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북한에 가서 송이선물 받더니 나라 땅을 내주고 온 건가”, “위장평화 공세에 속는 결과는 참담하다” 9월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연이어 23~27일 유엔 총회에 참석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달하고, 북미간의 교착상태를 풀고자 한미정상회담을 하고 돌아온 문재인 정부에게 자유한국당 의원이 한 말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혹평은 북한의 비핵화 해결과 남북한 관계 회복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략적인 이익을 앞세워 반대를 위한 반대, 대안이 없는 비판은, 어렵게 만든 현상황을 다시 흔들어 놓을 수 있다.

여러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보수 언론은 “장미빛 희망에 빠져 비핵화의 가시적인 성과도 얻기 전에 안보 태세의 긴장부터 풀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러나 9월 평양공동선언은 지난 4월 판문점선언과 비교해 볼 때 진일보하였다. ‘평화’를 논의했던 것에 한 걸음 나아가 실질적인 ‘협력’을 구체화하는 내용을 담았다.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주춤했던 북미관계도 다시 궤도에 오르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를 먼저 정상화시키고 견고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새로운 북미관계를 만들어보려는 정부의 노력과 의지의 결과다. 서로에 대한 신뢰만이 난국을 돌파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특히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시민들에게 한 연설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될 여지가 있다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5.1경기장에서 집단 체조극 ‘빛나는 조국’을 관람하고 7분간 연설을 했다. “우리는 5천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어 후손에게 물려주자고 확약했다”는 메시지를 전세계로 타전하였다. 한반도가 분단과 대결이 아니라 평화와 통일로 가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개천절 노래의 작사가 정인보 선생은 ‘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저서 ‘조선사연구’에서 “외적 요소가 거세질수록 격랑을 헤치고 나갈 열쇠는 ‘얼’에 있다”고 하였다. 순안공항에서부터 삼지연공항까지 여정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 ‘얼’이 깃든 행보였다고 해도 넘치는 찬사가 아니다.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 양만춘은 그렇게 말했다. 당태종 이세민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했을 때 안시성의 5천명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안시성 전투는 체급이 다른 불가능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지혜롭게 전략을 짰고, 군사들이 각자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으며, 성안 사람 모두가 “성의 마지막 벽돌이 되어서라도 지킬 것”이라는 혼연일체의 자세가 있었다. 심지어 양만춘과 불편한 관계였던 연개소문조차 우리는 모두 ‘고구려인’이라는 점에 지원군을 보냈기에 안시성 전투가 승리의 역사로 남은 것이다. 국가 위기상황에서는 큰 틀에서 협조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얼의 명멸에 따라 흥망과 성쇠가 생긴다”고 했던 것처럼,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은 거기에 있다.

남북한관계의 미래에 이제 뒷걸음질은 없어야 한다. 정권과 관계없이 명확한 목표와 장기적인 로드맵을 갖고 일관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계속해서 진전하도록 정부, 국회, 기업, 시민사회가 협의하고 협력하는 거버넌스가 구축되고 작동해야 한다.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지 역사의식을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길에 함께 나서야 한다. 어렵게 만든 평화와 번영의 기회를 ‘안보불안’을 거론하며 폄훼하고, 발목을 잡는 것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2인3각 달리기도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것이 넘어지지 않고 완주하는 비결이다. 서로의 생각과 힘을 모아야 한다. 안시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양만춘이 했던 말처럼, “모두 함께 한 것이다”라고 이 시대가 미래 역사에 기록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