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 교수
▲ 배개화 단국대 교수

지난 15일 오후 2시 30분쯤 됐을 때 필자는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학생의 핸드폰으로 재난 문자 경고음이 울렸다. 그 직후 칠판 앞에 걸린 프로젝터 스크린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학생들은 지진이라고 웅성거렸다.

수업을 끝내고 연구실에 돌아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살펴보니 포항에서 2시 29분경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속보가 올라오고 있었다. 수직으로 금이 간 아파트의 외벽, 기울어진 필로티 기둥, 넘어진 담장 그리고 부서진 자동차 등의 사진과 동영상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속속 올라왔다. 필자는 그림만 봐도 지진의 강도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TV를 켜니 9시 뉴스가 나온다. 앵커는 교육부에서 16일로 예정된 대학수학능력(수능) 시험을 1주일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지진으로 시험장으로 사용될 학교 건물들에 금이 가는 등으로 인한 안전 문제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1992년 수능 시험이 시작된 이래로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포항의 지진이 전국의 수험생들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21일에는 한 종합편성채널의 8시 뉴스에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나와서 23일 금요일에 있을 수능 시험에 대한 교육부의 입장을 말했다. 김 부총리는 지진에 따른 여러 가지 대응 매뉴얼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가 설명한 시험 당일의 매뉴얼에 따르면, 8시 10분 수험생의 입실 시간 이전에 지진이 오면 다른 시험장으로 이동하고, 시험 도중 지진이 오면 심각하지 않을 경우 시험을 계속 진행하고, 안전에 위험을 느낄 정도의 강도 높은 지진이 오면 모두 건물 밖으로 대피한다는 것이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서 필자는 과연 23일 포항에서 수능 시험이 제대로 치러질지 걱정이 들었다. 사람들마다 지진에 예민한 정도가 다르다. 여기 천안만 해도 예민한 아기 엄마들은 너무 무서웠다고 호들갑을 떤다. 학생들 중에도 다른 사람보다 지진에 민감한 친구들이 있을텐데, 강제로 시험을 치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할 경우는 시험이 무효가 된다는 말에는 23일 제발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하늘에 빌 도리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학 입시는 자신이나 자녀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로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은 태어난 이후 18년 동안 수능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 공부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렇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매년 공정한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많은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23일 포항에서 지진이 심하게 나서 학생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시험이 무효가 된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능 점수가 없으면 학생들은 정시 지원 자체가 불가능하고, 수시 시험에 합격한 경우라도 수능 점수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김상곤 부총리는 그에 대한 교육부의 대책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말할 수 없다고 한다. 필자도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이것이 실행되는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왜 교육부는 23일 수능 시험을 포항이 아닌 다른 지역으로 옮겨서 칠 생각은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영천이나 경주 등 아예 다른 지역에서 친다면 지진에 대비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필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말하는 수능 시험 여러 번 치는 문제는 이런 일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포항의 시험장에서 수능시험을 치기로 한 이상, 가능한 지진이 일어나지 않기를 우리 모두 마음을 모아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험생들은 불안한 마음을 잘 다스리고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 자칫하면 지진 때문이 아니라 마인드 컨트롤 실패로 수능 시험을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