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설립 갈등·노조 분쟁 유발 등 상황 악화
사태 해결위해선 설립자 정신 돌이켜 봐야

▲ 포항 선린병원의 최종부도 소식이 알려진 4일 오후 고의부도 의혹까지 확산하면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1층 로비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용선기자 photokid@kbmaeil.com

한때 경북동해안 최대 종합병원의 명성을 누리던 포항 선린병원의 설립 정신은 `善隣`, 즉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름에서 상징된다.

`우리 곁에 잠시 왔다가 간 작은 예수`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린 고 김종원 장로(2007년 당시 94세로 작고)는 이 병원의 설립자이다.

평안북도 초산 출신인 그는 한국전쟁 당시 세 아들을 북에 남겨 둔 채 월남, 1953년 6월 포항 동빈동에 병원의 전신인 미해병기념 소아진료소를 개소했다. 진료소의 임무는 전쟁 고아와 홀로된 임산부에 대한 무료진료로 헌금으로 유지됐다.

김 장로는 이후 1960년 6월 선린의원을 개원해 독립했으며 늘 가까이서 돌봐주던 선린애육원이 위치해 있던 현 대신동 부지에 1977년 신축 이전했다. 김 장로는 신앙과 진료에만 몰두해 하루 평균 300여명의 환자를 돌볼 만큼 헌신적이었다. 그는 막내 아들이 서울경기고 입학시험을 치러 갔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됐지만 끝내 병원을 지켰고 결국 아들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 했던 가슴 아픈 일화가 있다.

선린병원은 부근에서 성장한 기독병원(세명기독병원의 전신)과 함께 경북 동해안 양대 종합병원의 위치를 지켰으며 이후에도 성모병원, 동국대 포항병원(폐원)의 도전을 받는 위치였다.

이처럼 안정적 기반에 있던 선린병원이 최근의 위기에 이른 뿌리는 한동대학교에 재단을 기부하면서 비롯됐다.

1997년 김 장로는 한동대 전 김영길 총장 등의 제안을 받아들여 법인을 해산하고 그해 11월 한동대의 현동학원과 재단을 통합했다. 700병상 규모로 당시 1천억원 가치의 병원을 기증한 것이다.

당시 김 장로는 김 전 총장의 기독교 이념에 대한 동조 외에도 현실적으로는 신규 의사 충원을 위한 의대 설립 제안에 이끌렸다. 한동대는 신설 대학으로서 송태헌 설립자는 물론 지역사회와도 갈등이 깊어지면서 극도한 경영난으로 임금체불은 물론 전기요금도 미납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후 정부의 정책 변화로 추가 의대 설립은 제한됐으며 한동대를 수혈하기 위한 병원 재정의 압박에 더해 한동대 김영길 총장을 비호한다는 오해를 받으며 병원 개원 이래 전에 없던 명예의 실추까지 경험해야 했다. 이 와중에 설립된 노조가 장기간 분쟁을 이어가 내우외환에 시달린 끝에 직원들의 퇴직 적립금까지 고갈되는 위기에 이르렀다.

이후 한동대는 전국 기독교계의 지원 등으로 학교 운영이 점차 안정을 맞으면서 선린병원에 대한 지원 부담이 커지자 11년만인 2008년 6월 다시 재단은 분리됐다. 그해 8월 직원 255명은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현동학원을 상대로 퇴직금 60억여원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 승소했지만 다시 패소해 현재 병원의 부담으로 고스란히 안겨있다.

한동대정상화추진위원으로 활동한 (사)포항지역사회연구소 이대환 소장은 “포항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은 일찌감치 사필귀정이 될 이번 사태를 예감했다”면서 “최근 병원에 이어 선린대학에까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포항의 기독교계는 물론 포항사회가 김종원 전 이사장의 숭고한 정신부터 돌이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현기자 imjh@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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