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전국을 8도로 나눠 지방을 관리했다. 각도마다 관찰사를 파견해 지역을 관할케 했으며 관찰사는 그 지역에 대한 행정 및 사법권은 물론 군사 지휘권까지 갖도록 했다.

지금의 도청과 같은 감영(監營)은 시대에 따라 소재지가 왔다갔다했다. 경상도를 관할하던 경상감영(慶尙監營)은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경주에 있었다. 이후 면적이 넓다는 이유로 상주와 관할지역을 반으로 나눠 관리하기도 했고, 팔거현, 달성군, 안동부 등으로 감영이 옮겨진 적도 있다.

현재 대구시 중구 포정동에 있는 경상감영은 선조 34년(1601년)에 이전해 자리를 잡은 곳이다. 지금까지 약 400년의 역사를 가진 감영이다. 고종 33년(1896년) 갑오개혁으로 지방행정이 13도 체제로 개편된 뒤 이곳은 경상도의 실제적 중심지가 됐다. 1910년에는 경상북도청이란 이름으로 개칭되고 1966년까지 도정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경상감영에는 원래 여러 채의 건물이 지어졌으나 현재는 관찰사가 집무를 보았던 선화당(宣化堂)과 관사 징청각(澄淸閣)만이 남아있다. 경상감영의 가장 상징적 건물은 역시 관풍루(觀風樓)다. 선화당의 정남쪽에 세워진 경상감영의 정문인 포정문(布政門)의 2층에 만들어진 누각이다. “감사가 누상(樓上)에서 세속을 살핀다”(觀風世俗)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06년 대구읍성이 헐리고 도로가 나면서 관풍루는 달성공원으로 옮겨졌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해체·복원 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대구시가 경상감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달성공원에 있는 관풍루를 본래의 자리로 옮긴다고 한다. 관풍루가 있던 옛 병무청 부지를 사들여 옛 모습을 복원할 계획이다. 장차는 경상감영 관리가 일하던 사령청, 백화당 등도 복원을 준비 중이라고 하니 이 일대가 크게 변모될 전망이다. 대구의 역사성을 재조명하는 이번 작업에 시민의 관심이 적지 않다. 대구가 오늘날 전국 제3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역사적 근원을 들여다 본다는 점에서 복원의 의미도 충분하다. 대구근대골목과 인접한 지역에 복원될 대구 뿌리역사에 벌써부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정구(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