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청춘으로 바다를 제압했다… “장갑차는 내 운명”
뜨거운 청춘으로 바다를 제압했다… “장갑차는 내 운명”
  • 박동혁기자
  • 등록일 2016.09.05 02:01
  • 게재일 2016.0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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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친구` 포항시와 해병대
(7) 포항 정착 퇴역자
김영환 해병대 전우회 포항시 수석부회장

▲ 1998년 제50주년 국군의날 행사가 열린 성남 서울비행장에서 도열하는 모습.
▲ 1998년 제50주년 국군의날 행사가 열린 성남 서울비행장에서 도열하는 모습.

해병대의 주임무는 상륙작전이다.

국군조직법 제3조2항에서 확인 할 수 있듯 상륙작전의 핵심은 전쟁발발 시 해상으로 이동해 적 해안에 기습 상륙하는 것이다.

해병대는 이 특수임무를 위해 타 군에는 없는 상륙돌격장갑차라는 장비를 사용한다.

상륙돌격장갑차는 바다에서 해병대원을 태우고 적이 점령하고 있는 해안가로 상륙하는 수륙양용장갑차다.

이렇듯 해병대를 넘어 우리군 전체의 주요전력인 상륙돌격장갑차와 반평생을 함께한 `영원한 해병` 김영환(62) 포항시 해병대 전우회 수석부회장을 만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포항·경주 물난리에 장갑차로 수재민 수백명 구조도
현역·예비역 지역봉사 열심… 시민과 동반자 인식 가져야

“남자는 해병대” 강원도에서 경남 진해까지 가서 부사관 지원
1974년 입대, 34년 5개월간 상륙돌격장갑차 관련 임무 수행


- 간단한 자기소개를.

△1974년 12월 9일 해병대부사관 114기로 입대해 2009년 5월 31일 준위로 퇴역할 때까지 34년 5개월간 오직 상륙돌격장갑차와 관련된 임무만 수행했다.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 `군사지식 함양을 위한 군사교범 속독 생활화`, `가장 예의바른 해병으로 성장`이라는 3대 인생철학을 지니고 맡은 바 소임을 다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군복무 기간 동안 국방부장관 표창을 비롯한 표창을 20차례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퇴역당시 국가안전보장에 뚜렷한 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되는 보국훈장 광복장을 받았다.

 

▲ 김영환 부회장이 현역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 김영환 부회장이 현역시절 추억이 담긴 사진을 소개하고 있다.

- 해병대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 21살 어린 나이에 강원도 원주의 집으로 갑자기 입대영장이 날아들었다. 육군에 일반병으로 입대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대다수 젊은이들이 선택하는 육군보다는 무언가 특별한 길을 걷고 싶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남자라면 해병대지`라는 이야기를 평소 많이 들었고, 혈기왕성하던 시절이라 주저없이 해병대 지원서를 들고 경남 진해로 향했다.

병사든 부사관이든 개의치 않았는데 당시 지원 가능한 기수가 부사관밖에 없었다. 입대 후에 깨닫게 됐는데 우리 기수가 장기부사관을 뽑는 기수였고, 이 선택이 30년이 넘는 군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됐다.

- 상륙돌격장갑차와 관련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고 하던데.

△중사시절이던 1983년 5월 포항의 한 해안가에서 한미해병대 연합훈련인 `팀 스피리트(Team Spirit)`상륙작전이 벌어졌던 때였다. 1차 리허설을 마치고 상륙돌격장갑차를 해군 함정에 싣고 결박을 마치기 직전 갑자기 배가 흔들리면서 갑판에 바닷물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기상악화로 돌풍이 불어왔고, 거센 파도는 함정을 집어삼킬 듯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해군 함장은 퇴함명령을 내렸고 해군 승조원, 미해병대 등 수백명은 즉시 배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해병대는 퇴함명령에 따를 수 없었다. 중대장으로부터 “우리는 장갑차와 함께 죽는다”는 명령이 떨어졌고 해병대원들은 10여대의 장갑차에 남아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

소대 선임부사관이었던 저는 흔들림이 심했던 배 안에서 장갑차끼리 부딪혀 파손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홀로 좁은 배안 이곳 저곳을 움직였다. 푹신한 수면용 매트리스를 장갑차 사이에 끼워넣는 작업을 한 것이다. 무릎에 피가 흥건히 젖을 정도였지만 워낙 상황이 긴박해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몇시간에 걸친 작업을 마친 후 배 밖에서 던져준 식량을 대원들과 함께 먹으며 일주일을 버텼다.

이후 도착한 구조대에 의해 함정에 남아있던 대원 전원이 무사히 구조됐고, 장갑차와 대원 모두 크게 다친 곳 없는 모습으로 부대에 복귀할 수 있었다.

 

▲ 해병 1사단장에게 전투장비 정비시범 브리핑을 하는 모습.
▲ 해병 1사단장에게 전투장비 정비시범 브리핑을 하는 모습.

-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도 상륙돌격장갑차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1980년 9월 포항과 경주에 홍수가 발생해 수천여명의 수재민들이 구조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렸다. 대원들과 함께 상륙돌격장갑차를 타고 7번국도 포항방면 시작점에 있던 효자검문소에서 출발해 경주 건천지역까지 이동하며 구조에 동참했다.

당시에는 가옥 거주형태가 대부분 단층주택이었고 불어난 물로 주민들은 지붕 위에 겨우 올라 발만 동동거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저와 대원들은 수륙양용이 가능한 상륙돌격장갑차의 특성을 살려 지붕에 남겨진 수재민들을 하나 둘씩 구조했고, 이윽고 500여명의 주민을 무사히 구조하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일은 1990년에도 반복됐고, 이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주민 수백명을 추가로 구조했다.

 

▲ 해병대 6여단장(오른쪽)의 지휘를 받으며.
▲ 해병대 6여단장(오른쪽)의 지휘를 받으며.

-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 `KAAV`의 완성과정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고.

△순수 국내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 `KAAV`가 도입되기 전까지 해병대는 미국의 수륙양용장갑차인 `LVT`를 운용했다.

1970년대초부터 20여년 동안 활용된 LVT는 1998년 막강한 화력과 최신 보호장갑을 갖춘 KAAV로 전면교체됐다.

그런데 KAAV 1, 2차 배치가 완료된 후 8년여가 흐른 2006년 해병대사령관으로부터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게 됐다.

기존에 운용 중인 장갑차의 문제점과 발전방향을 검토해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장갑차 관련 모든 부대의 협조를 구해 정보를 제공받고 이를 관련 근거로 보고서를 작성, 사령관이 마련한 보고회에 참석해 브리핑을 맡았다.

이 자리에서 1, 2차 장비에는 열상잠망경이 없어 야간사격이 불가능하고, 일체형포탑조준기가 없어 조준과 사격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점 등 기존 장비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날 보고회에 참석한 방위산업체 관계자들은 이같은 단점을 보완해 성능을 개량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렇게 탄생한 3차 KAAV 장비는 오늘날까지 우리군의 주요전력으로 활동하고 있다.

 

▲ 해병대 준사관 43기 임관식에서 가족과.
▲ 해병대 준사관 43기 임관식에서 가족과.

- 가족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슬하에 두 아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게 군생활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아들들이 아버지와 같은 길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둘 모두 직업군인이 됐다. 큰 아들 정관(40)이는 해병대 상사로, 작은 아들 주홍(35)이는 해군 6전단 중사로 착실히 근무하고 있다. 큰 아들은 2014년 국방부와 조선일보가 제정한 제5회 위국헌신상 시상식에서 용기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아버지 뒤를 따라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두아들에게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 해병대 퇴역군인으로서 포항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포항은 8만 해병대가 살고 있는 행복한 도시이다. 농번기가 되면 모심기, 보리베기, 과일따기 등 농촌일손돕기에 서슴없이 앞장서고 각종 재난재해 발생시 구조대로서의 역할도 수행한다.

오천, 장기 일대에서 주둔하고 있는 현역 해병대뿐만 아니라 예비역들이 지역사회를 위해 수행하고 있는 역할도 상당하다. 이들은 포항시에서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교통자원봉사로 참여해 교통정체를 최소화하는데 힘을 보태고 있고, 지역별 방범순찰활동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영원한 친구` 포항시와 해병대라는 이번 특집시리즈의 대주제에서 확인할 수 있듯 포항시민과 해병대원들은 동반자라는 인식을 갖고 상호 보완적 존재로서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동혁기자 phil@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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