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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서 술판 벌이는 환자·보호자

김혜영기자
등록일 2015-07-24 02:01 게재일 2015-07-2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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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남구 종합병원…음식주문때 술 배달시켜<BR>간호사 등과 실랑이 잦아, 음주규제 대책 시급

포항시 남구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 A씨(27)는 여름철 당직 때마다 바짝 긴장한다.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입원 환자와 보호자, 문병객들이 병실이나 인근 편의점 등에 모여 술판을 벌이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A씨는 “환자들이 병원에서까지 한바탕 난동을 부릴 때마다 진을 뺀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한국 병원 문화의 개선이 발등의 불이 된 가운데 입원 환자나 보호자들의 병실 음주(飮酒) 실태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연제도와 달리 공공장소 내 금주(禁酒) 관련 법이나 규정이 없어 강력한 제재도 어려운 상황이다.

병원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국내 병원 구조의 특성상 4~6개의 병상이 모인 다인실 이용환자들이 많아 환자 및 보호자들이 어울려 술을 마시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아이를 입원시킨 부모들조차 병실 내에서 다른 보호자들과 음주를 하고 있다. `병원에서 불금을 보낸다`며 이를 찍어 자랑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이들은 술을 밖에서 직접 구매해 갖고 오거나 문병객, 배달음식업체에 부탁하기도 한다. 병원 내 상점에서는 담배와 술이 금지 품목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북구 한 종합병원의 입원 환자 C씨(46·남구 청림동)는 “음식을 주문할 때 소주도 부탁하면 생수병에 담아 배달해 준다”며 “술병을 검은 비닐로 감싸 빨대를 꽂아 마시면 간호사들도 음료수인 줄 안다. 장기입원 환자들이 알려준 `병원 스킬`”이라고 말했다.

병원 내 음주는 다른 환자와 보호자, 간호사 등과의 실랑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주부 김모(32·북구 창포동)씨는 “지난달 아이가 폐렴에 걸려 입원했을 때 같은 병실 내 보호자인 엄마들이 2~3명씩 모여 맥주를 마셔 주위에 피해를 줬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병원 내 음주를 제재할 만한 방침은 없다. 병원과 학교를 포함한 대부분의 건물(연면적 1천㎡ 이상의 규모)이 금연구역으로 광범위하게 정해져 있는 반면 금주구역은 따로 없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국민건강증진 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병원, 청소년수련시설, 초·중·고등학교, 대학교 등 공공시설에서의 음주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며 주류에 건강증진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금주구역 지정이 담뱃값 인상에 이어 술값 인상을 위한 사전단계라는 여론이 일면서 해당 개정안은 진척되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태다.

22일 포항시 보건관리과 관계자는 “병원이 금주구역은 아니지만 음주 후 소란행위 시 의료인 보호 목적으로 강제 퇴원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며 “의료행위가 이뤄지고 환자들이 모여 있는 병원은 타 공공기관과는 달리 규제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뉴욕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술을 개봉한 채 들고만 있어도 처벌받고, 영국은 공공장소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울 경우 영장 없이 체포 가능하다.

/김혜영기자 hykim@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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