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창원 민속학자

▲ 민속학자 박창원씨는 오랜 세월 이어온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인 민속이 많은 이들의 무관심 속에 소멸의 길을 걷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br /><br />/안성용 사진작가 제공
▲ 민속학자 박창원씨는 오랜 세월 이어온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인 민속이 많은 이들의 무관심 속에 소멸의 길을 걷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성용 사진작가 제공

동해안은 예로부터 수산자원이 풍부한 자연의 보고(寶庫)였다. 거센 파도와 바람을 이겨내며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그 땅을 지켜온 선조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환동해권`이라는 권역으로 부상하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지역으로 주목받고 있다.

동해안은 수산자원의 보고인 만큼 민속의 보고이기도 하다. 긴 해안선을 따라 바다에서 생업을 이어가는 어민들은 그들만의 민속을 만들었으며, 바다에서 거센 풍랑과 싸워야 하기에 무속의 신에게 의지하는 독특한 신앙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러기에 아직도 별신굿이 마을마다 행해지는가 하면 많은 금기를 갖고 있다.

그리스 신화만큼이나 장대한 이야기로 묶어질 옛 동해안의 민속들이 한 권의 책에서 되살아났다. 30년이 넘도록 동해안 구석구석 민속 현장을 답사하고 기록해온 포항지역의 민속학자인 박창원(61)씨.

최근 그가 펴낸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가 지역 인문학계와 문화계에 반응이 뜨겁다. 이 책은 박씨가 지난 30여 년간 포항을 비롯한 경북 동해안 지역의 민속에 대해 쓴 10여 편의 논문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것으로 세시풍속, 민속놀이, 공동체신앙, 기우제, 별신굿, 풍수, 신화, 전설 등 8가지 영역을 다뤘다.

이 책에서 박씨는 오랜 시간 발품을 팔면서 조사한 포항지역 구석구석의 세시풍속과 민속놀이의 특별한 점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리고 연연세세 지역민들의 정서 속에 녹아 있는 민간신앙의 원리와 거기에 담긴 지역민의 의식세계를 들여다봤다. 또 주목할 만한 신화와 전설을 소개하고 거기에 투영된 상징과 의미를 분석해 보였다.

고단한 생업의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꾸려나갔던 옛 동해안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그 속에 담긴 지혜를 전하고자 동해안 구석구석의 민속 현장을 답사하고 빠짐없이 기록한 소중한 내용들이다. 한 나라의 민속은 곧 그 나라와 민족의 자랑이며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문화자산이기에 더욱더 진귀하다.

박창원씨를 만나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를 펴내기까지의 과정과 동해안 민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30여년 동해안 민속연구 기록
세시풍속 등 8가지 영역 다룬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 출판
포항지역 민속 생생하게 담아

 

▲ 내연산 산신인 할무당을 모시는 신당인 백계당에서 지내는 제사. <br /><br />/박창원 민속학자 제공
▲ 내연산 산신인 할무당을 모시는 신당인 백계당에서 지내는 제사. /박창원 민속학자 제공

- 어떤 연유로 민속 연구를 시작하게 됐나.

△민속은 형태가 있는 유형문화재가 아닌 형태가 없는 무형의 문화유산이다. 그러다 보니 산업화, 도시화의 영향으로 쉽게 단절되는 문제가 있다.

1980년대, 90년대에, 지금이라도 조사, 정리해 두지 않으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조사를 시작했고, 연구를 하게 됐다.

- 동해안 민속의 특징은 무엇인가.

△동해안 지역은 공동체신앙이 잘 전승돼 있다. 동제라든지, 산신신앙, 별신굿 같은 게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이 지역이 바다를 끼고 있어서 심한 풍랑과 싸워야 하는 환경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연환경의 악조건을 절대자 또는 신의 힘을 빌려서 해결하려는 의식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놀이가 발달돼 있다는 점도 한 특징인데, 월월이청청이나 앉은줄다리기가 대표적인 여성들의 놀이다.

- 동해안의 고유문화가 많이 사라지고 있다. 어떤가.

△대부분의 민속들이 농경사회를 기반으로 형성된 문화다. 1970년대 이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빠르게 이행하면서 기존의 농경을 기반으로 정착된 고유의 전통문화는 급속히 파괴됐다.

예를 들어 일터에서 일을 하면서 부르던 구전민요는 노동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설 땅이 없어졌다.

마을공동체 또는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전해오던 민속놀이도 이농현상으로 청년층이 얇아지면서 전승이 단절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리고 교육의 영향으로 동제 같은 토속신앙을 전승할 동력을 상실했다.

- 최근 `동해안 민속을 기록하다`를 펴냈는데, 소감은.

△나는 지난 30년 동안 포항을 비롯한 동해안 지역의 민속에 대해 발품을 팔면서 조사하고, 밤을 새면서 논문을 썼다. 올해 들어와 교장 퇴임을 앞두고 최근에 그 동안 써왔던 논문을 한 곳에 정리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단순히 논문을 한 권에다 모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이왕에 정리를 하자면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기에 공을 많이 들였다. 나의 30년 연구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라는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책이 세시풍속, 공동체 신앙 등 다양한 민속이 소개됐는데.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구진마을 앉은줄다리기다. 게 모양의 줄을 가지고 여성들만 참가한 가운데, 앉아서 당기는 아주 독특한 줄다리기다. 오랜 옛날 이 마을에는 별신굿을 해 왔는데, 어느 날 굿을 하던 무당이 굿판에서 급사하는 사고가 났고,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 가운데, 누구한테 물어보니 별신굿을 하지 말고, 줄을 당기라 했다.

그것도 여자들만 참가한 가운데, 앉아서 당기라 해서 앉은줄다리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 줄다리기는 이 마을에만 전승되는 아주 독특한 줄다리기여서 민속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놀이다.

그래서 이번 책 표지사진에 앉은줄다리기 사진을 넣었다. 이 놀이는 원래 마을에서만 전승돼 왔다.

내가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여러 차례 글도 쓰고 하면서 차츰 알려지게 됐고, 지금은 `송라면 앉은줄다리기 축제`로 승화되고, 포항불빛축제에서 시연될 만큼 유명한 민속놀이가 됐다.

- 그동안 구전민요 연구도 꽤 오래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책에는 빠져 있는데.

△구전민요는 `포항지역 구전민요`(1999), `소리로 듣는 포항의 민요`(2015)라는 책을 통해 소개한 터여서 이번 책에서는 다루지 않았다. 앞으로 연구를 계속하면서 이를 현대인이 배울 수 있도록 여러 경로를 통해 힘을 쓸 생각이다.

- 동해안 민속 중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것도 있지 않나.

△동해안 민속 중에서는 영덕의 월월이청청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포항지역의 민속 중에서도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할 만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앉은줄다리기, 월월이청청, 지게상여놀이, 내연산산신제 등이다. 이 중에서 앉은줄다리기와 내연산산신제는 작년에 포항시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월월이청청이나 지게상여놀이도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어야 하고, 계보가 분명해야 하며, 전승상태도 양호해야 하는 등의 조건이 있다. 그런 조건이 충족되는 무형문화유산이 있다면 지정신청을 해야 한다.

 

▲ 구진마을 민속놀이인 앉은줄다리기. <br /><br />/박창원 민속학자 제공
▲ 구진마을 민속놀이인 앉은줄다리기. /박창원 민속학자 제공

- 민속의 보존 및 전승을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민속은 무형문화재다. 무형의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정부나 지자체에서 무관심한 가운데 소멸의 길을 걷는다. 지금까지 무형문화재는 유형문화재에 비해 홀대를 받아 온 게 사실이다.

포항지역의 경우 아직까지 마을마다 전승되고 있는 동제가 전승자들의 고령화로 인해 10년 이내에 소멸될 가능성이 크다.

동제는 수백 년을 이어온 소중한 정신문화유산이다. 지자체 차원에서 예산을 들여서라도 체계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 끝으로 전통문화 계승 발전을 위한 지역민들의 노력은 무엇이 있겠나.

△`전통이 미래`라는 화두처럼 전통문화는 현재를 넘어서 미래를 위한 문화자원이며 소프트파워를 견인하는 동력이자 콘텐츠산업과 관광산업의 발전, 국가브랜드 가치 제고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자국 문화의 세계화에 관심을 쏟는 많은 국가가 전통문화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역민들이 가깝게 할 수 있는 노력은 향토문화예술 및 전통문화 체험 공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생활에 의미와 효용을 더하고 선조들이 물려준 사상, 관습, 행동양식 등 생활 이상을 실현하고 답습하게 되는 것 아닐까.

박창원 민속학자 프로필

△고령 출신 △영남대 국문과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국어교육학과 △포항시 청하중 교장 퇴임 △저서 `고령 지방의 언어` `포항지역 구전민요` `인문학의 공간 내연산과 보경사`(공저) `소리로 듣는 포항의 민요` 외

/윤희정기자 hjyun@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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