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순희 수필가

혼자 하는 것보다 친구와 같이 하면 더 좋은 것들이 있다. 깻잎무침 접시에서 젓가락으로 한 장 떼어낼 때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눌러주기,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보고 나서 꽁냥꽁냥한 연애에 대해 폭풍 수다 떨기, 두껍고 버거운 책 못다 읽고서 ‘너도 그랬어?’ 하며 공감해주기, 택배 박스에 섞여온 뽁뽁이 터트리며 남편 흉보기, 그 중에 최고는 여행을 함께 하는 것이다.

햇살이 좋은 날, 약속 없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도소리 들으러 가자고 말을 건네니 두 말없이 따라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고 운전대 잡은 사람 마음대로 하라며 웃었다. 장기 읍내를 지나 바닷길로 접어들다가 양포항을 만났다. 함께 간 친구들이 이 어여쁘고 조그만 항을 못 보았다기에 미리 둘러본 내가 소개해주고 싶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먼저 화장실에 들렀다. 여자 화장실에 조그만 소변기가 나란히 있다. 남자 아이 손잡고 온 엄마를 배려하는 거 같아 슬며시 웃음이 났다.

가족단위의 방문객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원은 인라인이나 킥보드도 탈 수 있고, 동네와 인접해 있어 여러 가지 샤워 시설이나 식수대가 잘 갖추어져 있었다. 조금만 나가면 바다를 만질 수도 있고 모래를 밟으며 놀이를 즐길 수 있으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파도소리에 섞여 왔다. 항구의 북쪽에는 길이 700m의 긴 방파제가 있다. 방파제가 시작되는 곳에 작은 숲도 있어서 아이들과 놀기에 좋고 텐트를 칠 수도 있어서 캠핑족들이 찾기도 한다.

요트 계류장도 있는지 폼 나는 배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었다. 갈매기 모양의 가로등이 길게 늘어서 있는 산책길 끝에 공연장이 있다. 오늘은 파도소리만 예약되어 있을 뿐 다른 공연이 없어서인지 낚시꾼 몇 명과 갈매기들이 사이좋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가로등 기둥마다 스티커들이 붙어 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치킨과 중국집 전화번호였다. 바닷가에서 먹는 짜장면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던 우리 일행은 두 그릇만 시켜 보자고 입을 모았다. 가방엔 준비해 간 김밥과 커피가 있었으니까. 배달의 기수답게 통화한 지 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철가방 사나이가 나타났다. 낚시꾼에게 먼저 다가가 물어보다가는 “짜장면 시키신 분?” 외쳤다. 설마 여자 셋이 시켰을까 싶은지 우리가 손짓을 하자 그제서야 달려왔다.

나는 짜장면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입이 짧기도 하고 기름끼 있는 음식이 비위에 맞지 않기도 해서이다. 그래서 늘 무엇을 시킬까 망설이는 식구들 틈에서 자신 있게 짬뽕을 시키고는 아들의 짜장면 접시에서 한 젓가락 얻어먹는 것으로도 만족했다. 오늘도 맛만 봐야지 싶었다.

세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더니 면 두 접시에 젓가락도 두 개만 딸려왔다. 하는 수 없이 한 개의 젓가락을 둘로 나눴다. 키가 작아진 나무젓가락 때문인지 짜장이 손에 묻고 입가에도 흔적을 남겼다. 서로의 얼굴을 보고서야 웃음이 났다. 그것도 모르고 먹을 만치 맛난 점심이었다. 안도현 시인은 중국집 앞을 지날 때는 침도 삼키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지만 늘 냄새와의 싸움에서 지고 만다고 시를 썼다. 까만 짜장면에 코를 박고 비벼 먹던 아이적의 추억이 코를 잡아당기니 이길 수가 없다고 말이다. 비릿한 바다냄새가 음식에 어떤 화학작용을 일으켰는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짜장면을 이 곳에서 맛보았다. 아마 시인이 이 바닷가에서 일 인분 시켜 먹고 나면 새로운 시를 한 편 쓸지도 모른다.

파란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배 한 척이 수평선을 그으며 지났다. 후식으로 항구를 돌아보기 위해 방파제로 향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파도소리를 들으니 배불렀던 짜장면은 금방 소화가 되어버렸다. 짜장면은 파도소리에 비벼먹어야 제맛이란 걸 양포항이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