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제 1회 포항스틸에세이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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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11.08   게재일 2017.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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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상 수상자 박순조씨. 1945년 출생. 현재 경북 청도군에 살고 있다.
 

“어떤 어려움에도 床과 주전자 보며 살아라”

금상 `쇠, 매화를 피우다`

-박순조씨

지난날을 두고 탓해서 무엇하리
눈물에 밥 말아 먹던 날 많았지만
남은 생은 매화처럼 살다 가고파


반백년이 넘었다. 볼록한 배는 군데군데 상처가 있어도 늘 웃는 얼굴로 나를 지켜준다. 눈이 부시도록 하얀 몸, 가늘면서도 약간 꼬부라진 입, 선비의 깃같이 생긴 머리까지 마치 새끼 백로가 물가 자갈밭에 앉아 엄마를 기다리는 모습처럼 언제 보아도 우아하고 사랑스럽다. 그뿐이랴. 매실 모양으로 생긴 장석은 손잡이를 꽉 쥐고 있어 여간해서는 빠지지 않아 만든 사람의 뚝심과 지혜로움이 돋보인다. 가장 특이한 점은 배 가운데와 머리에 새겨진 매화는 사시사철 화르락 피어 향기를 뿜는다.

이 보물이 내게 온 것은 오십여 년 전 눈이 발목까지 차던 설 단대목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집안 살림을 쥐락펴락하던 오빠 내외는 한 입이라도 줄이기 위해 나와 엄마의 생각은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혼사를 정했다. 스무 살에 선 한 번 못 보고 신랑 얼굴도 모른 채 눈이 쌓인 마당에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혼례를 치렀다. 시내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신랑은 그 당시는 매우 드물게 친구 세 명을 데리고 왔다. 그때 그분들이 산수화가 그려진 액자 한 점과 함께 가져온 선물이다. 친구들은 이 그릇에 물을 끓여 오순도순 차를 마시며 하늘이 부를 때까지 매화처럼 향기를 품고 살라는 염원을 담아 가져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깊은 뜻은 하룻밤 사이 망치에 맞은 얼음처럼 산산조각 났다.

호롱불 밑에서 신랑 얼굴을 보기는커녕 입 한 번 떼지 못했지만, 천만 리 불길도, 바다 속도 홀로 걸어야만 하는 여자의 일생이 결정되었다. 그렇게 첫날밤이 지나고 새신랑의 아침상이 나왔다.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는 뜻에서 친지들도 모였다. 말하자면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고 항렬 소개도 할 겸 새 식구의 인품과 참을성을 시험하는 자리였다. 제일 어르신인 작은아버지와 당숙도 오셨기에 어제보다 더 잔치다웠다. 손때 매운 올케도 당신이 좋다고 한 사람이라서인지 더욱 신경을 써 그야말로 사또 곰배상이다. 또 음식에 걸맞게 맑은 술도 상 위에 올려졌다. 삼백육십오 일 두루마리 갓 벗을 날 없이 큰기침 하나로 좌우가 소통되는 작은아버지는 “고 참 주전자 하나 참해 술맛이 달구나” 하시며 좀처럼 안 하시는 칭찬까지 곁들였다.

그 순간 구들목에 앉아 몇 술 뜨던 신랑이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밥상을 찼다. 누가 말릴 새도 없이 대청을 지난 상은 폭탄처럼 눈 쌓인 마당 가운데 떨어졌다. 도자기에 담긴 갖가지 음식들은 도화지에 가을빛 수채화를 그리듯 했고, 주전자는 야구선수의 땅볼처럼 눈 위에 앉더니 다시 솟아올라 맞은편 돌담 모난 돌에 맞고는 내려 꽂혔다. 올케는 그제야 “내 눈을 내가 찔렀구나.” 했지만, 나는 무당이 잡은 대나무처럼 떨고만 있었다. 새신랑은 눈 덮인 신작로를 향해 달렸고, 엄마는 오빠들을 신랑의 뒤를 따르게 한 뒤 다리가 부러진 상보다 떨리는 손으로 한 쪽 배가 움푹 들어간 주전자부터 집었다. 엄마와 올케가 갖가지 연장으로 아무리 용을 써도 찌그러진 주전자는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엄마가 그토록 애타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청상에 홀로 된 뒤 독 씻어 단지 씻어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살아온 사돈이기에 딸아이의 시집살이가 불을 보듯 훤했기 때문이다.

오빠들의 설득으로 멋쩍게 돌아온 신랑은 주전자 안부부터 물었다. 친구들이 생각나서인지 엄마가 했던 것처럼 한나절을 만지고 또 만졌지만, 원래의 아름다움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때 남편의 얼굴을 지금까지 보아온 것보다 더 깊이 더 세세하게 보았던 것 같다.

엄마는 읍에 사는 사위를 생각하며 왕복 사십 리 길도 마다치 않고 장닭 세 마리를 이고 장에 갔다. 다 팔아야 겨우 상 하나를 사 이고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왔지만, 운명의 장난은 너무나 가혹했다.

전쟁 같았던 상황이 수그러지고 엄마가 조곤조곤 물었다. 이유인즉 밥 속에 종발이 들어있어 갑자기 화가 났다고 했다. 그것은 새사람의 인내심과 지혜를 시험하기 위해 오빠들이 장난으로 그랬던 것이다. 당시 풍습으로는 어느 집안 없이 다 그런 절차를 밟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겨 눈보다 더 작은 남편의 인내심은 평생 오금으로 남았다.

나이 어리다고 일 년을 친정에서 보내고 신행하던 날이었다. 엄마는 부러진 다리를 명주실로 찬찬히 감은 상 위에 상처 난 주전자를 윤기 나게 닦아 올려놓고는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이 상과 주전자를 보면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시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엄마의 염려처럼 시집살이는 그야말로 천 리 동굴이었다. 만개한 매화의 꽃술 수만큼이나 남편의 발길에 차여 마당에 내동댕이쳐졌어도 말없이 꽃을 피우는 주전자처럼,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엄마의 말씀을 또 삼켰다.

키 이십 센티, 배 둘레 사십 센티, 몸무게 이백 그램 남짓한 작은 몸. 쇠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지켜주지 못했으리라. 어느 특출한 장인의 손으로 빚어졌는지는 알 길은 없으나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특별한 보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랬기에 이사를 몇 번이나 했어도 이 상처 난 주전자와 절름발이 상만은 내 지난날의 거울 같은 존재이기에 지금까지 털고 또 닦는다.

젊은 시절의 충격이 컸는지 남편은 오늘도 주전자를 들고 온다. 예쁘다 싶으면 사다 나르고. 주워온 것만도 여남은 개도 넘는다. 유별나게 주전자만은 소중히 다루는 것을 볼 때마다 측은한 생각이 드는 것은 늘어난 주름이 명약인가 보다.

세월은 불촉 같은 성질도 콩물로 만들었고, 예쁜 주전자를 선물해준 친구들마저 다 하늘나라로 보내버렸다. 언제부턴가 아침밥은 먹었는지, 외아들 나이가 몇 살인지는 퍼뜩 떠오르지 않는데, 지난날을 두고 탓해 무엇 하리. 웃었던 날보다 눈물에 밥 말았던 날들이 더 많았지만, 남은 생은 매화처럼 살다 가고 싶다.

추석이 다가온다. 거실 진열장에서 자고 있는 제수용 놋그릇을 깨워 곱게 친 기왓장 가루로 닦는다. 당연히 주전자의 몸도 단장한다. 주방용 세제를 풀어 부드러운 헝겊으로 닦으면 매화 문양이 제철보다 환해 당장이라도 벌이 날아올 것만 같다.

어언 파꽃 한 광주리씩을 이고 뚝딱거리는 이빨과 어레미에 가린 초점으로나마 서로 마주보며 웃고 있다. 푸른 날의 아픈 기억들은 해질녘에야 정으로 변하는지…….
 

  ▲ 은상 수상자 배정수씨. 1959년 출생. 현재 대구시 달서구에 살고 있다.  
▲ 은상 수상자 배정수씨. 1959년 출생. 현재 대구시 달서구에 살고 있다.

“바늘에 반해 꿈을 꿰었고… 노년엔 희망을 꿰고 싶어”

은상 `바늘꽃`

-배정수씨

바늘귀에 주홍빛 실을 꿰어
구절초를 무리지어 놓았더니
가을이 문을 열고 나오네

저녁부터 조물닥 조물닥 꽃을 피운다. 바늘귀에 주홍빛 실을 꿰어 장미 세 송이를 활짝 피우고, 옆에는 라벤더를 곁들인다. 개망초와 노란 씀바귀에는 빨강 열매를 수놓고, 줄기마다 짙고 옅은 초록 잎을 달아준다. 코스모스와 구절초를 무리지어 놓았더니 가을이 문을 열고 나온다. 바늘 지나간 자리가 곱다. 고마운 이에게 손수 만든 자수 브로치를 선물하고 싶었다.

봄을 닮은 그녀에겐 수수하고 잔잔한 팬지와 씀바귀를, 여름의 열정이 느껴지는 매사에 열심인 그녀에겐 화려한 장미와 라벤더를, 가을의 분위기를 간직한 차분하고 온화한 친구에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와 구절초를, 겨울의 냉철함으로 늘 많은 조언을 해 주시는 선배에게는 동백꽃을 수놓으며 작은 브로치 안에 사계절을 불러 모아 가득 메우며, 바늘과 나는 하나가 된다.

바늘귀에 마음을 속삭이고 바늘 끝을 따라가다 보면 수시로 생이 피어난다. 때로는 바늘과 실이 다퉈 배배 꼬이고, 엉뚱한 씨실과 날실 사이로 들어가 딴청을 부려 속을 썩이기도 하지만, 살살 달래가며 손끝 온기로 꽃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잠 때를 훌쩍 넘기기도 한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실과 바늘을 정리하고 있노라니, 귓가에 익숙한 음성이 들려온다.

“정수야~ 엄마 볼일 보고 올 때까지 할머니랑 이모랑 잘 놀고 있어”

유년시절 엄마가 나들이 하실 때는 매번 편물가게 하는 외할머니 댁에 맡겨졌고, 이모 두 분은 늘 편물 기계 앞에 앉아 뭔가를 짜고 계셨다. 외할머니께서 그 짜낸 조각들을 바늘귀가 크고 통통한 바늘로 꿰매면 하나의 털옷이 완성되었고, 그 작업을 `시아게` 한다고 말했다.

온갖 색실 속에서 옆에 앉아 털실을 갖고 놀았고, 그녀의 바느질 솜씨에 감탄하며, 하나의 옷이 완성될 때마다 박수를 쳐 드렸다. 그때가 바늘을 처음 알게 된 때였고, 바늘귀에 실이 꿰이면 뭐든지 이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쯤, 어머니가 직공 둘을 데리고 편물가게를 차리셨다. 나일론 옷이 질기다며 한창 유행하던 시절, 어머니는 서문시장에 납품을 시작했다. 알록달록한 엄마표 디자인은 항상 인기가 있어 밤늦도록 우리 집은 사르륵 사르륵 편물기계 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에겐 자장가가 되었다. 나는 자연스레 일찍부터 바늘과 친해져, 굴러다니는 실로 이것저것 짜보며, 엄마 몰래 파랑 털실 한 뭉치를 꺼내, 엉성한 벙어리장갑을 떴다가 야단을 맞았다.

때로는 동네 양장점에 가서 천 조각을 얻어다 인형 옷을 해 입혀 엄마께 자랑하면, 대견해 하시면서도 여자가 손재주가 많으면 고생한다며 탐탁해 하지 않으셨다. 유년부터 실과 바늘 속에서 자라서인지 나도 모르게 어깨너머로 배운 바느질이 익숙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바느질이나 자수 숙제가 나오면 늘 자신감으로 신이 났다. 친구들 앞에서 선생님의 칭찬과 최고의 실기 점수는 더없이 나를 으쓱하게 했고 가정 선생이 되는 꿈을 키웠다.

그러나 6.25사변 때 군인이셨던 아버지는 부상을 입고, 간호사의 치료를 받을 때마다 큰 위안을 받고, 훗날 큰딸은 꼭 백의의 천사를 만들겠다고 다짐하셨단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가정과를 가겠다고 하자

“가정과 안 나와도 콩나물만 잘 무친다”며 일축해 버리고 엄마는 울먹이는 나를 달래며 산파가 되면 의사 못잖게 대접받고 돈도 잘 번다며 한수 더 뜨셨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당시에, 아마도 두 분은 은근히 큰딸이 살림밑천이 되어주길 바라셨나 보다. 하지만 두 분의 기대와는 달리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첫선 본 남자와 결혼했다. 집안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채, 23살 철부지 신부는 살림 살고 아이 키우느라 꿈은 아예 접고 살았다.

틈이 날 때마다 바늘이 그리웠다. 시어머님 첫 선물로 스웨터를 떠서 드렸고, 옷이며 레이스 받침 등을 만들거나, 십자수와 퀼트를 배운 작품들로 벽을 장식하기도 하며 바늘과의 교제를 이어갔다.

수예점의 자수 실을 볼 때마다 그 다양한 색감에 매혹되었고, 바늘에 예쁜 실을 꿰어 하얀 무명천 위에 마음껏 다양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로 남모르게 흥분하며, 언젠가는 꼭 전문 자수인이 한번 되어보리라 꿈을 품었다.

두 아이들이 커서 품을 떠나고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꿈을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알게 된 팔공산 근처의 명인 선생님을 찾아가, 일급 프랑스 야생화 자격증 과정을 마쳤다.

선생님은 과제가 주어질 때마다 나의 바늘땀과 색감이 곱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고 격려해 주셨다. 가는 길이 멀었지만 힘든 줄을 몰랐다. 새로운 스티치 기법에 감탄하며 가슴이 뛰었다. 꿈이 영글어 가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나는 중매쟁이가 되어 예쁜 색으로 짝을 지우고, 린넨 천 위에서 밀당 놀이를 한다. 때로는 바늘의 질투가 너무 심해 조금만 한눈을 팔거나 딴 맘을 품었다간 가차 없이 삐딱선을 타고, 실까지 꼬여서 짜증이나 화를 내면 따끔한 맛까지 곁들여 심하면 피까지 봐야 한다. 하지만 바늘귀에 내 마음의 소리를 들려주고, 온 마음과 정성으로 사랑해 주면 단짝인 실과 함께 예쁜 집도 지어주고 온갖 꽃이 만발한 정원도 꾸며주며, 중세 시대로 돌아가 크레놀린 레이디와 놀기도 하고,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방을 어깨에 걸쳐 주기도 한다. 실로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

바쁘게 돌아가는 자동화 로봇화가 되어가는 세상 한편에서, 자수는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가 조급함을 내려놓고, 한 땀 한 땀 온 정성을 다해 자신의 손끝 온기로 피운 바늘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된다. 오로지 나를 사랑하며 사치를 한껏 부려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 돌고 돌아 바늘과의 끈질긴 사랑이 이루어졌다. 프랑스 자수 강사로 문화센터나 주민센터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바늘과 함께 자수를 사랑하는 동호인들과 웃음꽃을 피워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참으로 작은 쇳조각에 불과한, 몸통 하나에 귀 하나뿐인 바늘 하나의 재주에 반해 꿈을 꿰었고, 노년은 그와 함께 희망을 꿰어 모두에게 예쁜 바늘꽃을 한 아름 선사하고 싶다.

손끝에서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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