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화<br /><br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 김명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초등학교 시절 가장 싫어했던 과목은 단언컨대 체육이었다. 땀 흘리거나 씻는 게 귀찮아서가 아니었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는데 도대체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의 나는 소문난 몸치에다 체력이 약했던 탓에 뜀박질로 단련된 또래 친구들을 이긴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여러 운동 중에 가장 싫었던 건 체력장에 꼭 빠지지 않았던 매달리기였다. 매번 잘해 보리라 단단히 마음먹었지만 마치 누군가 참기름이라도 발라둔 것처럼 철봉에 손이 닿기가 무섭게 미끄러졌다. `○○○, 1초`. 호명하는 소리에 아이들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선생님의 얼굴은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어찌나 부끄럽던지 매일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 운동장으로 쫓아가 매달리기와 씨름했다. 운동을 싫어했던 나로서는 정말 독한 마음을 먹었던 것인데, 그 독기 때문이었는지 연습의 결과였는지 깨지지 않을 것 같았던 1초의 벽을 넘겨 결국 20초대를 만들었다.

이 작은 성공의 경험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 장면이 되었다.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 보리라 `단디` 마음 먹었으며, 매일 실천했고, 그 결과도 성공적이었다. 잦은 실패의 경험으로 어느덧 `체포자(체육을 포기한 자)`가 당연한 운명인 줄 알고 받아들였는데 `당연한 것`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으며 `노력으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결코 못할 일이 없다`는 선생님들의 훈계가 저편 어디선가 둥둥 떠다니는 다른 세계의 말이 아닌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내 세계의 말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뜀틀이며, 허들 때문에 애를 먹긴 했지만 예전만큼 체육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여유가 늘었고, 오히려 `도전`해 본다는 짜릿한 감정까지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 자신감은 체육의 경계를 넘어 공부며, 해결해야 할 과제 앞에서도 여지없이 힘을 발휘했다. 성공의 경험은 미미한 것일지라도 그처럼 중요하다. 특히나 몸으로 체득한 것이라면 더욱.

하지만 학창시절 동안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국어, 영어, 수학 등 다른 과목에 우선순위가 밀린 탓도 있었지만, 여학생들이 할 수 있는 운동이나 공간이 많지 않았다. 축구나 배구, 농구장은 늘 남학생들의 차지였으며, 실제로 실력 차이가 나 함께 운동할 처지도 아니었다. 여학생들에게 맞도록 골대를 낮춘다거나, 부딪힘이 적은 새로운 스포츠를 개발한다는 생각을 그 때는 왜 하지 못했을까?

스포츠 광으로 알려진 버락 오바마 전(前)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타이틀 나인(TITLE Ⅸ)법 제정 4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체육활동이 아이들, 특히 여학생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믿고 있다. 운동은 여학생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경쟁의 의미를 알려준다. 여학생들이 학교에서 체육을 해야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자신감 있는 여성을 만들어 낸다”며 여학생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기간에 `걸스 플레이 2`(Girls Play too, 여학생들도 운동하자) 캠페인을 론칭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역시 “학생들은 운동을 하면서 팀워크, 헌신, 규율 그리고 압박 속에서 성공하는 법을 배운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스포츠에 동등한 접근권을 갖도록 하는 것은 이러한 소중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며 더 많은 여학생들이 스포츠에 참가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스포츠 정신을 이야기할 때 늘 빼놓지 않는 것이 `도전`과 `열정`, `땀`의 가치다. 이번 동계 올림픽에서도 여자 컬링팀을 비롯해 선수들의 도전과 열정을 볼 수 있어서 더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올림픽을 계기로 여학생이 체육활동에 보다 관심을 가지기를, 여학생들의 체육활동이 보다 폭넓게 이루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