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위에서
몽골 ②

▲ 국민의 절반이 모여 사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10년 전쯤이다. 인도 서북부를 여행하며 베나울림 해변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태풍이 몰려온다는 풍문이 떠돌았고, 기온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렸다. 너무 더워서 운신이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 기간 동안 한 일이라곤 낮에는 죽은 듯 엎드려 있다가 해 질 무렵 바다로 나가 일몰을 바라본 게 전부다.

한껏 달아오른 태양을 집어삼키는 아라비아해(海)는 아름다웠다.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운 빛깔을 사람들의 눈앞에 선사했다. 휘황했다.

또한 인도의 석양은 그 풍경을 바라보는 이들을 막막한 심정으로 이끌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속으로는 “아… 인간이 살고 죽는다는 건 대체 뭘까”라며 철학자처럼 혼잣말을 했을 것이다.

그 막막한 심경을 몇 년 후 몽골의 초원에서 다시 맛봤다. 이번엔 지평선이었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한계, 그 끝까지 펼쳐진 푸른 풀밭은 아라비아해의 수평선과는 또 다른 감흥으로 다가왔다.

할 말을 잃고 우두망찰 서 있는 우리 일행 곁으로 콧수염이 근사한 몽골 사내 하나가 다가왔다.

멋진 말(馬)들이 많이 태어난다는 초이발산(Choybalsan)이란 도시에서 왔다는 그가 앞뒤를 자르고 물었다.

“어때요? 대단하지요? 매일 보는 저도 그래요. 하하하….” 큰 웃음이 호방했다.

▲ 몽골인들의 영웅인 칭기즈칸이 웅장한 조형물로 서 있다.
▲ 몽골인들의 영웅인 칭기즈칸이 웅장한 조형물로 서 있다.

▲ 시인 김기림은 막막함 앞에서 시를 만들었고…

칭기즈칸과 쿠빌라이칸은 기자가 봤던 초원을 넘어 미지(未知)를 향해 말을 달렸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떤 위험과 고난이 기다리는 줄도 알지 못하면서.

그 무모한 용기가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 원나라를 만들었다. 단숨에 끓어오르고 한 번에 차갑게 식어버린 몽골의 역사. 그랬다. 그 역사의 시작은 황무지에 가까운 초원이었다.

막막함 속에서의 작은 깨달음은 고교 시절 읽었던 한 편의 시를 자연스레 기억 안으로 소급시켰다. ‘바다와 나비’였다.

언제 죽었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시인 김기림(1908~?)은 어떤 막막함 앞에서 이 노래를 구상했을까?

아무도 그에게 水深(수심)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靑(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 돌아온다

三月(삼월)달 바다에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동화 속 풍경 같은 몽골의 초원은 여행자를 막막한 감정으로 이끈다.
▲ 동화 속 풍경 같은 몽골의 초원은 여행자를 막막한 감정으로 이끈다.

식민지였던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 현해탄(玄海灘)을 건너던 나비. 깊이를 알 수 없는 물 위를 저 홀로 팔랑거리다 결국엔 살던 곳으로 서럽게 돌아오는 나비의 행로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모종의 서러움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무서운 기세와 몸짓으로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 모두를 무릎 꿇린 칭기즈칸과 그의 손자 쿠빌라이칸이라고 왜 두려움이 없었을까? 공포는 인간 보편의 감정인데.

청명한 햇살 아래 평화롭게 펼쳐진 광대한 초원에서 생각이 많아졌다. 다른 민족의 목숨을 빼앗으면서까지 자기 민족의 나라를 넓혀가는 간다는 것. 그게 우리가 ‘정복(征服)’이라 칭하는 단어의 본질이 아닌가. 이상스런 슬픔이 몸 안으로 먹물처럼 번져갔다. 독한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서쪽에서 말을 타고 달려온 몽골 청년들은 복잡해진 기자의 마음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저 반가운 인사를 전하며 조그만 개울을 건너 동쪽으로 사라졌을 뿐. 생소한 풍광 속에서의 진원지 불분명한 막막함은 오래 갔다. 쉬이 떠나지 않는 질긴 감기처럼.

▲ 동화 속 풍경 같은 몽골의 초원은 여행자를 막막한 감정으로 이끈다.
▲ 동화 속 풍경 같은 몽골의 초원은 여행자를 막막한 감정으로 이끈다.

▲ 울란바토르, 몽골 청년과 합석하다

칭기즈칸을 형상화한 커다란 조형물과 끝이 짐작되지 않는 초원, 아스라한 지평선, 그리고 몽골 유목민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게르(나무 골조 위에 펠트를 덮어 만든 이동식 천막)까지 두루 보고 돌아온 저녁. 울란바토르의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류는 몽골까지 거침없이 들어와 있었고, 한국에서 제작된 드라마와 가수들의 노래는 몽골에서도 인기가 높았다. 덩달아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 말을 증명하듯 울란바토르의 식당과 술집엔 드라마 ‘대장금’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 안에선 배우 이영애가 한복을 입은 채 환하게 웃었고.

며칠을 연이어 마시다 보니 알코올 도수 높은 몽골 보드카에도 익숙해졌다. 우리 일행은 권커니 잣거니 낯선 도시에서의 밤을 즐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몽골 사람이 말을 걸어온 것은 울란바토르가 깊은 잠에 빠져들 무렵이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오셨죠? 저 경기도에서 2년 살았어요.”

외국의 카페에서 갑자기 들려온 한국어에 다들 반가워했다. 덩치가 좋고 잘생긴 20대 후반의 청년이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것도 인연인데 합석하시죠”라는 말이 어렵지 않게 나왔다. 그도 거부하지 않았다. 곧 술자리는 합쳐졌다.

한국의 가구 공장에서 일하며 몽골에서의 장사 밑천을 부지런히 모았다는 청년은 “팔목을 다쳐 예정보다 빨리 돌아왔지만, 내겐 소중한 경험으로 남은 한국 생활이었다”며 조금은 쓸쓸하게 웃었다. 기자는 칭기즈칸의 후예인 그가 앞으로도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었다. 한국에서 먼 길을 날아온 하얀 나비가 짙푸른 몽골 초원을 유영하는.

▲ 몽골의 전통요리 ‘허르헉’을 만들고 있는 요리사.
▲ 몽골의 전통요리 ‘허르헉’을 만들고 있는 요리사.

몽골 별미 ‘허르헉’ ‘아이락’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에선 쉽게 맛볼 수 없었던 음식을 만나는 건 여행이 주는 즐거움의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방목한 양의 고기와 말의 젖으로 만든 요리는 한국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몽골은 80% 이상의 땅이 초원으로 이뤄졌다. 여름이면 어디를 가도 온통 풀밭이다. 이곳에서 양과 말 등의 가축을 키우며 살아온 게 몽골 사람들이다. 몽골의 산맥과 산맥 사이 분지에선 수천, 수만 마리의 짐승들이 뛰논다.

비가 적게 내리고 기온 변화가 극심한 몽골의 겨울은 무섭도록 춥다. 하지만 여름의 온화함은 혹독한 겨울 추위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몽골 북부 낙엽송과 소나무 아래서 즐기는 독특한 음식들은 두말 할 것 없이 맛있다.

몽골을 방문하는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먹게 되는 허르헉(Horqhog)은 몽골 특유의 방식으로 도축한 양고기를 뜨겁게 달군 돌의 열기로 요리하는 음식이다. 가죽과 뼈, 살과 내장을 버려지는 부위 한 점 없이 칼로 정확히 재단하는 허르헉 요리사의 솜씨는 보는 이의 경탄을 부른다.

우리 일행의 저녁을 책임진 몽골 요리사는 도축에서부터 허르헉이 완성되기까지의 긴 과정을 그대로 보여줬다. 유목민은 손님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자신의 집을 찾은 이들을 식구 이상으로 귀하게 대접하는 건 몽골 사람들이 오래 이어온 전통이다.

허르헉은 그 전통의 한가운데 있는 요리다. 양을 통째로 잡아 해체한 후 한국의 가마솥만한 냄비에 고기와 감자, 당근과 양파 등을 넣어 만든다. 일부 지역에선 냄비 대신 양의 가죽 속에 뜨거운 돌을 넣는 방식을 이용하기도 한다는데, 그건 더 맛있을 듯하다.

달궈진 돌로 고기와 채소를 익히는 방식은 원나라가 유럽 원정에서 사용한 요리법이라고 한다. 음식을 끓일 도구와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시간이 없었던 군인들에게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간편한 ‘전투식량’이라고나 할까?

아이락(Airag) 역시 몽골의 별미다. 중앙아시아의 전통 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한국의 모주꾼들 눈에는 막걸리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막걸리와 달리 원료가 쌀이나 밀이 아닌 말의 젖이라는 게 다른 점이다.

말 젖으로 만들었으니 마유주(馬乳酒)라고도 불린다. 양, 염소, 야크의 젖으로 만든 아이락도 있다고 한다. 기자의 경우엔 말의 젖과 양의 젖으로 만든 걸 함께 맛보는 행운을 누렸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는 몽골인들은 정성과 시간을 들여 아이락을 만든다. 그러니 설령 입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잔쯤은 흔쾌히 마셔주는 게 예의다. 시큼한 그걸 ‘원샷’ 한 후 “맛있다”고 치켜세워주면 그때부터 대접이 더 융숭해진다.

사진제공/구창웅
/홍성식기자 hss@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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