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희선<br /><br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
▲ 신희선 숙명여대 교수·기초교양대학·정치학박사

“자다 일어나 에프킬라를 뿌린다. 향긋한 안개가 퍼지고, 나를 공격하던 모기들은 입이 무너지고 날개가 녹아내리고, 죽었다. 싸움이다.”

이상국은 `에프킬라를 뿌리며`라는 시(詩)에서 성가신 모기를 제거하기 위해 우리가 무심결에 했던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편리와 이익만을 취해 온 현대사회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향긋`하기에 인체에는 무해하다는 착각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뿌리지만 결국 화학물질의 남용이 인간도 고통스럽게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목격하는 요즘이다.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비펜트린, 피프로닐, 플루페녹수론, 에톡사졸, 피리다벤 등 낯선 화학용어들이 거론되고 있다. 밀집한 케이지에서 공장식으로 키워지는 닭을 괴롭히는 진드기를 제거하고자 뿌린 살충제에서 1970년대 이후 사용이 금지된 DDT까지 회자되고 있다.

특히 산란계 농장 전수조사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세계보건기구가 간장, 신장 등 장기 손상의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던 물질이다. 이윤의 극대화가 낳은 무신경함이, 돈이 되는 일이라면 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살충제를 살포하게 만든 것이다. `살충제`가 곧 `살생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화학물질의 여파는 살충제 계란만이 아니다. 일회용 생리대의 안전성 문제 역시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생리대에서 검출된 벤젠, 폼알데하이드, 스틸렌 등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전수조사를 한다지만,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밝히는 문제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만 봐도 화학물질이 우리의 생명에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뒤늦게서야 드러났다. 레이첼 카슨(Rachel L. Carson)이 `침묵의 봄`을 통해 언급한 것처럼, 매년 새롭게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에 적응해야 하는 일은 이제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살충제 계란, 인체에 큰 문제 없다”는 정부의 인식이다.`친환경 농장` 인증에 대한 관리도 허술했고, 문제가 발생한 이후 대처하는 자세도 미흡하여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살충제 제조업체들이 인체에 안전하다고 하면 농민들은 편리하게 이를 사용할 것이다.

또한 화학물질이 가져올 해악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전문가들뿐이다. 이들이 자본이나 권력과 결탁을 할 경우 진실이 은폐될 가능성이 있다. 일반인들은 화학물질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사실 제대로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알려 줄 의무와 알아야 하는 권리가 중요하다. 레이첼 카슨은 살충제 남용이 빚어낸 문제에 대해 일반 시민들이 항의하면 “책임자들은 절반의 진실만이 담긴 보잘 것 없는 진정제를 처방하곤 한다”고 지적하였다. `달콤한 포장`으로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을 감춘다는 것이다. 결국 알 권리를 위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와 노력이 중요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윤의 논리를 좇는 기업을 감시하고, 문제가 된 사안에 일시적인 처벌로 끝나지 않도록 시민들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 주는 중요한 책무가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건강을 위해 식품의약품 안전에 대한 기준을 확실히 하고 유해성 제로를 실천할 수 있도록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게 생태주의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화학물질이 야기한 문제를 심각하게 느낀다면, “수백만의 인민들이 죽거나 천천히 썩었다”는 이상국의 시처럼 끝나지 않도록, 이제 진정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