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성조 한국체육대 총장
사업가, 정치인을 거쳐 대학총장까지 인생3모작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구미출신의 김성조(59) 한국체육대 총장이다.
지역민들에게는 3선 국회의원으로 널리 알려진 김 총장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산실이라 불리는 한국체육대 총장을 맡아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개교 40주년을 맞은 한체대는 지난 8월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2017타이베이 하계유니버시아드 갈라쇼에서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으로부터 `최고대학상(Best University)`을 받았다. 김 총장이 취임하기 전 수년동안 총장 선거를 둘러싼 내홍으로 2년 가까이 표류하며 휘청였던 한체대가 그의 부임 이후 한국대학 스포츠의 정점으로서 지위를 되찾고, 세계 스포츠 무대의 정상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김 총장을 만나 새로운 도전의 뒷이야기와 앞으로 포부 등을 들어봤다.
대학 졸업 후 전자공업 사업 시작3명 직원 30명 될때 정치인 꿈 꿔
경북도의원서 3선 국회의원까지
후진 양성 총장직 취임은 `운명적`
대구경북서 아시안게임 개최 기원
-젊은 시절 사업을 시작한 뒤 정치인에 입문할 때도 쉽지않은 선택을 했던 것으로 안다. 당시 추억을 돌이켜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대학 다닐 때부터 졸업후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1984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전자공업 사업에 뛰어들었다. 사회경험이 없는 젊은이에게 사업자금을 대줄 사람이 없었지만 친분 있던 이웃을 설득해 사업을 시작하는 모습을 본 부친이 고집에 못이겨 사업자금을 대주었다.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구멍가게가 30여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하자 정치를 꿈꾸기 시작했다. 1995년 구미청년회의소 회장을 맡은 데 이어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북도의원에 당선됐다. 무소속으로 도의원 재선에 성공한 뒤, 2000년 16대 총선 1년을 앞두고 출마를 위해 도의원을 사퇴했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는 다윗이 아니었다. 다윗은 돌을 던졌지만 나는 돌을 던지지 않았다. 무슨 얘기냐면 지방의 무명 정치신인인 내가 당시 지역출신 5선 국회의원인 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와 맞붙어 이긴 것은 내가 이긴 것이 아니라 정치적 환경에 의해 상대가 무너진 것이라고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호적 나이 41세 때의 일이었다. 나로서는 떨어진다 해도 데미지가 없을 뿐 아니라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서 시작했는 데, 대운이 와서 덜컥 당선된 것이다. 그래도 계속 운이었다고만 말하기 민망할 때는“연속해서 3번 운이 좋으면 그것도 실력일 수 있다.”고 말한 영국 소설가 버나드 쇼의 말을 인용하곤 한다.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체육계와는 큰 인연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 어떻게 한국체육대 총장으로 오게됐나.
△3선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당시 한나라당 원내 부대표를 3번이나 맡았고, 전략기획본부장, 여의도연구소장, 정책위의장,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의 요직을 지냈다. 돌이켜보면 나처럼 국회내 요직만 경험하기도 쉽지않다. 그런데 대학총장으로서 후진을 양성하는 명예로운 일에 종사하게 된 것도 운명적이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과 기획재정위원장을 지낼 때 장애인을 위한 법안과 예산지원에 힘썼다. 장애인 연금법을 제정하는 데 힘썼고, 노무현 정부때 총액배분 후 자율편성제를 도입, 지자체에 예산 편성권을 이양했더니 복지분야 예산이 자치단체별로 크게 차이가 나는 부작용이 생기면서 장애인 예산은 중앙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아 그 일에 나섰던 적도 있다. 이런 점을 눈여겨본 협회가 나를 회장으로 추천해 한국지적발달장애인협회장을 맡게 됐다. 한국체육대와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어느 날 직전 지적발달장애인협회장이자 한체대 원로교수인 김원경 교수가 나를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이렇게 물었다. “대통령 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니라고 했더니 “그러면 국회의원 3번 하나 4번 하나 마찬가지니 대학총장을 한번 해보시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나로서는 갑작스런 제안이기도 했고, 생소한 분야였다.
더구나 교육 분야는 인격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분이 가야하는 것이란 생각에다 선거도 해야 하는 데, 교수 한 분이 총장후보로 등록한 상황에 투표를 해서 이길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없다”고 사양했다. 그러나 이후 간곡한 요청에 결국 총장선거에 나서 2015년 2월 총장으로 선임됐다. 총장 취임 석달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 셈이었다.
-한국체육대 총장에 취임한 후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비결이 뭔가.
△늘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자리에서든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 일을 마쳤을 때는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 지금도 대학총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지난 8월에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로부터 `최고대학상(Best University)`이라는 영예도 안았다. FISU는 스포츠의 가치와 스포츠의 활동, 대학의 정신이 조화를 이루도록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맹으로, 1949년에 창설됐고, 현재 한국을 포함한 129개국의 대학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두고 있다. 2015년 광주 U-대회와 2016년 세계 대학 챔피언십에서 한국체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보인 것이 FISU 집행위원회로부터 인정받은 것이었다.
한국체육대학의 최대 숙원사업이었던 건폐율 상향조정문제도 해결했다. 학교부지가 건폐율 20%로 묶여 있어서 기존 건물을 헐지 않으면 더 이상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는 데, 최근 어렵게 30%로 올릴 수 있었다. 국토해양부장관을 지낸 이정무 전 총장이 “축하한다”고 격려해 줄 정도였다. 이런 일들을 해낼 수 있었던 데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부회장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데, 소개한다면.
△통합체육회로 출발한 대한체육회는 부회장이 3명이다. 시도지사가 추천한 최문순 강원도지사, 그리고 대한축구협회장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그리고 체육학계를 대표해서 내가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선 각국의 스포츠인과 활발히 교류하면서 올림픽 아카데미 유치에 힘쓰고 있다. 지난 3월 대학창립 40주년을 기념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면서`올림픽 아시아 아카데미`를 우리 대학에 유치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제안해 바흐 위원장으로부터 그렇게 하겠노라는 약속도 받았다. 아시아에서 올림픽을 동계·하계를 모두 유치한 것은 현재 일본뿐이고, 이번에 동계올림픽을 치르게 되면 한국도 여기에 들게 된다. 올림픽 경험을 공유해서 교육을 통해 노하우를 제공할 나라가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제안했다. 구상은 아카데미를 만든 후 후진국, 개발도상국 나라의 학생들을 모집해서 올림픽 노하우를 전수한다면 국격향상에도 도움될 것이라고 생각해 진행중이다. 올림픽을 치르려면 행정시스템이 필요하고, 국력을 올림픽에 모을 수 있어야 한다. 또 능력이 있어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필요한 행정, 자산관리 등 특성화된 프로그램인 노하우를 받아야 가능하다.
또 하나는 경북에서도 경주를 중심으로 아시안게임을 한번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천년고도 경주가 전세계에 관광명소로 이름을 떨쳐야 하는데, 우리가 바라는 것 만큼 경주의 명성이 높지 않다. 아시안게임을 치르게 되면 경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하지 않을 까 해서 생각하게 됐다. 대구경북에서 아시안게임을 한번도 치른 적이 없다는 점에서도 꼭 한번 하면 좋겠다.
오는 28일에는 평창동계올림픽과 관련해 그리스에 가게 된다. 성화채화된 것을 아테네에서 비행기로 봉송하는 2팀 멤버로 가게된다. 개인으로서 영광스러우면서도 색다른 경험이고, 보람이다.
-한국지적발달장애인협회장도 맡고있는 데, 협회 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나.
△내년이면 지적발달장애인협회도 창립 50주년이다. 일복이 많다(웃음). 모든 장애인들이 다 특별히 국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최근 경제가 발전되고 과학기술이 발전해서 장애인들의 편익시설이 잘 갖춰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편함이 감소돼가고 있긴 하지만 지적발달장애인은 사회에서 도움 줄 방법이 많지 않아서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령이 낮을 때는 학교를 다닌다든가 지역훈련시설에도 갈 수 있지만 성년이 되면 케어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흔히 지적발달장애인 자식을 두고 있는 부모들을 만나면 “소원이 있다면 내가 자식들보다 하루 더 빨리 죽는게 소원”이라고 하소연한다. 지적장애인들도 수명이 늘고있어서 나이가 50세인 장애인들을 초청해 그들의 삶을 집중조명하고, 성년 지적장애인들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펼칠까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 계획이다.
특히 금치산자 한정치산자가 성년후견인 제도로 바뀌었으나 아직 뿌리내리지 못했다. 공공후견인 같은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 협회가 사전에 희망자들을 받아놨다가 추천해주는 역할을 하고있다.
-끝으로 한국체육대와 한국체육의 발전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 있다면.
△한체대는 경기력측면에서나 스포츠 행정분야에서는 앞서가고 있지만 학술분야와 정책형성면에서는 아직 보완해야할 점이 많다. 대학 본연의 존재목적인 학문을 발전시키고 바람직한 정책을 만들어가는 데 최고가 되려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적 학술논문의 표준인 SCI(Science Citation Index)급 학술지를 만들고자 한다. 다른 나라 체육학자들이 이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 것을 영광으로 알게 되는 그런 학술지를 만든다면 체육학술의 발전도 한층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프·로·필 김성조 총장
1958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대륜고와 영남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동양전자화학 대표이사와 1·2대 경북도의원을 거쳐 16·17·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 정책위원회 의장,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6년 2월부터 한국체육대 총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현재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한국지적발달장애인협회장을 맡고있다.
/김진호기자 kjh@kb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