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 곽지영포스텍 산학협력교수·산업경영공학과

지난 한 주간 굵직한 행사와 마감 걸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힘에 부쳤었나보다. 행사를 무사히 마친 날 저녁부터 으슬으슬 오한과 몸살이 시작되더니 결국 목 양쪽 임파선이 목도리도마뱀 마냥 부어올랐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는 동네 병원을 찾아 갔다.

진단은 간단했다. 과로로 면역력이 저하되어 코, 목, 귀, 위, 장까지 곳곳에 염증이 생긴 거였다. 임파선이 부은 것은 몸에 탈이 나거나 감염이 생겼다는 것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라고 했다. 나는 스마트시티 강의를 할 때마다 도시의 기능을 인체 원리에 비유해 설명하곤 한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에 함께 일하는 친구와 차 마시며 가볍게 시작한 얘기였다. 하나씩 차례로 연결시켜나가다 보니 그 기능과 역할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몸의 근간을 이루는 ‘근·골격계’는 ‘도시 인프라’ 기억과 정보처리, 몸의 기능을 종합적으로 통제하는 ‘두뇌와 신경계’는 ‘도시 데이터 허브와 행정’ 여러 기관을 운용할 동력원을 만들어 내는 ‘소화계’는 ‘경제와 산업’ 산소와 영양분을 몸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순환계’는 도시의 ‘교통’ 기능에 각각 비유된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내게 그 중요성을 일깨워준 ‘면역계(Immune System)’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하고, 몸에 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신호를 보내 알린다는 면에서, 도시의 ‘재난안전(Safety and Protection System)’ 기능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의 여러 계통(System)을 이루는 신체기관들이 각자 따로 놀지 않고 뇌와 신경계의 중재 하에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도시 시스템에 있어서도 개별 기능의 동작 못지않게 그 기능들이 서로 얼마나 잘 맞물려 유기적으로 동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스마트시티에 대한 내 연구 열의를 키우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어쩌면 뉴스 속 사건사고 소식들이다. 작년 포항을 비롯한 전국을 가슴 철렁하게 한 지진을 비롯해, 화재 태풍 폭우 같은 천재지변, 무고한 사람들이 다쳐도 손쓸 길 없는 묻지마 범죄나 인적오류가 유발하는 안타까운 대형 안전사고 까지. ‘이런 시스템만 있었다면’, ‘이런 기술이 조금만 더 일찍 적용됐더라면’ 하는 안타까움과 분통, 뒤늦은 후회들 속에서, 자려고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머리맡의 리서치노트를 꺼내 긁적거린다. 몰입한 나머지,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겪을 고통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혼자 마음이 급해지고 분주해져 밤을 또 지새우곤 한다.

비유하자면 이런 사건사고는 도시 곳곳에 생기는 염증과도 같은 것이다. 일단 발병한 후에는 치료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무엇보다 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정말 생고생이 아닐 수 없다. 질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중요하므로, 평소 좋은 식습관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체질을 개선하고 기초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도시에다 대고 읊어 본다. 스마트 기술이 도시에 해주는 진정한 역할이 바로 그 ‘체질개선’ 효과일 것이다.

이번 일로 내 생각에 은근한 편향이 좀 생긴 듯하다. 우리 몸 어느 기관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겠지만, 뭔가 탈이 났다는 신호를 가장 먼저 알리고 외부의 위험 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도시의 면역계, 재난안전 시스템이야 말로, 첨단 과학기술이 가장 먼저 손써야 할 대상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주사와 소염제, 항생제를 처방해 주시면서 친절하지만 단호한 표정으로 의사선생님이 한마디 하셨다. “주사와 약은 임시방편일 뿐이에요. 무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늘은 무조건 쉬세요. 일은 건강 다음입니다.” 스마트시티로 도시의 체질을 바꾸자는 얘기를 떳떳하게 하려면 일단 내 기초 체력부터 좀 키워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