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聖과 惡 경계를 뛰어넘는 신라여인 미실, 21세기로 데려오다신라의 여인들 ⑦
홍성식기자  |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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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8.08.09   게재일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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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천300년 전 이미 권력을 쟁취한 여성이었으나 한계 또한 분명했던 미실. 21세기를 사는 여성들에게 미실은 어떤 의미와 모습으로 다가올까? /삽화 이찬욱
 

아득한 옛날 서라벌. 선덕·진덕·진성 등 3명의 여왕과 비교해도 좋을 만큼 큰 권력을 누렸고, 수로부인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웠던 신라 여성’으로 손꼽히는 사람. 외형적 미와 함께 내면의 지혜까지 갖췄기에 생의 어느 한 순간도 사랑받지 않았던 적이 없는 여자. 바로 ‘미실’이다.

논란과 주목, 부러움과 질시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 여성을 ‘화랑세기’라는 책에서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 이는 소설가 김별아(49).

제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장편소설 ‘미실’의 작가인 그녀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폭염이 지속되던 7월 말 서울에서 만났다.

오후 4시쯤 시작된 인터뷰는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김별아는 ‘6세기 신라 사회’와 ‘일찌감치 능동적 삶을 실천한 여성 미실’ 여기에 더해 ‘역사소설 쓰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21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줬다.


가장 신라적이자 가장 현대적 여성
여성작가의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
세상 앞에 당당했던 미실의 욕망
오늘날 여성에게 시사하는 바 있어



-당신은 6세기 말과 7세기 초를 살았던 신라 여인 ‘미실’을 21세기 사람들의 관심 속으로 끌어들인 작가다. 어떤 매력이 미실을 소설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는가.

△ 미실은 역사에 없었고 기존에 알려진 여성 전부를 뛰어넘는 캐릭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뿌리박힌 여성에 대한 이분법 즉, 성녀/악녀, 어머니/요부라는 규정을 훌쩍 넘어서는 존재다. 선악으로 분별할 수 없고, 아름다움을 무기로 거침없이 사랑을 쟁취했으며 스스로 권력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처럼 가장 신라적인 여성이자 시대를 건너뛴 현대적 여성에게 관심이 갔던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장편소설 ‘미실’은 1억 원의 상금을 내걸었던 세계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작이다. 역사, 좀 더 미시적으로 말하자면 ‘역사 속 여인’을 소재로 문학상 응모작을 썼던 이유가 있는지.

△‘미실’은 내가 역사를 소재로 쓴 첫 번째 소설이다. 등단 후 10년간 개인적 체험을 바탕으로 작업하다가, 자기 고백을 넘어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소재를 다각화할 필요성을 느꼈다. 역사는 이야기의 보물창고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역사는 남성과 승자의 기록이다. 여성과 약자의 이야기가 합해져야 온전한 역사가 되지 않을까? 기존의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들 또한 주로 남성 작가에 의해 쓰였기에 나 자신이 여성 작가로서 새로운 시각으로 할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실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화랑세기’ 필사본은 아직도 ‘진위 논란’ 속에 있다. 그 논쟁과 별개로 이 책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갇힌 고대사의 지평을 넓혀줬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유교가 장악하기 전 고대 신라의 사상과 문화와 풍속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유불선(儒佛仙)을 뛰어넘은 ‘풍류’라는 현묘한 도의 실체가 드러나 보이는 것도 매력이다. 학계의 고고학적 연구가 보강돼 진위 논쟁이 학문적 지평을 넓히고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몇몇 논문을 보면 미실이 살았던 신라 사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권’이 신장되고, ‘성적’으로도 개방적이었던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지.

△중요한 건 고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현대의 기준, 윤리와 제도의 잣대를 들이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여권’이나 ‘성적 개방’이 지금 쓰는 말뜻 그대로였을 리 없다. 생산성이 낮았던 고대엔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생명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남녀의 분별이나 도덕적 질서만을 내세워서는 후손인 우리들이 지금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 아닌가. 신라는 그런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에너지를 국가적 힘으로 활용했다고 본다.

-단편적인 자료와 고문헌의 몇 줄 문장을 토대로 장편소설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실’을 집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이었기에 사료를 찾아 공부하고 정리하는 게 가장 복잡하고 어려웠다. 특히 고대사는 자료 자체가 많지 않아 신라뿐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 중국과 일본의 연구서까지 뒤져봐야 했다. 최대한 정사(正史)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내 나름의 창작원칙 때문에 소설에 쓰지 못할지라도 확인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썼기에 더 애착이 간다.

-위의 질문과는 반대로 예술가에게 창작 과정은 희열과 환희의 체험이기도 할 것이다. 즐겁거나 행복했던 기억도 분명 있었을 텐데.

△자료가 적다는 게 어려운 문제이긴 했지만 소설적 상상력을 펼치는 데는 유리한 조건이었다(웃음). ‘화랑세기’는 학교에서 배운 적 없는, 우리가 알던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신세계였기에 문학적으로 보수적인 내가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미실’을 쓴 그해 벽걸이 달력에 ‘화랑세기’를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비교해 나만이 알아볼 수 있는 연대표를 만들었는데, 그 빽빽하고 나달나달한 달력이 창작의 기념품이 됐다.

  ▲ 소설가 김별아가 서울 망원동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구창웅  
▲ 소설가 김별아가 서울 망원동 한 카페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구창웅

-당신이 만난 ‘미실’은 어떤 여자, 아니 어떤 인간이었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억압과 약속까지도 뛰어넘으려 했던 여자다. 현대를 사는 비겁하고 둔중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미실은 왕과 귀족, 화랑 등 많은 남성들과 육체적으로 교접하고 정신적으로 교류했다. 그중 미실이 가장 신뢰했고 사랑했던 사내는 누구였을까.

△처음으로 정을 준 화랑 사다함과 마지막을 함께한 설원랑이 아니었을까? 사다함은 순수의 표지이면서 미실의 운명을 바꾼 남자다. 힘을 갖지 못하면 힘에 지배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설원랑은 지고지순한 동시에 신뢰와 의리의 사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 색이 바래듯 사랑도 흐려지기 마련이라는 이치를 거스른 남자이기에 매력적이다. 병든 미실을 대신해 죽기를 하늘에 빌고 먼저 떠난 것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10년 넘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관련 공부를 하며 작품을 쓰고 있다. 미실 외에 당신이 주목하는 ‘신라의 또 다른 여인’이 있는지.

△신라의 여왕들은 특이한 고대사의 인물이다. 고구려와 백제가 여왕의 존재를 공격의 근거로 삼았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세 나라 중 신라만이 여왕을 옹립하고 통치를 수용했다면 그만큼의 진보성과 순혈주의가 강조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드라마 ‘선덕여왕’은 활동 시기가 거의 겹치지 않는 미실과 선덕여왕을 동시대에 놓고 꾸며낸 일종의 판타지에 불과하다. 그렇게 소비되기엔 선덕여왕의 존재가 너무 크다.

-신라부터 조선, 근대까지를 오가며 ‘역사’를 소재로 작품을 쓰고 있다. 현재 집필하고 있는 소설이 있는가.

△얼마 전 출간한 ‘구월의 살인’ 이후 현재는 쉬고 있다. 소설이라는 서사 장르가 현대에 적합한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거창한가(웃음)? 목소리를 대신하고픈 중세와 근대의 인물이 몇몇은 남아있다. 하지만 누가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들어줄지는 의문이다.

-1천 년 전 신라사회건 오늘날 한국사회건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가 분명 있을 것 같다. 뭐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 문제의 해결 방안은 뭔가.

△요약하면 투쟁과 조화가 아닐까. 남성들의 오랜 영토 속에서 식민지로 착취당하지 않고 투쟁하며 여성의 영지를 개척해야 한다는 건 인류사적 과제다. 동시에 인류를 보존하는 파트너로서 이성(異性)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협력할 것인가도 고민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과 AI의 시대에 여성과 남성이 만든 전선(戰線)이 고착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이런 낙관이 온당한지는 잘 모르겠다.

-이른바 ‘페미니즘 논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어떤 것인지.

△현재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은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생각과 감성을 갖고 있다. 그들의 운동은 남성중심사회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이다. 변화를 위한 모든 운동에는 급진성의 단계가 있고, 의미와 함께 폐해도 있기 마련이다. 때로 싸움이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는 혐오에 혐오로 맞서는 젊은 여성과 남성 중 어느 쪽도 강자가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

-기자는 ‘미실’을 시대를 뛰어넘는 ‘자립과 자존의 여성성’이란 키워드로 읽었다. 동의하는가. 또 신라 사회에서 미실이 가졌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

△미실이 자립하고 자존할 수 있었던 힘이 동시에 그녀의 한계였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권력이 된 근거가 그다지 근대적이지 않은 ‘아름다움’ 때문이 아닌가. 또한 미실이 행사하는 정치권력이 새로운 ‘여성 권력’이 아니라 기존의 ‘남성 권력’과 크게 변별되지 않는 형태를 보인다는 것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욕망에 당당하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며, 원하는 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했던 미실의 삶은 오늘날 여성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김별아는…

1969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국문과에서 공부했고, 1993년 문예계간지 ‘실천문학’에 ‘닫힌 문 밖의 바람소리’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20대엔 ‘자아 발견’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작품 활동을 했다. 30대 중반 이후로는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 관심은 ‘역사소설 집필’로 이어졌다. 장편 ‘미실’과 함께 ‘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백범’ ‘채홍’ 등이 그 시기에 쓰인 소설들이다.

“멈추지 않고 꾸준히 쓰는 성실한 작가”로 문단 안팎에서 인정받는 그녀는 ‘톨스토이처럼 죽고 싶다’ ‘죽도록 사랑해도 괜찮아’ ‘이 또한 지나가리라’ 등의 산문집으로도 주목받았다.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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