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 살며생각하며 (17)

부음은 연합뉴스 있는 권영석 형에게서 왔다. 한동안 그분이 어떠신지 애써 무관심하려 했었다.

토요일에는 북한산을 아침 아홉시 반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탔다. 산에서 내려와 카톡을 볼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대학로 토즈에서 고전 인문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최동호 선생과 통화해 보니 강의 끝나고 속초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김추인, 김종훈, 한세정, 이은봉 같은 분들과 이광수와 그의 홍지동 산장 시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광수는 불교 행자처럼 살아가겠다고도 했지만 그런 삶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책들을 정리했다. 쌓아놓은 책들은 이제 새로 꽂지 않으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지경, 일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과 약속이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화요일에 신입생 세미나 수업이 끝나자 다섯 시 반, 루마니아에서 온 유학생 안드레아와, 또 다른 출판사 대표와의 약속은 미리 취소해 두었다. 일곱 시 반 넘어 서울 북쪽에서 세 사람이 만나 마침내 속초 신흥사로 넘어갈 때 비가 내렸다. 홍천 지나 태백산맥 너머 밤하늘은 구름 사이로 달이 비쳤다.

이미 시간은 밤 열 시 반이 넘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산길을 타고 신흥사 경내로 들어가자 사방은 이미 고요하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어두운 사람 그림자를 우연히 만나 빈소를 물으니 이렇게 저렇게 가라 한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 개울 건너 올라 들어간 빈소에는 조문객이 끊겼다. 홍사성 선생도 방금 잠깐 어딘가 가셨다고, 혼자 남아있던 김명섭 선생이 안내를 해준다. 스님 세 분이 서 계시고 불경 외는 스님 한 분 앉아 계신 빈소에 불이 환하게 켜졌는데 영정 속 무산은 활짝 웃고 계시다. 정성 들여 삼배를 드리고도 마음은 못내 허전해서 발길 차마 돌릴 수 없다.

미련 떨치지 못한 우리를 안타깝게 여긴 그 분이 무산 스님 들어 계신 안쪽으로 인도를 해주신다. 비구니 스님 한 분만 좌정하신 그곳 병풍 뒤에 그 분은 고요히 누워 계시다. 생전에 스님은 활기차고도 개구진 때가 많으셨는데, 이번만은 만나고도 웃지 않으시겠다는 듯 입술 꼬옥 다물고 두 눈도 지그시 감고 계시다. 그때다. 유리관 안에서 스님이 문득 눈을 깜빡이신다. 분명 눈을 깜빡 뜨셨다 감으셨다. 그럴 리가. 하지만 정말 그러셨다고 느꼈다. 우리 가운데 어른께서 유리에 이슬이 맺혀 있어 그렇게 보인 모양이라고, 당신도 처음에 그렇게 느꼈다고 하셨다. 그래도 스님은 분명 내게 눈을 깜빡여 보이신 것만 같다. 옛날에, 거금 18,9년 전에 충북대학교에서 강의 마치고 네 시에 떠나 밤 열시 반 넘어 백담사 한 곳에 계신 어떤 노승을 뵈러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그 분이 바로 이 무산이셨다. 이번에 주민 분들이 걸어 놓은 듯 플래카드에 “설악산 호랑이 무산 스님”이라 했다. 사실 생기시기를 울툭불툭하셨다. 처음 만나 뵈올 때 한 밤이더니 떠나 보내드리는데도 한밤중이다. 마음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듣자니, 이번에, 기어이 가시겠다고 곡기를 여러 날 끊으셨다고 한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무산 스님 열반송은 스스로의 삶을 완전히 태워 얻으신 것이다. 그 사이의 깊지 못한 인연으로 나는 그것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밤은 유난히 달빛이 밝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