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 곽지영 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지난 주말 북경에서 큰 행사가 있어 중국에 다녀왔다. 북경공항이 처음이라 그런지 모든 게 낯설었다. 비행기 좌석이 맨 뒤쪽이라 제일 늦게 내린 탓에 밖에서 대기 중인 일행들을 기다리게 할까 마음이 급했다. 인파 사이를 두리번거리며 입국 수속 방향 표시를 따라 잰걸음으로 나가려는데 공항 보안 요원이 제지했다. 손으로 가리킨 쪽을 보니 자동화 기계 앞에 와글와글 모인 사람들이 그제야 보였다. 중국에 입국하는 외국인들에게 지문을 채취하는 ‘스마트’ 기계였다.

내가 선 줄은 유독 오래 걸렸고, 이리 저리 줄을 바꿔 봐도 허사였다. 겨우 내 차례가 되었지만 지문인식 성능이 좋지 않아 실패를 반복했다. 헤매는 사람들을 돕던 안내요원이 기계 위에 올린 내 손을 아플 정도로 눌러봤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내 여권을 기계에서 꺼내 돌려주며 ‘No problem’이라며 그냥 가라고 했다. 결국 지문채취는 굳이 기계 앞에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방문객을 우왕좌왕하게 하는 불필요한 스마트 서비스라니…. 공항 입국장에서의 부정적 경험은 그 나라에서의 부정적 첫 인상이 되어 방문기간 내내 같이 간 일행들과의 대화 소재로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우리가 참석한 행사는 인류의 난개발이 자초할 처참한 미래에 관해 반성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도시, 대학, 기업이 뜻을 모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의미있는 자리였다. 귀국길 내 머릿속은 그곳에서 얻은 묵직한 생각거리들과 몇 년 어치는 족히 될 법한 숙제들로 복잡해졌다.

돌아온 인천공항에는 밤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많았다. 자동출입국심사 장치가 대거 도입된 덕에 입국 수속은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공항 서비스를 자랑하지…. 역시, 스마트 코리아!’ 내심 뿌듯한 느낌으로 공항을 나섰다.

한산한 입국장과 달리 공항버스 승강장은 의외로 붐볐다. 검색해 둔 공항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무거운 짐을 끌고 인파 사이를 이리 저리 피해가며 뛰었다. 십여개의 정류장을 지나 목적지행 버스를 출발 5분 전에 간신히 찾았다. 태워달라는 나의 요청에 표를 먼저 끊어오라는 기사님의 반응이 돌아왔다. 갑자기 난감해졌다. 돌아보니 밤늦은 시간이라 버스표 판매 부스는 모두 닫혀 있었고 자동발매기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줄 속에 서서 조금 전 내가 타려던 그 버스가 나를 남겨두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앞에 줄서 있던 사람들이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는 내 차례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표를 사기 위해서는 우선 내 목적지 주변의 정류장 이름을 가나다순 목록에서 직접 찾아야 했다. 기억나는 목적지 주변 정류장 이름을 여럿 시도해 봤지만, 모두 이미 막차가 끊겼거나 좌석이 매진된 상태였다. 너무 오래 헤매고 있으려니 내 뒤에서 대기하는 분들께 눈치가 보였다. 다음 사람에게 먼저 하시라고 잠시 양보했다. 그 사이에 스마트폰으로 내 목적지 주변 정류소 이름을 몇 개 더 확인한 후 다시 시도했다. 다행히 근처로 가는 막차 표 한 장을 겨우 얻었다. 정류장까지 마중 오기로 한 동생과 통화한 후 짐을 맡기고 차에 오르고 보니 추워진 밤공기에도 등에 땀이 흠뻑 나 있었다.

달리는 버스 창밖 가로등 불빛처럼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13년 동안 수도권에서 지낸 내가 헤맬 정도면 우리나라를 처음 찾은 외국인들은 어땠을지? 난감한 대중교통 체계 때문에 그들의 한국 방문 첫 인상이 망쳐진 것은 아닐지? 어쩌면 그것이 한국에서의 경험이라며 아직도 그들의 대화 속 도마 위에 오르고 있지는 않을지? ‘스마트 코리아’가 놓친 그 작은 디테일들, 그 때문에 누군가의 소중한 여행 경험이 망쳐졌을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 나만 불편한가?’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명대사가 절로 읊조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