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도심서 시속 200㎞로 도망가는 음주 의심차량 경찰은 추격 포기했지만 30대시민 끝까지 쫓아가“인명피해 우려 컸는데…” 경찰 ‘미숙한 대응’ 도마위

▲ 지난달 29일 새벽에 포항시가지 도로에서 광란의 질주를 벌이고 있는 차량을 시민 문모씨의 차량이 뒤쫓고 있다. 사진은 추격 차량의 조수석에 탄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동영상 캡쳐. / 시민 문모씨 제공

술에 취한 20대 남성이 도심에서 시속 200㎞에 가까운 속도로 광란의 질주를 벌이다 용감한 시민에게 붙잡혔다.

최초 음주운전을 의심하고 끝까지 ‘한밤의 추격전’을 펼치며 도주차량을 뒤쫓은 시민과 달리, 경찰은 ‘2차 사고 방지’를 이유로 추격을 포기해 본분을 망각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1일 포항남부경찰서 등에 따르면 시민 문모(30)씨는 지난달 29일 새벽 4시 30분께 포항시 남구 해도동 형산교차로에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씨의 차량 앞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승용차가 녹색신호가 들어왔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씨는 수차례 경적을 울리며 이동할 것을 촉구했지만 이 차량은 수분가량 지속된 신호가 끝날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차량에서 내린 문씨는 앞차량 운전석을 확인했고, 운전자는 운전대에 고개를 숙인 채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문씨는 즉시 경찰에 신고를 한 뒤 현장에 대기하며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신고를 받고 순찰차 1대가 현장에 출동, 경찰관이 운전자를 확인하려 하자 갑자기 의식을 차린 운전자는 운전대를 잡은 뒤 급히 형산큰다리 방향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한밤의 추격전이 시작됐다. 음주 의심차량이 도주하고 순찰차와 신고자인 문씨의 차량이 추격하는 형국이었고, 추격전은 8㎞ 가량 이어졌다. 도주차량의 속도는 점점 높아졌고 동해면사무소 앞에 다다르자 시속 200km에 가까운 속도를 냈다. 경찰차는 이미 시야에서 뒤쳐져 사라진지 오래였지만 문씨는 끝까지 도주차량을 추격한 끝에 막다른 골목길에서 운전자를 붙잡았다.

도주차량 운전자는 끝까지 쫓아온 문씨에게 다짜고짜 “경찰이냐”며 따져물으며 위해를 가할 듯 했지만 약 2분 뒤 순찰차가 등장하자 별다른 저항없이 경찰서로 향했다.

문씨는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량이 과속으로 도주하기 시작하자 제일 먼저 차량에 사람이 치일까 걱정됐다”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몸이 먼저 반응해 추격에 나섰다”고 말했다. 경찰 음주측정결과 운전자 A씨(23)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정지 수준인 0.081%였다. 경찰은 A씨를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하지만 이번 사고와 관련, 경찰의 미온적인 대응은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추격전에서 도주 운전자 A씨는 면허정지 수준의 음주상태였고 도주시 차량 라이트를 끄고 과속으로 운행했으며 각종 신호 위반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추가 인명피해 가능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포항남부경찰서 경찰관들은 도주 차량을 가로막는 등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지 않았다. 시민이 목숨을 걸고 추격하는 광경을 그저 지켜보듯 뒤쳐져 따라가기만 했다. 결국 추격전에 나선 시민이 도주차량를 멈춰 세워 놓은 뒤 2분 가량 지나서야 도착했다.

지난 5월 각 경찰서에 배포된 ‘도주차량 추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도주차량을 정지시키기 위한 방법으로 △차량, 바리케이트 등을 활용한 도로봉쇄 △진행 중인 도주차량을 순찰차로 포위하거나 추월해 차량 전방을 막기 △순찰차를 이용해 도주차량 측면 또는 후면 충돌 등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중 어떠한 조치도 경찰은 시행하지 않았다. 다만 도주차량 추격 개시는 현장 경찰관의 판단에 의해 이뤄지지만 추격 즉시 상황실에 무전보고한 후 추격 계속·중지 여부는 상황실의 판단에 따른다고 명시돼 있어 신속한 상황판단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경찰 관계자는 “흉악범 등일 경우에만 차량 블로킹을 시도할 수 있다”며 “과거에 2차 추격 중 서로가 다친 경우가 많았기에 조심스러웠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영우기자 hyw@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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