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70년 전까지만 해도 투표권조차 없었던 원주민 출신인 내가 뉴멕시코 주를 대표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아메리칸 원주민 최초로 여성 하원의원이 된 뎁 할랜드의 당선 소감이다. 지난 6일 치러진 미국의 중간선거는 여성정치의 진보를 보여줬다. 1920년에 여성도 참정권을 얻었지만 공적인 정치공간에서 소외됐던 무슬림, 이민자, 인디언,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출신 여성들이 대거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최초의 무슬림 여성의원이 된 팔레스타인계 이민자 라쉬다 틀라이브, 소말리아 이민자 일한 오마르, 첫 흑인 여성의원인 아야나 프레슬리, 텍사스 최초의 라틴계 의원 베로니카 에스코바르 등이 그들이다. 이제 엘리트 백인 여성만이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성들이 정치의 장에 들어섰다.

미국 선거 결과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여성들의 높은 정치참여다. 여성을 멸시한 트럼프에 대한 분노와 ‘#미투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진보적인 공약을 내세웠던 여성의원이 많이 당선됐다. 특히 민주당이 8년만에 하원을 석권하게 된 배경에는 여성 후보들의 활약과 유권자들의 적극적인 지지가 결정적이었다. 435명을 뽑는 하원 선거에 역대 최다인 237명의 여성이 출사표를 던졌고, 그 중 185명이 민주당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민주당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여성 후보들에게 정치자금을 후원했다. 지역사회와 밀착해 활동해 온 여성정치인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선거였다.

정치는 남녀의 고정된 성 역할이 견고하다. ‘여성들은 정치에 관심도 없고 적합하지 않다’는 논리로 남성중심의 정치구도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정치영역에 여성의 배제를 합리화했다. 그러나 ‘#미투운동’의 거대한 흐름은 정치 분야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폭력과 차별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이 남성이 독점하던 정치 지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비키 랜달은 ‘여성과 정치’에서 “여성은 선천적으로 비정치적이지 않다”며, 여성 접근이 용이해지는 메커니즘이 구축되면 정치적으로 연계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현실정치의 장에 여성이 대표권을 갖고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건만 허락되면 새로운 변화가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미국 11·6 선거결과 여성정치에서 진전은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한국정치는 남성권력의 몫으로 여겨져 여성의 정치참여를 확대하고 대표성을 제고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한국 여성들의 높은 교육성취와 대조적으로 여성들의 정치적 권한은 낮았다. 여성들은 정치자원인 조직과 자금에서 밀리고 정치 분야에서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됐다.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실질적으로 가능한 구조와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은 심상정 의원의 남녀동수제 발언에 주목한다. 국회와 내각에 여성들의 동등한 참여를 강조하는 ‘남녀동수’ 운동은 사회 전반으로 여성들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정치는 모든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한다. 그런 까닭에 공동체 내부의 다양한 주체들이 평등하게 정치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말뿐인 성 평등을 너머 정치적 의사결정에 여성들의 역할과 권한이 확대돼야 한다. 드루드 달레룹은 여성 눈으로 볼 때 지금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려면 ‘누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지, ‘어떤’ 사안이 정치적 안건이 되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평등을 위한 다양한 의제를 설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여성들이 ‘한 걸음 더’ 현실 정치의 장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11·6 미국 중간선거가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