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네 총무부 소장 자료서 확인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은 독도의 명칭이 `돌섬(石島)-독섬(石島·獨島)-독도(獨島)`로 변화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일본인의 구술록을 시마네 현 총무부 소장 자료에서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제2조의 내용은 `울도군청의 위치는 태하동으로 정하고 구역은 울릉전도와 죽도(竹島), 석도(石島)를 관할할 사(事)`로 돼 있지만, 일본 정부는 석도가 독도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울릉도 개척(1882년) 당시 이주하거나 울릉도에서 어업에 종사하고자 건너온 많은 전라도 사람들이 돌로 된 섬을 `돌섬` 혹은 `독섬`이라고 불렀고, 이를 한자로 적은 것이 `석도`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소장이 찾은 구술록은 지난 1953년 7월 11일 어부였던 오쿠무라 아키라(奧村亮, 당시 43세)의 발언을 일본 외무성 아시아국 2과가 기록한 문헌인 `죽도 어업의 변천`이다.
울릉도에서 생활했던 적이 있는 오쿠무라는 “당시 조선인은 `랑코섬`을 독도라고 했고 일본인과 대화할 때는 `랑코 섬`으로 불렀다”고 구술했다.
김 소장은 오쿠무라의 구술록에서 독도 옆에 기재된 `도쿠손(トクソン)`이라는 글자에 주목했다. 도쿠 손은 `독섬`의 일본식 발음을 표기한 것이다.
김 소장은 “일본인의 구술에 따르면 일본인은 독도를 죽도보다는 `랑코섬`이라고 했다”며 “일본인도 독도와 독섬을 동일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돌섬-독섬-독도 음운변화설이 힘을 얻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문서가 “일본 정부가 생산한 문서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은 해방 직후 국내에서 창간된 일간지 `한성일보`의 1948년 6월 13일자에도 `독도는 우리의 섬, 원명은 돌섬(石島)`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독도에 대해 “원래 이름은 `돌섬(石島)`인데 이후 와전돼 `송도 (松島)` 또는 `독섬(獨島)`으로 개칭됐던 것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울릉/김두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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