부제가 정조가 문무에 두루 능한 군주였다는 의미와 평생을 말안장 위에 앉은 듯 긴장 속에 살았다는 의미를 내포하듯, 저자는 군주이자 정치가로서의 정조를 살피는 한편, 아버지 사도세자는 물론이고 할아버지 영조조차 듬직한 의지처가 되어 주지 못했으며 가장 의지하는 두 신하(노론의 김종수와 남인의 채제공)마저 대립하고 갈등해 왕실과 조정 어느 한 곳도 온전히 믿고 의지할 데 없었던 정조의 고뇌를 들여다보고 있다.

저자는 정조의 지식 경영(싱크 탱크 규장각의 설치와 운용)과 인재 경영(당파와 신분을 초월해 인재를 등용), 경제 개혁(신해통공)과 군제 개혁에 이르기까지 개혁 군주 정조의 국가 경영과 리더십에서 현대적 가치를 찾는 동시에 개혁정치의 미완에 대한 아쉬움과 과오 또한 서술하고 있다.

15세기 세종 이래 오늘날에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군주 정조의 시대는 ‘조선의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흥성했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는 대립과 모순이 배태돼 있었다. 정조는 지배자가 최소화된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정조에게 좋은 정치란 중간의 장애물이 없이 왕과 백성이 직 접 소통되는 정치이므로 지배자는 국 왕 한 사람이면 족했다. 종래 사림 정치의 구도, 즉 군(君)-신(臣)-민(民)의 3단계 구도에서 신의 역할을 부정 내지 최소화하고 군-민의 2단계 구도를 천명한 것이다. 정조는 이를 위해 청요직을 혁파하고 재상권을 강화하는가 하면, 군사 조직을 개편하여 국왕의 재량권을 넓혔다. 또한 영조에 이어 고질적인 당쟁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언관의 권한을 대폭 축소시켰다. 저자는 이러한 일련의 개혁 조치들이 조선 왕조를 오랫동안 지탱시켜 온 메커니즘에 중대한 변화를 초래해 공론 정치를 변질시켰다고 말한다. 언관의 비판활동이 저조해진 가운데 국왕의 금령이 남발되었던 상황이며, 특히 그의 사후 전개되는 세도정치라는 정치적 암흑기도 그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책은 크게 아홉 부분으로 구성된다. 1장은 정조 재위 24년의 주요 사건과 그에 대한 정조의 대응을 개괄하고, 2장에서는 어린 시절 감수성이 풍부했던 정조의 인간적 면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살핀다. 3장은 즉위한 정조가 영조로부터 물려받은 무거운 유산, 즉 사도세자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알아보며 4장은 규장각을 활용하는 정조의 지식 경영 리더십 및 18세기 지식인들의 지식 정보 네트워크에 대해 살핀다. 5장은 정조가 발휘한 대통합의 리더십, 즉 탕평 정치의 본질에 대해 알아본다. 6장에서는 경제 분야의 신해통공 조치와 군사 분야의 장용영 창설 과정 등 정조가 계획하고 추진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에 대해 경장(更張)의 정치라는 관점에서고찰하며 7장에서는 복합적인 개혁 프로젝트인 수원 화성 건설을 디자인 경영 측면에서 고찰한다. 8장에서는 천주교의 확산과 조정의 대응 방식을 살피며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정조 시대의 대외 관계를 다룬다. 저자는 당시 북경과 나가사키에 서양의 상인과 선교사들이 줄지어 오가고, 인근 해역에는 수많은 이양선이 출몰했음에도 모두 사대교린의전통적 대외 정책으로 통제되리라 여겼던, 그 시대의 안이함을 세도정치기의 대외 정책과 연계해 고찰한다. 책 말미에는 재위 1년부터 24년까지, 정조의 행적과 어록이 정리돼 있다. /윤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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