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ㆍ특집
연오랑과 세오녀는 고향바다를 그리워했을까바다에서 길을 찾는다 해양 블루오션 포항
(5) 역사의 중심, 해양도시 포항
고세리기자  |  manutd2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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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017.06.28   게재일 2017.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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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
 

철강산업도시이면서도 해양관광도시이기도 한 포항은 특수한 도시의 성격에 걸맞게 오래전부터 전해내려오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과거 장기면은 조선시대 주요 유배지로 이용돼 학자들이 머물며 저술 활동 등의 영감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한반도 최동단의 호미곶은 최초로 근대식 건축 양식으로 지어져 1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등대가 동해안을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이와 더불어 무엇보다 포항의 생존·발전의 원동력인 `일월정신`의 기원 `연오랑과 세오녀`는 포항시민들의 자긍심이자 근간이 되고 있다.


정약용·송시열 기개 잇는 `장기유배문화촌`
연말 완공… 지역만의 스토리텔링 관광 기대

국내서 가장 오래된 호미곶등대, 규모도 최대

새 명소로 떠오른 `연오랑세오녀 테마파크`
일월정신·신라마을 체험 등 콘텐츠 보게 돼


□ 올곧은 선비의 지조, 포항 장기면

포항 도심에서 차량으로 30여 분을 이동해야 도착하는 장기면은 바다를 끼고 있어 농업과 어업이 주가 되는 농어촌 지역이다. 인근 경주시와 경계지점으로 포항시의 최남단에 위치한 장기면은 한가롭고 조용한 시골 분위기이지만 이면에는 유구한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신라 초기 장기면은 `지답현(只沓縣)`으로 불리며 현재의 구룡포읍과 호미곶면까지 관장했고 동해안을 지키는 군사기지이기도 했다. 통일신라 때는 기립현, 고려조 현종 9년(1018)부터 장기현으로 불리었고 임진왜란때는 의병들이 소봉대 앞바다에서 왜적을 물리치는 등 외적의 침입에 결사항전했던 충절의 전통이 내려오는 고장이다. 이후에는 조선시대 당대의 걸출한 석학과 정객들이 다녀간 주요 유배지로 중앙의 고급문화와 최고수준의 학문을 꽃피운 유학(儒學)의 고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예로부터 `관직에 오른 사람 치고 유배 길에 오르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조선시대의 유배`는 지조 있는 지식인과 정치인들에겐 일종의 통과의례처럼 보이는 형벌이었다.

장기에 유배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우암 송시열과 다산 정약용이 있다.

우암은 조선조 숙종 시절 4년간 장기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장기인들은 그를 통해 유학의 진수와 중앙 정계의 동향 등에 대해 접했고, 현재 장기초등학교 교정의 은행나무도 우암이 심었다고 알려졌을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했다. 그가 장기를 떠나고 29년 후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잇고자 죽림서원을 건립했다고 전해져 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죽림서원은 훼철됐다.

실학의 집대성자인 다상 정약용은 220여 일동안 장기에서 유배 생활을 하며 그들의 생활상과 고을 관리의 목민행태를 글로 옮기는 등 수많은 시문과 저서를 남겼다. 다산은 장기읍성 동문에 올라 해돋이를 보거나 신창리 앞바다에 나가 어부들의 고기잡이를 구경하곤 했다. 그의 `아가사`라는 시에는 장기에 시집온 며느리가 해녀가 돼 물질하는 광경과 해녀의 고달픈 삶이 표현돼 있고, 장기 바다에서 범고래들이 고래를 공격해 바다가 피로 물든 광경을 묘사하는 등 그의 기록을 통해 당시 어촌의 실상도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포항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유배지로 이름을 떨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치 상황의 중심이었으며 지조와 충절의 선비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역사의 뿌리였다.

시에서는 선조들의 기개를 잇는 유배 문화를 계승하고자 장기면에 유배문화 체험촌을 조성하고 있다. 장기면 서촌리 285번지 일원에 총 면적 1만377㎡와 탐방로 4㎞, 시비 38억원을 들여 추진하는 이 사업은 부지 조성과 소하천 복원 등 하천공사 작업이 진행 중이며 곧 1차 공사를 완료할 계획이다. 이후 조경과 편의시설, 탐방로 등을 조성하는 2차 사업은 오는 연말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시는 장기유배문화체험촌이 완공되면 우암 송시열, 다산 정약용 선생 등을 중심으로 한 포항만의 스토리텔링 관광이 활성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조선시대부터 내려온 해맞이의 성지

포항시 남구 호미곶은 한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한반도의 최동단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겸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면서 이곳을 일곱 번 답사해 측정, 한국의 가장 동쪽임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조선 명종 천문역학풍수지리학자인 격암 남사고 선생이 저술한 산수비록의 영남명승명당비기에서도 오늘날 포항 장기의 명승명당으로 호미등(虎尾嶝)을 기술해 이후 장기지역이 호미로 불리게 됐다. 또한 역사가 육당 최남선 선생은 조선상식 지리편에서 이곳의 일출을 `조선십경`으로 선정하는 등 `호미곶`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해맞이의 성지다.

이와 더불어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의 호미곶 등대는 경상북도 시도기념물 제39호로 지정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다.

지난 1903년 건립된 이 등대는 우리나라 지도상으로는 `호랑이 꼬리`부분에 해당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을 과거 `장기곶`혹은 `동외곶`이라고 불렀으며 이에 건립 당시 `동외곶 등대`로 불렸다. 이후 장기갑등대, 장기곶등대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2000년대 초 `장기곶`이 `호미곶`으로 바뀌며 등대 역시 `호미곶 등대`로 명명됐다. 서쪽으로는 영일만, 동쪽으로는 동해와 만나고 있어 일명 `대보(大甫)등대`라고도 한다. 높이만 26.4m에 이르며 둘레는 밑부분이 24m, 윗부분이 17m로 전국 최대 규모이다.

겉은 8각형의 탑 형식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식 건축 양식을 사용해 지어진 등대다.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았으며 내부는 6층이다. 각 층의 천장마다 조선 왕실의 상징무늬인 토종 오얏꽃이 새겨져 있다. 또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등대로 건축사적·문화재적으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100여년을 묵묵하게 동해 바다를 비추며 풍랑을 견뎌온 호미곶 등대는 사실 쓰라린 역사의 일부분이다. 1901년 일본수산실업전문대학교 실습선이 대보 앞바다를 항해하다 암초에 부딪쳐 침몰했고 일본은 이 사건이 한국의 해안시설 미비로 발생했다며 책임질 것을 주장하자 조선이 국비를 들여 1903년 12월에 준공했다.


  ▲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연오랑세오녀상  
▲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연오랑세오녀상

□ 연오랑과 세오녀

포항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설화가 바로 해와 달을 상징하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다. 연오랑과 세오녀를 위해 제사를 지냈던 못을 일월지(日月池)라 하고 이 지역을 `도기야(도구)`라고 불렀다. 설화의 주인공을 기리기 위한 연오랑세오녀상도 호미곶해맞이광장에 세워져 있다.

오늘날 일부 역사학자들은 `연오랑과 세오녀`가 단순히 설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이들이 동해안을 중심으로 한 동예의 후손일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삼국유사뿐만 아니라 8세기 일본 조정에서 편찬한 `일본서기`와 `고사기`에도 이 설화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수록돼 있다. 과거 신라 등은 경북 동해안의 무역항로를 통해 일찍부터 일본 등 인접국과 무역교역을 이뤘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일본 이즈모시의 스사노 오노미코토 전설에도 신라인이 흙으로 된 배를 타고 이즈모시 하이강에 도착해 제철, 직조, 농사기술을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토대로 과거 신라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문명을 개척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포항시는 이러한 명맥을 이어오기 위해 연오랑 세오녀의 설화를 바탕으로 한 테마파크를 조성했다. 포항시 남구 동해면 임곡리에 위치한 이곳은 영일만의 탁 트인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포항의 새로운 명소다. 관련 사료나 유물 등을 전시하는 전시관 `귀비고`는 공사중인데다, 공원 조성 사업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는 설화와 관련된 내용을 조형물로 표현해 벌써 관람객이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과거 신라와 일본의 교류를 상징하는 뜰과 함께 한편에는 신라마을을 꾸며뒀다. 포항과 경주 등 경북 동해안이 과거 철기문화를 주도하며 번성했던 그 시대로 잠시 돌아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공원은 올 연말 준공되며 내년 2월부터는 포항의 일월정신과 연오랑세오녀 설화, 신라마을 체험 등의 콘텐츠를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일월지  
▲ 일월지

연오랑세오녀 설화

제8대 아달라왕 즉위 4년(정유 157)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가 부부로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연오가 바다에 가서 해초를 따던 중, 갑자기 한 바위(혹은 고기라고도 한다)가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 그 나라 사람들이 연오를 보고 `이는 비상한 사람이다`그래서 왕으로 삼았다. 일본 제기를 살펴보면 전후에 신라 사람이 왕 된 이가 없으니 이것은 변읍의 소왕이고, 진왕은 아닐 것이다.

세오는 그 남편이 돌아오지 않음을 괴이히 여겨 가서 찾다가, 남편의 벗어놓은 신이 있음을 보고 또한 그 바위에 올라가니, 바위는 또한 그전처럼 세오를 싣고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이 보고 놀라서 왕께 아뢰니,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세오를 귀비로 삼았다.

이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이 없어지니, 일관이 말했다.

“해와 달의 정기가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이 지금 일본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이런 괴변이 일어났습니다.”

왕은 사자를 일본에 보내어 두 사람을 찾았다. 연오는 말했다.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제 어찌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가 짠 고운 명주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요.”

이에 그 비단을 주었다.

사자가 돌아와서 아뢰었다. 그 말대로 제사를 지냈더니 그런 후에 해와 달이 그 전과 같아졌다. 그 비단을 임금의 창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고 그 창고를 귀비고라 하며, 하늘에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라 했다. (일연의 `삼국유사` 中)

/고세리기자 manutd20@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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