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개화<br /><br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 배개화 단국대·미국 하버드대 방문 교수

보스턴에서 생활하면서 많이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토끼, 다람쥐, 혹은 사슴 등 야생동물들이 학교 교정이나 주택가에서 눈에 많이 띈다는 점과 이 동물들이 모두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모습이 겁 많은 한국의 동물들과 비교되면서, 필자는 한국과 한국 사람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하버드 대학교 교정을 걷고 있다 보면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동물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청솔모이다. 저희들끼리 다정하게 나무 위를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고 잔디밭을 명랑하게 가로질러 간다. 사람들이 옆을 지나가도 태연하게 서있거나 다가와 먹을 것을 구걸하기도 한다. 다람쥐에 비하면 훨씬 못생긴 녀석들이지만, 보고 있노라면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청솔모에 대해서 갖고 있던 나의 편견-토종 다람쥐를 잡아먹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하는 외래종-이 깨지는 느낌이다. 꼬리털도 풍성하고 몸 전체의 털에 윤기가 흐르는 것이 꼬리털도 듬성듬성 하고 비루한 느낌을 주는 한국의 청솔모와는 딴판이다.

새들도 왠지 친근하다. 한 번은 아는 지인들이랑 함께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떤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나왔던 이야기가 미국의 새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의 말처럼 카페나 학교 교정에 있는 티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나 샌드위치 등을 먹고 있노라면, 종종 새들이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로 날아와 앉는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빵조각을 뜯어서 새들에게 주게 된다. 이런 모습이 한국의 새들과 너무 다르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한국의 공원이나 등산로에 있는 새들은 왠지 사람들을 무서워한다는 지적과 함께, 그건 한국 사람들이 새들이 가까이 오면 위협하고 쫓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른다.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동물 중의 하나는 개들이다. 한 번은 하버드 로스쿨 앞 잔디밭에서 개 한 마리가 주인이 던져주는 원반을 물고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원반을 물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주인에게 달려가는 개의 모습에는 `난 정말 행복해, 즐거워`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도 `아! 귀여워`라는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온다. 집 근처에도 개들이 산책하는 공원이 있는데, 많은 개들이 주인들과 함께 나와서 뛰어놀고 있다. 공원 잔디밭을 가로질러 뛰어다니고 개울가에 뛰어들어 물을 튀기는 녀석들의 모습에는 행복감이 물씬 풍긴다. 이렇게 행복한 개들을 보다보면, 개보다도 주인에게 더 호감이 생긴다. 즉,`도대체 개를 얼마나 사랑해주었기에 애가 저렇게 행복해보이나 정말 좋은 사람인가보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한 번은 지인들이랑 이런 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미국의 길거리에 고양이가 잘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가 번졌다. 그러자 함께 있던 대학원생이 미국의 경우 길고양이들은 모두 구조되어 동물보호소에 보내지기 때문에 길거리에서 잘 보이지 않으며, 그리고 자기도 이곳에서 두세 번 고양이들을 동물보호소에 신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국의 동물보호소의 실상을 알고 난 뒤로는, 안락사나 길거리 생활이 동물보호소에 있는 것보다 고양이에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생의 말처럼 지옥이 있다면 여기 일 것 같다는 느낌을 주는 동물보호소들이 가끔 인터넷 게시판이나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서 고발되기도 한다.

확실히 미국의 야생동물들이나 반려동물들은 한국의 동물들보다 행복해 보인다. 이 동물들을 보면 왠지 미국이 한국보다 선진국처럼 보인다. 자기보다 작고 연약한 것들에 대해서 배려와 애정을 갖고 대하는 태도는 그 사람이나 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나 교양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청솔모와는 너무나 달라 보이는 미국의 청솔모를 보면서,`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과 함께 이 환경의 많은 경우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의식이 좀 더 확산되었으면 좋겠고, 길거리의 동물들이나 야생동물들에 대한 보호 및 구조 시설들도 좀 더 늘었으면 좋겠다.