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종<br /><br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 김규종 경북대 교수·인문학부

음치 수준이기에 나는 리듬이나 작곡에 문외한이다. 그럼에도 유행가를 듣다가 피식 웃어버리는 때가 있다. 가사 때문이다. 한국가요는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그리움, 떠나버린 연인을 향한 원망과 아쉬움, 재회에 대한 애틋한 갈망 같은 것으로 빼곡하다. 노랫말에 인생이나 자연 혹은 세상의 변혁이나 역사 혹은 자아성찰을 담은 유행가는 희귀하다.

`눈물이 나는 날에는`이란 유행가를 들은 적 있다. 가수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영원히 행복을 느끼되, 슬픔이 찾아든 날에는 잠을 자겠다고 절규한다. 노래 끄트머리에 `변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라는 대목이 나온다. 왜 그는 변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는 것일까?! 지금과 여기가 소중하고 최상의 상태라면 변화는 두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문제는 죽음이나 공허, 적멸(寂滅) 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변화는 필연임에도 그것을 회피하려는 마음가짐에 있다. 불가능한 것, 헛된 것, 망상과 환영(幻影)을 좇는 청춘의 외침이 안쓰럽다 못해 우울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남자 주인공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하고 원망하듯 읊조리는 것과 같다.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사랑이니?! 하고 응수하고 싶다.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은 탓에 허다한 전신주가 나라 곳곳을 점유하고 있다. 마구잡이로 얽히고설킨 전깃줄은 복잡다단한 인생사를 웅변하는 듯하다. 까치가 집을 짓고, 비닐봉지가 바람에 날려 덕지덕지 붙어있는 풍경도 흔하다. 지하에 매립하지 않은 전신주와 전깃줄은 도회와 농촌의 풍광을 훼손하는 대표적인 주범(主犯)이다.

그런데 근자의 언론보도는 흉물스러운 전봇대가 5세대 이동통신에는 효자구실을 할 것이라고 전한다. 5G의 주파수는 기존 이동통신 주파수보다 짧아 촘촘한 기지국과 중계기가 필요한데, 전신주가 필수적인 장비라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 용어를 빌린다면 아득한 석기시대의 전신주가 4차 산업혁명 시기에 `약방의 감초처럼` 요긴해졌다는 얘기다.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돌고 도는 것이 인생사 아닌가 한다. 콩나물 교실로 대표되는 폭발적인 인구증가와 인구압박을 극복하려는 지난 세기 한국정부의 구호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둘도 많다!”로 변화한다. 그런데 금세기 들어와서 한국정부의 고민거리 가운데 하나는 유례없는 저출산이다.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100조원의 예산을 투자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은 저출산 문제를 근본부터 손보겠다고 한다. 백화점식으로 행해졌던 저출산 사업은 고용과 주거개선에서 임신과 출산지원, 보육과 교육부담 완화로 이어지는 생애주기별 사업위주로 전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실효성 여부는 차치하고 기획은 좋아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장밋빛 전망은 필요할 테니까.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하는 근저(根底)를 뜯어보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시대와 시대정신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가치와 미래기획이 뿌리째 변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교육이 당연한 일상으로 수용된 지난날의 관점으로 2018년 지금과 여기를 재단하면 백전백패는 당연한 귀결이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조만간 펼쳐질 신세계가 보인다. 인공지능 로봇이 세계 도처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시민권을 부여받은 휴머노이드 로봇 소피아, 소프트 뱅크의 감정인식 로봇 페퍼, 신문기사를 쓰는 로봇 워드 스미스, 반려로봇 버디, 장난감이자 교육도구인 코그니토이 등등. 이런 세상에서 구시대 출산장려책은 100% 오답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말은 고금동서의 진리다. “그것 또한 지나가리니!” 하는 말 역시 여러 종교의 가르침이다. 변화를 상정하지 않는 인간과 사회, 국가와 공동체는 모두 소멸했다. 겨울비 아련하게 내리는 신년벽두에 변화를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