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돈, 고택에서 만나다`展
병풍·서각·편지 등 전시

▲ 대구시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 인근에 위치한 박기돈 고택. 현재는 일반음식점으로 운영 중이다. /대구문화재단 제공

회산(晦山) 박기돈(1873~1947)은 대구지역의 대표적 근대 문화예술인으로 꼽힌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편액을 쓴 그는 일제 강점기 석재 서병오와 함께 영남의 양대 서예가로 우뚝했고 대구상무소(현 상공회의소) 초대 소장을 역임했다.

대구 중구 계산동에 위치한 그의 고택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는 특별 전시회가 열린다.

(재)대구문화재단이 `문화예술인 가치 확산 사업`의 일환으로 기획한 `박기돈, 고택에서 만나다`전.

대구문화재단은 근현대시기에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한 저명한 예술인의 업적을 기리고 대구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2018년 대구 근현대 문화예술인물`로 서예가 박기돈, 시인 이장희, 영화감독 이규환, 작곡가 하대응을 선정했다.

그 첫 번째 인물인 서예가 박기돈의 생애와 업적을 알리기 위해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특히 그를 현창하는 최초의 전시이자 서예가로서 수많은 글씨를 남겼던 그의 고택에서 전시를 여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서울 출생인 박기돈은 20세 무렵부터 스승인 시암 이직현의 문하에서 시서화 예술의 소양을 쌓았다. 29세의 나이로 대한제국 양지아문 양무위원을 역임하며 관직에 첫 발을 디뎠고, 1905년 을사늑약 이전까지 서울에서 관료 생활을 했다. 1906년 대구에 정착한 후 지역의 상공업 진흥에 힘쓰며 경제인으로 활동하며 대구상무소 초대 소장을 지냈다. 또 국채보상운동을 비롯해 애국 계몽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다양한 경제·사회활동을 하면서도 꾸준히 서예를 수련한 박기돈은 1922년 교남 시서화 연구회가 결성될 때 부회장을 맡으면서 사회활동의 일선에서 물러나 서예가의 길을 걸었다. 박기돈의 서예는 숙련도가 높은 경쾌하고 기교적인 필치의 청경한 행서가 특징이다. 재당(齋堂), 누정(亭)의 편액을 많이 썼고,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비롯해 사찰의 편액과 주련도 많이 남기며 영남의 명필로 명성이 높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기돈이 글감으로 가장 좋아했던 정몽주의 시 중에서 `영주 현판의 시에 차운하다(次榮州板上韻)`를 쓴 작품을 비롯해 온화하기가 봄바람 같다는 뜻의 `애약춘풍` 등 경쾌하고 세밀한 박기돈의 서풍이 잘 드러나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서각과 족자, 병풍 외에도 여러 유학자들과 교류하며 주고받은 편지 등을 전시해 박기돈의 삶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전시가 열리는 박기돈 고택(중구 약령길25)은 1933년 그가 61세때 신축해 거주했던 곳으로, 중구 계산동 이상화 고택 인근에 위치하며 현재는 일반음식점으로 운영 중이다. 식당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게 색다르게 연출된 반전의 공간에서 병풍, 서각, 편지 등 20여 점의 작품을 감상하며 박기돈의 일생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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