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기초교양대학 교수·정치학박사

청소, 경비 노동자 인력을 줄이고 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운영하려는 학교의 구조조정 방향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캠퍼스 곳곳에 나부끼고 있다. 일부 대학교들은 인건비 상승에 따른 비용부담과 인력 운영의 합리화를 이유로 무인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파트타임으로 대체하려고 있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호하려는 최저임금이 노동시장에서 주변적 위치에 놓인 노동자들의 삶을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최저임금 7천530원을 둘러싼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이 극심한 소득불평등 해소와 저임금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정책”이라고 하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 해 6천470원에서 16.4% 상승한 7천530원을 2018년 최저임금으로 책정하였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을 염려하여 3조원 규모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마련하고, 두루누리 사회보험 지원금 제도를 통해 각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최저임금이 포퓰리즘에 입각하여 정치적으로 결정되었다고 비판한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바람에 중소기업과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 인건비 부담이 커져서 감원을 할 수밖에 없고, 물가상승과 같은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건물 임대료와 프랜차이즈 본사에 지불해야 하는 높은 비용을 저임금으로 상쇄해 왔던 구조에서 최저임금이 복병이 된 셈이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것보다 차라리 `알바`를 뛰는 것이 더 낫겠다는 자조의 소리도 들린다.

최저임금을 둘러싼 문제의 핵심은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필요에 따라 고용과 해고가 용이한 비정규직을 양산해 왔다. 핵심 업무와 주변업무로 이원화하여 비용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주화하거나 임시직으로 대체하였다. 이른 바 `단순 노무, 비숙련직`으로 분류되는 일을 담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실직 가능성이 높아 언제든 사회 취약계층으로 전락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소득격차와 삶의 질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내쳐질까 전전긍긍하는 불안이 반복되는 삶은 일상을 피폐하게 하고 장기적인 계획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스테판 에셀은 20세기와 21세기가 낳은 새로운 폐해로 “극빈층과 최상위 부유층 사이에 가로놓은 점점 더 커져만 가는 격차”를 지적하였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발표를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임금의 절반인 51.0%를 받고 있다. 저임금은 돈의 액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야기한다. 따라서 노동자의 현재와 미래의 삶을 함몰시키지 않도록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주는 장치로서 최저임금은 중요하다. 토마 피케티도 `21세기 자본`에서 부가 갈수록 점점 더 소수에게 집중되면서 불평등이 확대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며 가장 가난한 이들의 이익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만 된다고 강조하였다.

2000년 이래로 청년 실업률이 최악이라고 한다. 높은 등록금과 해외연수와 무급인턴을 감내하며 화려한 스펙을 만들고도 대학생들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비트코인이라는 가상화폐 시장에 20, 30대의 쏠림 현상도 저렴한 `알바`와 불안정한 비정규직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낮은 임금과 해고의 두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이란 과연 가능한가?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는 없다. 저임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 공동체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상후하박`의 임금논리에서 벗어나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상생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알바천국은 최저임금을 제대로 준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