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 박사

“이제 한국 페미니스트 정치의 시작점은 제로가 아니라 1.7%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보다 높은 지지를 받아 4위를 차지한 90년생 신지예 후보의 말이다. 더구나 한국YMCA와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청소년 모의투표 운동본부’가 실시한 선거에서는 36.6%의 지지를 받아 박원순 후보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결과는 비단 서울만의 일이 아니다. 제주지사 선거에서 85년생 고은영 녹색당 후보 역시 득표율 3.5%로,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앞서는 3위를 기록하였다. 원외 정당인 녹색당의 젊은 여성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표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후보의 78%를 여성으로 공천하였다. 미세먼지, 탈원전 등 환경 이슈만이 아니라 성폭력·성차별 문제를 공약으로 내세워, “화장실과 밤길을 걷는 여성의 공포를 정치가 풀어주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6·13 지방선거 기간에 북미정상회담 못지않게 젊은 여성들에게 뜨거운 관심은 성차별 이슈였다. 홍익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 대한 수사가 기폭제가 되어,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문제들을 공론화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일상은 너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거대한 물결을 형성하였다. 신지예 후보는 이에 무관심했던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불법촬영 피해자 지원조례’를 제정하겠다고 하였다. 사적인 일상이 정치의 현장임을 일깨워주었다.

궁극적으로 ‘페미니스트 시장’ 선언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7년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성차별 문제에 무관심했던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시장 8번 후보의 득표율의 의미는, 실제 당선이 되지는 않더라도 여성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투표하겠다는 유권자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단지 여성의 표를 의식하여 상투적으로 여성관련 공약을 포함하거나, 여성정치인을 장식적인 역할로 한정짓고 소비했던 기성 정치권을 심판한 것이다. 밀레트는 “가부장제의 원리는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나이든 남성이 젊은이들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결국 ‘페미니스트 시장’ 선언은 젊은 여성만이 아니라 소외되고 배제당하는 청년,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함을 역설한 것이다.

2018년은 페미니즘 정치의 원년이 될 것이다. 지난 촛불혁명 이후 여성들은 광장에서 함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웠다. 여성이 우리 사회를 보다 민주화하기 위해 투쟁해 왔던 활동들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거의 알려진 바 없다. 이제 여성들은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자각하기 시작하였다. 계속해서 여성의 경험을 담은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공론의 장에서도 가부장제와 성폭력, 성차별의 문화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제 여성들은 직접 자신들의 문제를 말하며 연대하고 있다. 이 세상 절반의 여성들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세상이 참다운 민주주의라고.

6·13 지방선거에 입후보한 9천363명의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 신지예 녹색당 후보는 낙선했지만 승리한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가난해서 아프지 않고, 폭력 때문에 죽지 않고, 차별 때문에 병들지 않는 서울이 제 출마 목표였다.” 페미니스트 시장을 선언하며 던진 출사표의 의미는 단지 여성에 대한 차별 철폐만이 아니라 불평등한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평등의 의미를 확장하려는 시도라 할 것이다. 함께 하는 세상에서 더 이상 이들은 가장자리에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