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획취재
철강도시 포항 문화예술도시로 가는 길

▲ 최근 꿈틀로에서 열린 ‘꿈틀로 예술산책’행사를 찾은 어린 시민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글 싣는 순서

1. 밀라노 예술가들의 성지 ‘토르토나’의 탄생
2. 이탈리아 넘어 세계 최고를 꿈꾸다 ‘슈퍼 스튜디오 그룹’
3. ‘두마리 토끼 한 번에’ 순천 문화의 거리
4.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에서 가능성을 보다
5. 자생적 문화생태계 구축을 향해 가야할 길

□ 예술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 구축

공업과 예술. 두 단어에서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앞서 살펴본 국내외 사례에서 두 단어는 매우 핵심적인 요소로 평가받는다. 19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공업도시였던 밀라노는 현재 세계의 트렌드를 이끄는 문화예술도시로 완벽히 재탄생했다.

전남지역 최대도시 중 하나인 순천도 인근 광양, 여수와 함께 중공업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현재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문화예술지구인 문화의 거리가 정착과정에 있다.

▲ 꿈틀로 거리공연 투어프로그램인 ‘버스킹한 데이’가 열리고 있다.
▲ 꿈틀로 거리공연 투어프로그램인 ‘버스킹한 데이’가 열리고 있다.
철강도시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어울리는 포항도 이러한 변화의 바람에 동참하려 하고 있다. 단순히 공업도시 이미지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목적만은 아니다.

도심공동화로 활력을 잃은 원도심을 사람들이 다시 찾고싶은 장소로 만들고 더 나아가 이곳에서 새로운 먹거리산업을 창출해 도시발전과 인구증가라는 선순환적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생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탈리아 문화예술지구 ‘조나 토르토나’는 수십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자생적 생태계를 구축했다. 밀라노시의 지원에 의지하기 보다는 지구 내 입주한 예술가들이 직접 협회를 만들고 입주환경을 바꿨다. 유명예술가들이 앞장서서 실천적 행동을 보이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은 안심하고 이곳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저렴한 임대료와 장·단기로 설정 가능한 임대기간은 자본이 부족한 예술가들에게 커다란 메리트로 작용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를 필두로 한 크고 작은 축제도 이곳 예술가들에게 긍정적인 요소가 되고 있다.

▲ 꿈틀로 문화장터 ‘꿈짱’이 개최되고 있다.
▲ 꿈틀로 문화장터 ‘꿈짱’이 개최되고 있다.
전세계에서 밀라노를 찾은 수만명이 넘는 방문객들 앞에서 예술작품을 선보이며 자신을 어필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토르토나 내 최대 문화예술기업인 슈퍼 스튜디오 그룹(Super Studio Group) 지셀라 보리올리 대표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심각한 도심공동화 현상으로 폐허나 다름없었던 토르토나는 이제 이탈리아를 넘어 전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예술지구로 거듭났다”며 “열정을 지니고 ‘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으로 전진한다면 포항 꿈틀로도 성공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 포항만의 브랜드 ‘꿈틀로’

포항 꿈틀로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은 경관 위주의 물리적 재생보다 장소성이 가진 서사성을 살리고 주민 공동체가 자발적 중심이 된 사회적 재생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

포항문화재단은 예술가와 기존 주민이 삶터로서의 관계성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꿈틀로 입주 예술가들이 바닥화 그리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 꿈틀로 입주 예술가들이 바닥화 그리기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먼저 예술가와 주민이 1:1 자매결연을 맺어 서로에게 필요한 도움을 나누며 공동체적 삶을 영위해 나가는 프로그램인 ‘문화품앗이’가 운영되고 있다. 구제옷가게, 소규모 양품점, 분식집, 세탁소 등 꿈틀로 내 영세상가 대부분은 제대로 된 간판이나 사람의 발길을 끄는 세련된 실내 인테리어를 갖추지 못했다.

열악한 환경에 놓인 영세상인을 위해 꿈틀로에 입주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 이색적인 간판을 만들어 주거나 실내 인테리어를 단장해 주면서 영업에 활력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문화반상회’는 음식이라는 매개체가 가져다주는 소통과 연대의 효과에 착안해 주민과 입주예술가가 정기적으로 함께 밥을 먹으며 주민과 예술가의 문화간극을 좁히고 서로 소통하며 공동체 형성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이밖에 ‘철수와 목수’는 철공과 목공이라는 수단을 활용해 지역사회 자원활동가가 주민(상인)이 필요한 간판이나 생활용품을 만들어 주면서 꿈틀로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문화공작소 기능을 담당한다.

예술가들이 자생력을 키워 스스로 꿈틀로의 경쟁력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브랜드를 개발하고 입주작가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예술가를 대상으로 전문가의 1:1 컨설팅을 통한 1작가 1콘텐츠를 개발해 예술가의 역량 강화와 참여도를 높이고 적극적인 활동 유도를 위한 평가 매뉴얼을 새롭게 구축할 예정이다. 또 꿈틀로만의 브랜드와 문화상품 개발을 위해 향후 맞춤형 교육과 추가 컨설팅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꿈틀로 축제 등 꿈틀로 자체 문화행사는 물론, 지역축제 등에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의 문화특화 브랜드로 성장시켜 나갈 계획이다.

숭숭 뚫린 빈 점포에 예술·창의성으로 공간재생
예술가 역량강화 프로그램 통해 꿈틀로 자생력 키워
예술가-주민 ‘문화 품앗이’ 통해 공동체 문화 창조

이강덕 포항시장 인터뷰

포항문화예술창작지구 ‘꿈틀로’사업이 본격화된지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짧은 시간이지만 꿈틀로 거리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꿈틀로 사업을 단순히 문화부흥사업을 넘어 도시재생사업으로 이끌고 있는 이강덕 포항문화재단 이사장과 사업에 대해 대화를 나눠봤다.

- 꿈틀로 사업이 추진된 포항 상원동 일대는 몰락한 구도심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어떤 가능성을 봤는가.

△꿈틀로는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3∼4집 건너 빈점포가 방치될 만큼 도심공동화가 심각한 곳이었다.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원도심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정책적으로 시작한 사업이다.

골목 일대 숭숭 구멍 뚫린 것처럼 비어있는 빈 점포에 예술가들을 불러들인다면 그들이 가진 창의성으로 공간을 조금씩 변화시킬 수 있을 거란 계획이었다. 이미 도심공동화에 대한 대안으로 물리적인 투자방식보다는 예술가가 중심이 된 국내외 도시재생의 성과사례를 통해 봐왔기 때문에 예술과 사람중심의 공간재생이 보다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것이란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

오히려 그 절박함이 희망의 가능성이 아니었나 싶다.

- 꿈틀로 사업이 첫발을 내딛은 2016년부터 현재까지 어떠한 성과가 있었는지.

△꿈틀로는 2016년 하반기에 21개팀의 입주작가가 공모를 통해 선정됐고 이들이 둥지를 틀면서 꿈틀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7년 5월 공식 오픈을 했으니 본격적으로 운영된지는 이제 1년을 조금 넘겼다. 그동안 예산 등 여러 가지 조건적 한계로 인해 입주후 1년간은 작가들이 정착하는데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았고 지난해 말부터 꿈틀로 축제, 꿈틀로 미식여행 등 입주작가들이 자신의 창작활동을 기반으로 한 시민 커뮤니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올해는 추가로 6개팀의 신규 입주작가들이 선정돼 회화, 공예, 스틸아트, 연극, 사진, 음악, 일러스트 등 총 27개팀의 다양한 장르의 창작활동과 꿈틀로를 알리는 대외활동을 해오면서 조금씩 거리에 활기를 보태고 있다. 덕분에 꿈틀로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는데 일조를 했고 타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오는 사례도 늘고 있다.

- 국내외 문화예술지구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자생적인 생태계 마련이 중요한 원동력이 됐다. 꿈틀로가 자생적 생태계를 갖추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예술가들이 중심이었고 당연히 그들을 위한 지원과 자생력 강화가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사업을 추진하면서 깨달은 것은 꿈틀로의 자생력을 위해서는 작가들의 노력을 강요한다거나 ‘월 임대비를 지원했으니 나머지는 작가들이 알아서 하겠지’하는 작가 의존적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화재단에서는 꿈틀로 입주작가들이 스스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도록 예술가 역량강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창작이 브랜드로 다듬어 지는 과정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완성도 높은 아트상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결과물들이 꿈틀로의 자산이 되고 지역사회에 환류되는 선순환을 통해 꿈틀로의 자생적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 믿고 있다. 또 꿈틀로는 입주 예술가들의 공간이기에 앞서 오랜시간 동안 거주한 주민들의 공간이다. 서로 생각과 관점이 상반되는 두 집단이 하나가 되어서 꿈틀로의 새로운 주민공동체로 거듭날 때 꿈틀로가 온전한 기반이 형성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 앞으로 꿈틀로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는가.

△앞서 언급했듯 꿈틀로는 우선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환경개선도 필요하지만, 입주작가와 주민이 단순히 공간의 점유자가 아닌 공간을 살려 나가는 주체자로 만드는 의식변화가 먼저 시작돼야 한다.

현재 추진중인 문화적 도시재생사업의 주된 의제는 바로 그러한 주민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내부 커뮤니티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입주작가가 주민에 먼저 다가가서 간판개선과 같은 실내환경 조성을 해주면 주민은 작가들의 활동 시 자원봉사라든가 음식제공을 통한 ‘문화품앗이’를 해주는 방식으로 공동체 문화를 쌓아 가는 것이다.

‘내가 사는 공간은 내가 지킨다’는 공동체 의식은 꿈틀로의 성공적인 정착에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외에도 꿈틀로가 가진 서사성, 즉 원도심이 가진 의미와 요소를 되살리는 내용을 더해 꿈틀로를 문화적 깊이가 느껴지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해 나갈 계획이다.

<끝>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작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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